〽️ 산에 왜 오르는가?
🔹️ 내려올 것을 힘들게 왜 올라가나?
1924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엔드류 어빙과 함께 정상 600미터 아래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원정을 떠나는 길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며 죽을 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Because it is there.)'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그 후 75년만인 1999년 에베레스트 정상부근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됨) 당시 말로리는 갑작스런 기자의 까다로운 질문에 당황스럽고 귀찮은 상황을 벗어 나고자 아무생각없이 재치로 받아 넘긴 답변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산악인이 남기고 떠난 짧은 한마디는 등산의 본질을 가장 함축성있게 설명한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이 있고, 내가 그 산을 오른다. 이것은 자연 더 나아가 우주의 존재와 이곳에 있는 인간의 활동을 설명한 것이다.
왜? 라는 질문을 끝없이 파고 들면 결국에는 우주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된다. 아직 아무도 이러한 의문을 풀지는 못했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다양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산에 올라가냐?"라는 질문은 '우주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인 셈이고 이에 대한 해답으로'자연(우주)이 있고 그곳에서 인간이 생활하고 있다.'라는 말이기에 조지 말로리의 대답은 명언이며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산을 다니는 우리는 "내려 올 것을 힘들게 왜 올라가냐?"라는 질문을 받곤한다.
🔸️등산은 무엇이 좋은가?
등산은 운동으로서의 장점을 살펴보아도 다른 운동에 비해 좋은 점이 많다. 첫째 유산소운동으로 경쟁없이 자신의 페이스에 알맞게 조절해 가며 서서히 부하를 높여가므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운동으로서 가장 알맞은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산이라는 대상이 주는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은 운동의 효과를 더욱 높여 주며 도시속에서의 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서적인 효과를 함께 얻을 수 있다. 또한 숲이라는 환경은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많은 것은 제공해 준다. 식물이 만들어낸 오염안된 산소와 음이온이 가득한 공기가 우리에게 유익함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울창한 숲이나 산에가면 그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일주일에 1번만이라도 오염된 도시를 벗어나 산에 가면 오염된 신체를 조금이라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커다란 자석이며 지표상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자기장이 흐르고 있으며 우리의 신체는 이 자기장에 생체리듬을 맞추고 적당한 생리작용을 하고 있다.
우리는 막연하지만 땅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먼 조상들 때부터 지내온 환경 즉, 땅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우리가 지내야할 환경은 도시가 아니라 먼 조상들때부터 지내온 산과 자연인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찾아 퍼덕이듯이 우리는 산을 찾는 것이다.
무상의 행위 등산이 산체적인 건강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최초로 오른 8,000m 안나푸르나(8,091m)초등에 참여한 리오넬 테레이는 '무상의 정복자'라는 저서에서 등산은 '무상의 행위'라고 하였다. 현대산업사회에 만연된 경제논리, 보상의 논리속에서 인간의 끊임없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정신이 피폐해져가고 있다. 이익이 없고 반대급부가 없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고 효울적인것 같지만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한 경제 사회 구조속에서 순수한 인간성의 상실이 심해지고 있다. 등산은 그 행위의 특성상 많은 시간과 재화 그리고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일부 등산가는 생계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IN-PUT 과 OUT-PUT(투입과 산출)으로 저울질 한다면 매우 미련한 짓이며 비생산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원래 비생산적인 놀이에 관심이 많다. 그것을 우리는 취미활동이라고 한다.
어느 학자가 동물들이 살기위해 투자하는 노동의 시간을 연구해 보았더니 인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자는 하루에 1시간정도만 사냥을 하고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고 대부분의 다른 동물도 하루중 몇시간만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한다고 한다. 인간만이 8시간이상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먼 원시시대에는 지금처럼 많이 일을 하지 않았고 동물들이 자연의 풍요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듯이 인간도 자연의 풍요와 여유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며 살았을 것이다.
등산은 사람이 즐기는 무상의 행위 가운데 제일 상급일 것이다. 우리의 고향인 자연속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 적응하며 오묘한 변화를 즐긴다. 그속에는 꿈이 있고 준비가 있고 철학이 있고 우정이 있고 열정이 있고 사색이 있고 쾌감이 있고 좌절이 있고 고통이 있고 극복이 있고 휴식이 있고 회상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또 다른 순수한 인생이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