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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하자마에서 승리한 노부나가의 위치는 아직 천하를 도모할만한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자기보다 강대한 여러 다이묘들과도 차별되는 몇가지 경쟁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첫번째 경쟁력은 일본 제일이었다는 커다란 야심이었습니다.
현상유지가 최대의 목표인 다른 대부분의 다이묘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근원적인 능력입니다.

두번째는 경험입니다.
오케하자마에서 승리하기까지 그가 자신의 성에서 자신의 성질과 싸워 이긴 경험..
불과 열흘도 안 되는 기간의 사투였지만, 그것은 평범한 영주2세는 몇번을 다시 살아도 얻기 힘든 커다란 경험이었습니다.

세번째는 자신의 영지인 오와리를 문자 그대로 한 덩어리로 만들만큼 강해진 그의 입지입니다.
오케하자마의 기적적인 승리로 모든 가신들이 노부나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주변 소규모 독립성주들도 노부나가의 휘하에 뭉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에야스입니다.
 
노부나가가 자기 영지의 두배나 되는 대국 미노를 공략하게 된 것은 위의 경쟁력들이 뒷받침된 결과물입니다.
 

노부나가의 미노공략은 수없이 많은 시도끝에 오케하자마 승리로부터 7년만에 달성되었습니다.
노부나가의 장인 사이토의 아들은 강적이었습니다. 우수한 영주가 다스리는 대국 미노는 난공불락...

노부나가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세월을 보내고있습니다.
노부나가의 본성으로부터 미노의 본성까지는 거리로는 매우 가깝습니다.
백리 남짓한 거리여서 걸어서 하루면 도달할 거리지만, 군데 군데 요충지를 돌파하면서 가야하는 험난한 백리입니다.

이 백리길을 노부나가는 7년이나 걸려서 마침내 도달합니다.
쌀도 더 많고 병사도 더 많은 미노가 노부나가에게 공략당한 것은 사이토의 아들이 죽은 후입니다.
사이토의 아들 요시다츠는 괴질에 걸려 급사했습니다. 아비를 참살한 업보일까요?

사이토의 손자는 아직 젖비린내나는 재벌3세 오렌지, 별다른 교육이나 경험을 쌓을 사이도 없이 영주가 되었습니다.
젖비린내나는 새 영주는 정치를 가신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곧바로 쾌락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덩치만 큰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미노지만 노부나가에게 이에야스라는 든든한 동맹자가 없었다면
공략하기는커녕 상대하기에도 버거운 미노 67만석이었습니다. 노부나가는 겨우 30만석..
 

노부나가와 미노 사이에는 스미타마강이라는 큰 강이 있었는데 이 강이 천연의 국경이었습니다.
이 강에는 다리가 없었는데 전국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다리가 드물었습니다. 강 자체가 그대로 요새였습니다.

군대는 보급이라는 말처럼, 보급이 끊어지면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는 것이 군대입니다.
큰 강이 천혜의 요새인 까닭은 건너기도 어려울뿐더러 보급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스미타마강을 안전하게 도강하려면 하구지역에 거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제해권이 아니라 제강권을 확보하려면 그 강에서 가장 요충이 되는 지점에 강력한 성을 쌓으면 됩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성채를 쌓아야하겠다는 결정이 노부나가가 소집한 전략회의에서 결정되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처음 스미타마강에 성채를 쌓으라고 파견한 장수는 지위가 높은 중신들이었습니다.

혼자서는 어려울테니, 단체로 가서 쌓으라는 명령에 이름높은 누대의 중신들이 뽑혀서 달려갔습니다.
중신들의 축성은 지극히 정통적인 방법으로 기초를 올리고 자재를 모으고 대들보를 올리면서 한달도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성이 반쯤 올라갔을 즈음의 한 밤중, 미노의 정예병들이 백여척의 나룻배를 타고 공격해왔습니다.
짓다 만 성채는 방어에 도움이 되지않습니다. 야습에 당황한 노부나가군은 지리멸렬 큰 손해를 입고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노부나가는 실패한 중신들에게 위로의 말을 내리고 다른 중신을 뽑아서 다시 도전했습니만,
제해권을 장악한 미노군은 성이 반쯤 지어졌을 때를 기다려 총공세를 펼쳐서 노부나가는 또다시 많은 병사와 물자를 잃었습니다.
 

천하의 노부나가조차 방법을 찾지 못 해 축성을 단념할까 고민하던 때에, 아직 쫄자였던 히데요시가 용약 자원합니다.
그 시점에서 히데요시는 겨우 부하 수십명을 거느린 졸개대장이었지만, 단순한 졸개대장만은 아니었습니다.

노부나가의 측근에서 오래동안 굴르면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던 히데요시였던 것입니다.
수백 수천의 수하를 거느린 노부나가의 중신들조차 거듭 실패한 스미타마강 축성을 자원한 히데요시는
기존의 중신들에 비해서 불리한 조건에서 축성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번의 실패에 상심한 노부나가가 히데요시의 자원에 솔깃하면서도 미심스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중신들도 실패한 어려운 임무를 한낫 졸개대장인 히데요시가 용감히 도전한 것은 가상하지만, 
더 이상의 손실이 두렸웠던 노부나가는 처음에는 히데요시의 도전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별도의 병력지원도 필요없고 오로지 자기 수하만으로 축성에 도전할테니
축성물자만 공급해달라는 요청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세번째 축성을 히데요시에게 맡깁니다.
 
히데요시의 수하는 불과 수십명,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입니다.
히데요시의 복안은 근처의 호족을 포섭하는 것이었습니다. 근처에 도요다라는 호족이 있었는데
당시의 일본에 흔하던 반 들도적무리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도요다의 수하는 수백명, 히데요시는 도요다를 포섭합니다.
 
히데요시가 도요다를 포섭할수 있었던 것은 노부나가 아래 급속히 통일되어가는 오와리나라에서 더 이상
들도적 노릇을 하기 힘들거라는 신분상의 불안감이 크게 작용햇다고 합니다. 히데요시는 이번 축성에 성공하면
도요다를 자기 휘하의 정식 무사대장 지위를 주기로 약속합니다. 도요다가 포섭되자 노부나가와 미노 사이에서
어정거리던 다른 호족 몇명도 도요다의 주선으로 히데요시의 휘하에 포섭되었습니다.
 
 
축성에 성공하면 자신을 그 성의 성주로 임명하겠다는 노부나가의 언질을 받은 히데요시는 전직 들도적무리들을
이끌고 축성을 시작합니다. 성을 쌓는 지점은 나룻배를 대기 가장 좋은 지점이니까 말하자면 포구에 짓는 성입니다.
 
스미타마강을 제압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은 강폭이 넓어지는 하류지점이었답니다.
히데요시와 도요다 무리는 이전의 중신들과는 좀 다른 축성법을 사용합니다.
 
정통적으로 차근차근 성을 올리는 대신 기초공사만 하고 성벽을 쌓을 자재는 적의 눈에 안 띄는 곳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히데요시의 계획은 성벽쌓는 것을 하루밤 사이에 돌관작업으로 끝내려는 것입니다.
 
적들은 한참이 지나도 두더지처럼 땅만 파고있는 히데요시를 하찮게 여깁니다.
첩보에 의하면 히데요시는 중신도 아닌 졸개대장인데 달랑 혼자 온것을 보니 노부나가가 버린 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벽이 반의 반쯤 올라갈때를 기다려 기습하려는 적의 의표를 히데요시가 멎지게 찔렀습니다.
미노군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까지 맨땅이던 히데요시의 성벽이 반 넘어 올라가있습니다.
매뉴얼대로 야습을 하려는데 저녁 무렵에는 성벽이 다 완성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군대만큼 보수적인 집단은 세상에 다시 없다고 합니다.
그 날 밤 미노군은 그간의 습관대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넙니다.
강을 건넌 미노군이 역시 습관대로 성을 공격하는데 이번에는 완성된 성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단단한 성벽을 뚫지 못 한 미노군은 커다란 손실을 입고 퇴각하게 되는데
아뿔싸, 강에 가보니 나룻배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패닉에 빠져버린 미노군을 히데요시의 야무사들이 전멸시킵니다.
 
또 한 차례의 타성에 젖은 공격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전멸당합니다.
히데요시가 장악한 제해권에 의해서 전쟁의 주도권은 노부나가에게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히데요시가 난세의 무장으로 데뷰를 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데뷰였습니다.
그 때까지 히데요시에 대한 평가는 머리 잘 돌아가는 졸개 정도였는데 비로소 일군의 대장, 중신의 말석에 오르게됩니다.
 
노부나가는 히데요시가 축성한 스미타마성의 성주대리를 히대요시에 맡깁니다.
아직은 연공서열이 너무 낮아서 즉시 성주로 임명하면 구신들의 반발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한 성의 성주급이 된 히데요시는 드디어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쥔 노부나가의 미노공략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됩니다. 기책에 기책을 더해가는 히데요시..노부나가의 신임은 커져만 갑니다. 
 
 
내일은 사이토 도산이 쌓은 일본 굴지의 난공불락 이나바산성을 함락시키는 부분을 써보겠습니다.
여기서도 신기묘산 히데요시가 크게 활약합니다.

[펌 끝]

  • ?
    Sunbee 2012.01.02 22:14
    '오부나가가 가진 첫번째 경쟁력은 일본 제일이었다는 커다란 야심'

    흠.... 꿈, 꿈의 크기(?) 얘기가 있군요.  

    야망 vs. 소망
    Be Ambitious vs. 믿음 사랑 소망의 소망.
    등등

    충돌되는 가르침으로 보이는 말입니다.
    야망 vs. 소망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적이 있는데, 결론은 소망입니다.
    진정한 경쟁력으로 말입니다...
  • ?
    말뚝이 2012.01.03 01:11
    히데요시는 겨울에 주군의 신발을 품에 품고 체온으로 신발이 얼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던 한낱 몸종이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해서 마쓰시다전기를 세운 마쓰시다와 함께 일본에서는 아직도 가장 존경받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