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 (18): 노부나가 삼십육계 [펌]
교토의 동서남북을 온전히 틀어막을수 있는 절호의 챤스를 놓친 노부나가는 이를 갑니다.
만약 이 때 노부나가가 무사히 아사쿠라를 토벌할 수 있었다면, 전국시대도 좀 더 일찍 끝났을지 모릅니다.
나중에 혼노지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을 맞았을 때, 노부나가가 시동 란마루에게 공격자가 누군지 물어보았는데,
란마루가 역적은 아케치라고 대답하자, 노부나가는 '아케치라면 방법이 없구나, 죽을 준비를 하자.'고 말했답니다.
이처럼 형세판단의 달인이었던 노부나가는 아자이의 배반을 듣자마자 삼십육계를 선택합니다.
이 시점에서는 아자이의 퇴로차단이 완벽해지기 전에 초를 다퉈서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심지어 노부나가는 대오를 갖춘 질서정연한 후퇴조차 포기합니다.
후군으로 자원한 히데요시를 사지에 남기고 노부나가는 소수의 수하를 거느리고 뿔뿔이 필사의 탈출을 시작합니다.
이 때 히데요시와 함께 이에야스도 후군을 자원했으나 동맹자를 사지에 남기는 것은 무사의 도리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최후방을 지킨 것은 히데요시와 그 수하 천여명이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가 아슬아슬한 상황을 교묘히 피해내고 천신만고 교토로 귀환했을 때, 따르는 자 겨우 십여명...
이 때 만약 아자이 나가마사가 독한 맘을 먹었다면 노부나가는 객지에서 고혼이 되었을거라고 합니다.
노부나가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철석같은 맹약을 깨뜨린 것이 부끄러운 젊은 나가마사의 양심이
매형인 노부나가를 꼭 죽이겠다는 독심을 품지 못 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나가마사는 일부러 꾸물거렸다고 합니다.
누구나 꼭 죽을것이라고 생각했던 후군 히데요시가 기적적으로 생환합니다.
천우신조로 살아 돌아온 히데요시를 마중한 노부나가군은 마치 귀신을 보는것처럼 놀랐다고 합니다.
주군인 노부나가가 도주한지 꼬박 하루를 버티면서 시간을 번 히데요시가 같이 죽기로 결심한 수하들에게 말했답니다.
지금부터 칼도 창도 방패도 버리고 무거운 갑옷도 버리고 교토까지 달린다. 부디 살아서 만나자..
뒤를 따르는 아사쿠라군도 악착같이 쫒았지만, 도망치는 히데요시무리는 그야말로 필사적,
이틀이나 걸린 대탈주를 히데요시들은 뜬 눈으로 계속 뛰었다고 합니다. 멈추면 그냥 죽는 지옥의 달리기였습니다.
아자이의 배반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일단 목숨을 건진 것 이외에는 노부나가를 둘러싼 모든 정세가 돌변합니다.
가장 커다란 파장은 불패장군 노부나가도 실상은 별거아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무서워 참던 쇼오군 요시아키가 노부나가를 만만히 보게되었습니다. 노부나가와 쇼오군의 불화가 표면화되기 시작합니다.
실력이 전혀 없는 쇼오군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어명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욕적인 쇼오군 행동수칙으로 치욕을 준 노부나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서 쇼오군은 각처에 밀서를 띄웁니다.
아사쿠라, 아자이, 다케다, 모리, 미요시 3인방에 엔랴쿠사, 이시야마혼간사 등의 불교세력까지 쇼오군에게 호응합니다.
모두들 떠오르는 노부나가를 견제하고싶던 차였습니다. 욱일승천하는 노부나가는 모두에게 위협이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노부나가의 3배가 넘는 일대 세력이 쇼오군의 어명까지 지니고 노부나가를 동서남북에서 포위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자이가 노부나가를 배반한것이 음력 4월이었는데, 포위망이 형성된 것은 5월 다시 싸움이 붙은 것은 6월입니다.
이 모든 위태로운 국면이 아자이 한 사람의 배반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아자이를 씹어먹고싶은 노부나가입니다.
6월, 아사쿠라 국경에서 가까운 아네가와강에서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은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과 격돌합니다.
싸움은 기호지세, 엎치락 뒤치락하던 전투가 아사쿠라의 맹장 이소노의 저돌적인 공격으로 노부나가가 불리해지던 순간
적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에야스의 매서운 측면반격으로 위기를 넘깁니다. 이소노는 끝까지 돌격하다가 전사합니다.
아네가와강의 승전으로 기세를 회복한 노부나가는 두달 후인 8월, 셋슈에서 거병한 미요시 3인방을 토벌하려 출동하지만
노부나가의 근거지에서 원거리인 이 싸움은 노부나가에게 불리한 싸움이었습니다. 미요시에게 원병이 속속 도착합니다.
교토의 서부 셋슈에 못 박힌 노부나가에게 급보가 떨어집니다. 노부나가가 없는 틈을 타서
아자이 아사쿠라 엔략쿠지 등의 3만 군세가 교토 북쪽의 오다 전방기지 오미 사카모토성을 공격해왔다는 급보입니다.
아자이 등의 맹렬한 공격에 사카모토성은 풍전등화, 노부나가의 배다른 동생 노부하루와 중신 모리 요시나리가 전사합니다.
황급히 오미로 돌아온 노부나가에 놀란 아자이 아사쿠라는 히에이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치합니다.
노부나가가 셋슈에 얼마간 붙잡힐거라 기대했던 아자이 아사쿠라들이 체면불구 급반전한 노부나가에게 경악한 나머지
국면은 소강상태, 한동안 아자이와 팽팽하게 대치하던 노부나가에게 또다시 급보가 날아듭니다.
막강한 불교세력 이시야마 혼간사의 종정 렌뇨가 교토 남쪽인 이세지방의 이시야마 문도들에게 노부나가 공략을 명합니다.
총법사 렌뇨의 명을 받은 문도들은 노부나가의 본국인 오와리 일대를 공격하여 노부나가의 본거지가 위기에 빠집니다.
오와리에서 노부나가의 또 다른 동생 노부오키와 중신 사카이가 전사합니다. 동생들의 숫자가 점점 감소하는 노부나가..
아자이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후방을 강습당한 노부나가는 멸문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태는 위중합니다...
서민불교의 중심이었다는 히에이산의 엔랴쿠지 사나운 들도적같이 보이는 히에이 산의 승병들
어떻게든 궁지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던 노부나가는 이제는 협조를 바랄수 없게 된 쇼오군 대신 천황을 사용합니다.
천황에게 압력을 넣어서 서로 화친하라는 칙명을 받아낸 노부나가는 아자이들에게 한 차례 격렬한 공격을 퍼부은 후
칙명을 보이고 화친을 맺는데 성공합니다. 이 때 노부나가는 아사쿠라에게 매우 저자세였다고 합니다.
명문 아사쿠라에게 천하를 양보할테니 부디 화친해주십사고 애걸한 노부나가는 한동안 자중합니다.
그러나 벌써 다음해에는 다시 맹수본능을 일으켜 복수전을 벌입니다. 상대는 아자이 아사쿠라가 아닌 만만한 엔략쿠지..
작년의 위기 때 아자이 아사쿠라와 한 패로 어울렸던 엔략쿠지는 일본 굴지의 불교사원 세력이었습니다.
이 사원이 노부나가의 집중공격을 받은 이유는 그 지리적 위치와 작년의 원한 때문이었습니다.
아자이 아사쿠라가 공격해오는 길목에 위치한 이 사원은 근방의 수만 문도를 거느린 전투집단으로
전국시대의 불교사원은 하나의 봉건영지였다고 합니다. 승려는 가사를 걸친 사무라이, 수만의 문도는 잡병이었습니다.
노부나가에게 적대적인 이 사원세력을 방치하는 것은 목에 걸린 생선가시를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엔랴쿠지를 포위한 노부나가는 여러 차례 히에이산을 비우고 퇴거하라는 사자를 보냅니다. 대법사는 일언지하 거절합니다.
마침내 결심한 노부나가는 엔랴쿠지가 위치한 히에이산 전체를 모조리 태워버릴것을 명령합니다.
부처를 태워버리라는 명령에 어지간한 노부나가의 부하들도 망설입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특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목을 걸고 상주하는 부하들에게 노부나가는 부처의 불벌은 내가 감당할테니 그대들은 명을 따르라고 호령합니다.
아케치 등의 명분은 천하의 공분을 살거라는 것이고 노부나가의 명분은 적들은 승려가 아니라 가사를 걸친 도적이라는 것입니다.
노부나가의 엄명에 히에이산은 화공을 받아 삼일 밤낮을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저 차근 차근 태워 올라오는 노부나가에게 대법사의 사자가 줄을 잇습니다.
명령대로 퇴거할테니 화공을 멈추고 퇴로를 열어달라는 간청을 노부나가는 사자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으로 답합니다.
총 여섯차례의 사자가 내려왔는데 모두 참살되었다고 하니, 그후로 노부나가가 불교와 원수가 된것도 당연합니다.
총 2만여 문도가 대법사에서 어린아이까지 거의 대부분 타죽거나 칼을 맞아 죽었답니다.
이후로 엔랴쿠지의 남은 문도들에게 노부나가는 마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노부나가의 복수전 무섭습니다..
엔랴쿠지싸움은 대세를 가르는 큰 전투는 아니었지만, 노부나가는 다시 영지를 안정시키고 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당장의 화급을 면한 노부나가지만, 위기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사방에 쇼오군의 밀서를 받은 무장들 천지이기 때문입니다.
[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