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1월15일
대보름 액운 쫓기
대보름은 달리 말하면 상원(上元)이라 한다. 상원이 있으니, 당연히 중원(中元)과 하원(下元)도 있겠다. 이것들을 삼원(三元)이라 하는데, 모두 도가(道家)에서 쓰던 말들이다. 도가에서는 음력 1월 15일을 상원, 7월 15일을 중원, 10월 15일을 하원이라고 하여, 각각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고, 지관(地官)이 죄를 구해 주며, 수관(水官)이 액운을 막아 주는 날로 여겼다.
한 해의 시작이라면 으레 원단(元旦), 곧 1월 1일이 중시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음력을 준수하는 사회에서는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말하자면 대보름이 보다 중요한 날로 인식되었다. 새해 첫 번째로 떠오르는 둥글고 밝은 달을 쳐다보면서 풍성하고 넉넉한 한 해를 기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민속놀이 등 세시풍속의 대부분이 대보름날에 행해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대보름날엔 약밥과 오곡밥과 복쌈을 해먹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부럼을 깨물고, 팥죽을 쑤며, 백가반(百家飯)을 도는데, 달이 떠오르면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고[張燈] 달맞이[候月]를 한 후 밤늦도록 떼 지어 다녔다[放夜]. 그러면서 사이사이 아이들은 차고 다니던 호로(葫虜)를 내다버리고, 인형, 곧 제웅을 깨부수거나, 연을 날려 보낸 다음 실싸움[交絲]을 하였다. 어른들은 소경을 불러 집안 편안토록 안택경(安宅經)을 읽히고, 돌싸움[石戰]·줄다리기[索戰]·횃불싸움(炬戰)과 차전(車戰)놀이를 벌였는데, 특히 서울에서는 종각의 종소리를 들으며[聽鍾] 시내 여러 다리를 밤새 밟았다[踏橋].
대보름날 행하던 이 세시풍속 중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이 액을 막거나 물리치는 의식들이다. 그것은 물론 보름달과 함께 모질고 사나운 고난이나 곤란함 따위가 깨끗이 사라지라는 일종의 제의(祭儀)였다. 액운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으로 ‘연날리기[放鳶]’가 대표적이지만,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호로(棄葫虜)’와 ‘타추인(打芻人)’이 더 있었다.
‘기호로’란 아이들이 겨우내 차고 다니던, 비단실에 삼색 구슬을 매단 호로라는 장식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설명이 자상하다. “어린아이들은 겨울부터 청·홍·황 세 개의 나무조롱을 찬다. 그 모양은 콩과 같은데, 거기에다가 비단 실로 끈을 만들어 차고 다니다가 대보름 전날 한밤중에 길에 몰래 버리는 것을 액땜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주워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끄트머리에 돈 한 푼을 메달아 두었기 때문이다. ‘타추인’은 제웅이라는 인형을 만들고 그 속에 동전을 넣어 문 밖에다 버림으로써 한 해의 액을 무리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이 돈을 얻어볼 요량으로 밤늦도록 거리를 다니면서 제웅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제웅이 던져지면 우루루 달려들어 머리를 깨서 돈을 꺼내갔다.
‘기호로’와 ‘타추인’은 불행이나 액운을 저주하는 대신에 무엇인가를 내어다 버림으로써 액운을 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의 불행은 대개 너무 많이 가지고 있거나, 남보다 혹은 지금보다 더 많이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인지 모른다.
욕구(need)는 언제나 요구(demand)를 통해 표현되고 충족되므로, 그것은 항상 불충분할 수밖에 없고, 욕구와 요구 사이의 이러한 격차로 욕망(desire)이 생겨나며, 결국 우리는 욕망을 욕망하는 근원적인 결핍(lack)에 시달린다는 라캉(J. Lacan, 1901~1981)의 이야기를 굳이 예로 들 것도 없다. 많이 버릴수록 더욱 큰 그릇이 만들어질 터, 그럴 때 새로운 것을 더 채워 볼 수 있다. 버림의 역설이다. 버림으로써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덤으로 남들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다시 생각해 보는 선조의 지혜다.
출처: 글마루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