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2.06.17 02:20

산등성이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산등성이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 리를 갈 듯 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식식거리며 아버지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는 [악어], [공손한 손]
 
  이길 것도 없고, 질 것도 없는 것 같더이다 . . . . . . 만사가.

 체력이 달리는 저로서는 오늘도 토요 가족의 뒤꽁무니를 따라 산길을 걷고, 산모퉁이를 돌고, 산등성이를 넘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이것을 느낄 수 있도록 산악회를 위해 봉사해주시는 임원님들 감사합니다.

 
  • ?
    bear 2012.06.17 12:15

    괜시리 콧잔등이 시리내요. "산등성이" 어감적으로는 정감있고 포근한 느낌의 단어 있데도 소설속에서는 다른 느낌을 받네요. 이단어하나로 잠깐 옛날을 그려볼수있어서 행복 했습니다. 벽송님 건강하시고 다음주 산행에서 뵙죠.

  • ?
    bear 2012.06.17 19:49

    ' 콧등이 짠하네요 "산등성이" 어감으로는 정감있고포근함을 가지고있지만 이글에서는 왠지슬프게 표현이되었네요. 아스라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네요. 늘건강 하시고 다음 산해에서 뵐께요.
  • ?
    자연 2012.06.18 03:21
    아버진 향상  그릇 비스듬히 밥을 남기셨다
    어머닌 아버지가 남긴 밥으로 요길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밥을 남기지 않으셨다
    아~배가 부르셔서 남긴것이 아니였구나! 


  • ?
    본드 2012.06.18 10:14
         .
  • ?
    sadik 2012.06.18 12:50


     

    친구(親舊)

     

    친구(親舊)의 '친(親)'자의 한자 구성을 보면
    '나무 위에 서서 지켜봐 주는 것'이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내게로 다가와 준다.
    진정한 친구는 모두가 떠날 때 내게 오는 사람이다.
    과연 나에게 그런 친구는 몇이나 될까.
    아니, 나는 누군가에게 과연 그런 친구일까.

     

    - 이종선의《성공이 행복인 줄 알았다》중에서

  • ?
    아리송해 2012.06.18 13:08
    Bay 산악회님들은 문인들이 많으신것 같네요. 주옥같은 글들이 많은걸 보니...
  • ?
    sky 2012.06.18 13:29

    '친구'라 하니, 다음의 '시'가 떠오릅니다....



    사람을 가졌는가

      석헌

     

    만리길 나서는

    처자를 내맡기며

    놓고 만한 사람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세상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세상을 놓고 떠나려

    '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하는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List of Articles
제목 글쓴이 조회 수
bike-n-hike 자전거와 하이킹 결합 - Point Reyes 출처: http://www.weekendsherpa.com/stories/bike-hike-to-arch-rock-point-reyes/지도: http://www.nps.gov/pore/planyourvisit/upload/map_trailssouth.pdf #1... 17 본드 6623
7/4 번개 산행 구상 7/4 수요일은 독립기념일 휴일입니다.조금 먼 곳으로 산행을 하루 다녀 올까 구상해 보고 있습니다. 일단 전에 제가 올렸던 Chico 의 Upper Bidwell Park 를 생각... 10 본드 3664
노딕 워킹 (Nordic Walking) 스키어나 하이커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폴 (지팡이) 을 사용해 왔지만 노딕 워킹 (Nordic Walking) 은 걷는 운동에 폴을 사용하는 것으로 1997 년에 마코 칸타네... 본드 6870
제 6대 운영진입니다. 1. 제 6대 운영진 명단입니다. 일 년 동안 흔쾌히 봉사해주시기로 했습니다. - 강토, 말뚝이, 보리수, 본드*, 아지랑, KT, Sunbee 입니다 - 대표총무: Sunbee - ... 8 Sunbee 4650
바느질 그리고 나 온종일 바느질을 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망치질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젯밤 집사람이 찢어진 텐트를 고쳐 놓으라고 했고, 그 말은 밤새 머릿속을 ... 4 아싸&리아 8072
캘리포니아 주립공원을 닫지 않는답니다 28일자 산호제머큐리 뉴스의 기사입니다. 오는 일요일에 닫기로 했던 70개 공원들을 닫지 않기로 했답니다. 민간그룹, 시정부 그리고 큰 회사들이 돈을 내서 살리... 3 말뚝이 6226
자신의 이해 (펌) 우리는 자신을 완전히 지각하고 있을 때에, 자아니 ego니 하는 "나의" 진면목이 완전히 노출되는 그런 삶의 운동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아는 오직 인간관계에서 ,... 4 musim 3388
아이비 정회원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정식 회원입니다. 솔직히 매주 참석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습니다. 그렇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름다운 인연 계속 ... 10 아이비 3981
산에대한 작은 생각 바쁜 하루를 보내고, 좀 차분한 시간입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몇자 적어봅니다. 저는 산을 잘 모릅니다. 난생 처음으로 이 산악회에서 산이란 곳을 다니기 시작... 3 Sunbee 3484
댓글 추적 http://www.bayalpineclub.net/61225#comment_132044 에의 답변 맞습니다. 이미 구글 검색으로도 베이산악회의 정보가 많이 뜨고 있지요. 저도 심심풀이의 댓글을... 2 본드 3943
봄 정회원 등업 시켜주세요! 안녕하세요.그동안 강토 +1으로 어깨넘어 구경만 하다가 드디어 본격적인 온라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난 3개월동안 낯선 이곳 생활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는데... 11 BoM 4022
오랜만의 베이산악회식구와의 산행 지난 16일에 구름님과 바람 (초대회장)님과 청계산역에서 만나 청계산 산행을 했습니다. 코스는 원터골로 매봉, 만경대를 거쳐 이수봉을 찍고 옛골로 내려오는 코... 1 에코맨 4682
6/23 부정기산행. 며칠동안 게시판을 들여다 봐도 6/23 일 부정기산행이 뜨질않아, 산행지 추천를 받습니다. 아니면 흰님중에 한분이 올리셔도 ' 딱이다' 이고요. 4 Johnny Walker 3401
해프 돔 (Half Dome)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보를 한 번 추려 봅니다. 이전 글 링크: http://www.bayalpineclub.net/freeboard/131077 베이산악회 게시판을 검색해도 많은 자... 9 file 본드 16872
산등성이 산등성이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 7 벽송 5280
Board Pagination Prev 1 ...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 187 Next
/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