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

by 벽송 posted Jun 17, 2012 Views 5281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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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등성이
                                                                                                    고영민

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 어찌됐든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 없는 방문만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께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나가는 칠흑의 어둠 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 큰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가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 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치고는 저기 저 등성이를 넘는 것을 못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 잰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 리를 갈 듯 하다. 드디어 산등성,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식식거리며 아버지 집으로 천릿길을 내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놓은 대문 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 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는 [악어], [공손한 손]
 
  이길 것도 없고, 질 것도 없는 것 같더이다 . . . . . . 만사가.

 체력이 달리는 저로서는 오늘도 토요 가족의 뒤꽁무니를 따라 산길을 걷고, 산모퉁이를 돌고, 산등성이를 넘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이것을 느낄 수 있도록 산악회를 위해 봉사해주시는 임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