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산행에 대한 추억

by mysong posted May 03, 2009 Views 416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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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일이 있어 Tamalpais 우중 산행을 빠지고 샌프란에 있었는데,  보슬비 내리는 Golden Gate Park 에 만개한 Rhododendron 이
옛날 추억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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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행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이후에 발 수술까지 해야 했으니...
1993년 5월말 즈음에 있었던 일인가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던지라 주로 북한산/도봉산을 가곤 했지만,
테마별 산행지가 있어 철따라 가곤했던 산들이 있었으니, 겨울엔 태백산, 가을엔 영남알프스나 오서산 등등...
그리고 이맘때면 가곤했던 산이 바로 소백산이었다.

5월중순 이후부터 소백산 수목한계선 아래에서 만개하는 철쭉...
보통의 분홍빛 철쭉과는 약간 틀린, 꽃도 크고 살구빛에 가까운 산철쭉이다.
그리고 정상부분은 초원지대...  눈에 훠~언 하다.


산에 자주 같이 다니던 선배언니 두명과 산행초보인 친구 둘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다섯명이 청량리역에서 풍기(?)가는 밤열차를 탔다.
들뜬 밤, 산행에 대비해 약간의 잠을 청했지만 기차를 두들겨대는 비가 장난이 아니다.
산에 다니면 온갖 기후를 맞는게 당연지사.... 판초랑 여분의 속옷 정도는 챙겼지만, 이건 그냥 '비' 수준을 넘어선다.
아직 어두운 시간, 기차에서 내려 산행시작 지점인 삼가리로 이동. 약간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찬 비가 내린다.
같은 기차로 도착했을 듯한 산행팀이 여럿 보이고 비슷한 시간대에 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등산로가 엉망이다. 상당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걷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몇몇팀은 상의를 하더니 돌아가는 분위기.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고, 꽤 스릴있는 산행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팀은 산행 계속하는데 전원(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찬성, 계속 올라간다.

드뎌 철쭉 군락 지대... 간밤의 세찬 바람으로 이번엔 바닥까지 온통 철쭉으로 뒤덮었다.
포기하고 갔더라면 정말 억울할 뻔 했을 선경이다.

그리고 정상 초원지대.  맑은 날에도 바람이 상당히 부는 곳인데,  오늘은 좀 심하다.
마른 몸도 아닌데, 바람때문에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없다.
다행히 비로봉 정상 근처에 무인대피소 (말그대로 사방 벽과 지붕만 있는 곳이다.)가 있어 그리로 피했다. 
우리 일행말고도 두팀이 더 모여 들었다.  산행초보인 내 친구 한명은 급격히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처럼 등산복이 좋은 시절이 아닌지라 그냥 평상복이었던 우린 그저 그나마 마른 옷을 골라 갈아입히고, 어느 팀에선가 가져온 독한 양주를 한모금씩 돌려가며 마셨다.

원래 일정이었던,  연화봉 능선을 따라 희방사쪽으로 내려가는 계획을 취소하고 가장 빠른 시간내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는 천동계곡을 타기로 모든 팀들이 의견을 맞춘다.  나도 그 전에 몇번인가 소백산에 간 적이 있었고 천동계곡으로 하산한 적도 있어, 그 길이 개울을 옆에 두고 내려가며 또 몇번인가를 개울을 건너야 하는 길임을 알았는데도 그 당시엔 그런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듯 싶다.
아니나 다를까 우린 폭우로 엄청 불어버린 개울을 만났다 emoticon....
돌아가기엔 다시 정상으로 오를 기력이 남아있질 않고...
완만한 계곡이 아니어서 우회할 길을 찾기도 쉽지 않고,
비가 그쳤으니 한참(?) 있으면 계곡 물이 줄어들터, 그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는 없겠다는 체념도 나오고...
다행히 다른 두팀중 한팀이 어느 회사 산악회 멤버들로 자일및 암벽 도구들을 가져왔던 것.
몇번의 개울을 자일을 타고 건너야 했는데, 마지막 개울에서는 그만 개울 밑바닥에서 물살따라 구르던 큰 돌에 맞아 넘어지기도...
그렇게 긴장된 순간을 보내다가 밑에서 올라온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안도감과 반가움이란... 아~ 이젠 끝났구나...

정말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한 날이었다.
돌에 맞은 발때문에 한동안 고생도 하고, 몇개월 후엔 수술도 해야 했다.
지금도 한국가서 그 멤버들을 만나면 그 날 얘기를 빼 놓지 않는다.
그때 친구가 잘못 될까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이젠 아무리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곳/것이어도 다른 사람에게 같이 가잔 소리는 잘 못한다.
물론 그 친군 이후로 계속 내 산행이나 여행에 동행이 되곤 한다.

참, 자몽 (grapefruit).  그 당시 한국에서 grapefruit은 참 귀한 과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초보산행에, 저 체온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 친구 배낭에서 산행을 마친 후 나온 건 세개의 묵직한 자몽.
먹는거 보다 버릴 게 더 많은, 무거운 자몽을 산행에 가져왔다고 놀림도 받았지만,
산행후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피로를 푼 후 맛있게 먹었다는...  

그. 립.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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