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철이들까, 난

by 벽송 posted Jun 19, 2013 Views 3657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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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몰랐던 일

                                                                                이동순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저녁밥을 기다리던
  수백개의 거미줄이 나도 모르게 부서졌고
  때마침 오솔길을 횡단해가던
  작은 개미와 메뚜기 투구벌레의 어린것들은
  내 구둣발 밑에서 죽어갔다,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방금 지나간 두더지의 땅속 길을 무너뜨려
  새끼 두더지로 하여금 방향을 잃어버리도록 만들었고
  사람이 낸 길을 초록으로 다시 쓸어 덮으려는
  저 잔가지들의 애타는 손짓을
  일없이 꺾어서 무자비하게 부러뜨렸다.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풀잎 대궁에 매달려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영롱한 이슬방울의 고고함을
  발로 차서 덧없이 떨어뜨리고
  산길 한복판에 온몸을 낮게 엎드려
  고단한 날개를 말리우던 잠자리의 사색을 깨워서
  먼 공중으로 쫓아버렸다.

  내가 기운차게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이처럼 나도 모르게 저지른 불상사는 얼마나 많이도 있었나
  생각해보면 한 가지의 즐거움이란
  반드시 남의 고통을 디디고서 얻어내는 것

  이것도 모르고 나는 산 위에 올라서
  마냥 철없이 좋아하기만 했었던 것이다.


        * 이동순 : 영남대 교수, 경북대 국문과 졸, (개밥풀), (물의 노래) 등 다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