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7 15:38

너 살고 나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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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잠이 들기까지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게 된다. 누워서 바라본 천장은 흰 색깔에 도톨도톨 한 것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아 온 지가 이십오년이 지나간다. 늘 같은 것을 보며 잠이 드는 익숙함이지만 오늘 따라 눈위에 높은 천장에 매달린 왕 거미가 평온해야 할 잠자리에 스트레스를 더한다. 가끔 그런 녀석을 보아 왔고 나는 천적이 되어 손으로 잽싸게 때려잡는 기술을 이미 터득해 왔지만, 오늘은 어떻게 해 볼 재간이 없다. 거미는 몸에서 만든 줄로 수직 낙하하는 기술이 있다니 더욱 잠이 오질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을 고치는 것이 도움되리라 하며 불교의 "살생을 하지말라"는 계율을 생각해본다. 그것은 거미 한 마리라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것일 것이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잠은 오지를 않는다. 얼마후에 눈을 떴을 때는 거미는 보이질 않는다. 바로 눈위에 있던 녀석이 어느 틈에 한쪽 구석에 가서 붙어있다. 도대체 어떻게 거꾸로 매달려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을까? 사람의 다리의 힘이 거미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천장에서 쥐떼들의 소리를 들어가며 잠도 잘 왔건만, 세상이 바뀐 요즈음에는 홈통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는 물론, 시계소리도 신경이 쓰인다. 마음을 누그리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다.
무의식적으로 거미를 찾게 되지만 그놈은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불리한 낮 동안은 몸을 숨기는 것일 것이다. 옛말에 아침에 거미를 보면 복이 들어 온다는 것도 모르는 염치없는 놈이다. 내 역시 일어나서는 다시 침실에 갈 일이 없으니 다행히 오랜 시간 잊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근심, 불안, 초조, 두려움을 앉고 사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도 그러한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의 다변화로 그때그때 적절히 대처해 나가야 할 뿐이다. 거미 한 마리가 나를 괴롭혔듯이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자각하며 살고 싶다.

 

거미야!
오늘 저녁에도 어느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겠지...  편하게 같이 살자.
하지만 나한테 잡히지 말고, 너 살고 나도 살자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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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2013.09.07 18:15

    거미와의 기싸움에서 무심님이 많이 양보하시는 모습을 보니 제가 혼자 살 때 모습을 떠올리며 자숙의 시간을 가지게 되요.  

    당시에 벌레는 무조건 꾸욱 눌러서 처치해야 하는 줄로만 알고, 아까운 두루마리 휴지만 금새 동났었죠. 근데 옆지기가 하는 걸 보니 거미같은 파충류는 사람에 무해하기 때문에 안죽이고 천장에 붙어있는 놈을 컵에다 조심스레 덮어 밑에 마분지 깐 다음 바깥 잔디에 놓아주더군요. 

    거미와 친구가 되실 무심님께서 잠이 안오실 때, 이런거 추천해드려도 되는지 몰라도, 전 Melatonin 3mg 을 한알 복용하고 잡니다.. 요즘은 거의 매주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가기 다른 facility에서 들쭉날쭉한 쉬프트 근무를 하게 되는데, 긴장으로 잠이 안올때 이 제재로 많은 효과보고 있어요.  삶의 뼈대가 되는 말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산행에서 뵙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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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m 2013.09.07 19:35

    아시아님,


    저의 볼품 없는 글 바람으로 먼 데서 오신 아시아님의 글을 받으니 더없이 반갑습니다.
    옆지기님의 좋은 성품을 받아서 생포하게 되면, 저도 cup에 담아 특별 사면을 하겠습니다. ㅎㅎ
    먼 곳으로 다니는 직장생활에 매우 힘드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이 순간이 전부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쉼표 있는 생활을 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추천해 주신 약도 기억했다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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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지랑 2013.09.08 13:03
    몇년전 일이다. 국경일 휴가로 신이나서 Lassen Volcanic NP 을 향해 떠났다.  
    친구의 직장동료가 국립공원 근처에 여름별장이 (Cottage) 있다고 집열쇠를 주었다고 한다. 
    빽빽히 나무로 찬 숲속에 카테지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막상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오랫동안  사용안한 카테지라서, 수백마리의 거미와 엉키고 설킨 허연 거미줄이 우리를 반겼다.
    흡사 할로인 데이에나 있을법한 풍경이었다. 
    기겁한 친구와 애들은 모텔로 가자고 한다.   국경일 휴가에 남아 있는 모텔 방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지....
    빗자루를 공중에 휘둘러서 거미줄을 훝어내고 방마다 베큠을 해도 거미들은 끝도 없이
    구석마다 쏱아져나와 1 시간만에 우리는 포기를 했다.
    우리는 침대 매트레스를 리빙룸 한가운데다 끌어다 놓고, 밤새도록 불은 안 끄기로 했다.
    친구는 거미때문에 무섭다고 잠드려고 애쓰는 내 얼굴 바로 옆에서 애들과 화투를 쳤다. 새벽 3시쯤되니 모두 조용하다.
    나는 일어나 Fire place 에다 장작불을 피우며 춥다고 소란을 떨었다. 
    그날밤 우리 모두 잠을 설쳤지만  아무도 거미에  물리지 않았다. 
    나는 이때부터 숲속에 별장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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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m 2013.09.08 13:42

     

    아지랑님,
    많은 곤충류와도 함께 했던 휴가이었군요.
    그래서 특별했던 추억은 영원히 남아 있나 봅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뜨거웠던 정열과 사랑은

    영원히 머무르자고 하는데

    이제는 가야 할, 쉬워 가야 할

    가을을 향해 서 있다.

     

    익어가는 홍시와 함께

    내 마음이 익어갈 즈음에

    홍시를 한입 물어

    그리움을 잊을까

    나는 가을의 길목에 서 있다.

                                        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