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Rock 여행담 (1)
10여년전 동부에서 서부로 긴 자동차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 즈음 시간에 쫒겨
들리고 싶었지만 못 들렸거나 들렸어도 잠깐 체류하게 되어 아쉬움이 늘 남아 있던 세 곳이 있었지요. Zion National Park, Sedona, Grand Canyon.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금방이라도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던 그 곳.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6일까지 열흘간 드디어 그곳에 다녀 왔습니다.
지금 제 마음속에 가득한 이번 여행에 대한 감회와 충만감. 그간의 아쉬움이 컸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여행지였고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중의 경험들 그리고 단상들, 횐님들과 나누어 보고 싶어 없는 글솜씨 사진 솜씨 (산아무개님들, 한사진하는 우리 "산"씨 가문에 누를 끼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지만 몇마디 여행담이라도 써 볼까 합니다. 횐님들의 지난 추억과 또 앞으로의 여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Zion 국립공원 #1
오늘은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 Zion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날이다.
아침 라스베가스에 있는 Nellis 공군기지의 Lodge를 출발했다. 어제 오랫동안 운전을 해서 왔지만 잠을 푹 자고 난 덕에 몸이 개운하다. I-15 N으로 들어서니 텅빈 활주로 같은 고속도로가 되어 있다. 어제 추수감사절날 라스베가스로 향하던 그 긴 차량 행렬은 밤새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휘황차던 어젯밤 LV Strip의 불빛이 지금은 도박으로 밤을 꼬박 새운 사람처럼 피곤해 보인다.
자동차가 Nevada주를 벗어날 즈음, 나는 내면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그 집중력을 느낀다. 이것은 내가 자연을 만나러 갈 때 종종 가지게 되는 아주 긍정적인 느낌이다. 몰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간다는 신호라 할까… 아무튼 이 느낌은 참 좋다. 이때부터는 세속일에 대한 번다함도, 그리고 solo의 행각이 주는 고독감마저도 없어지니까.
Zion 국립공원은 보통 세 지역으로 나눈다.
공원의 중심부인 동쪽의Springdale 지역, 서쪽 끝의 Kolob Canyons 지역, 그리고 그 둘 중간쯤에 있는 Lava Point 지역. 오늘 일정은 Kolob Canyons와 Lava Point 지역을 자동차로 돌아보는 것이다.
먼저 15번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는 Kolob Canyons로 향했다. 라스베가스에서 150 마일쯤 되는 곳이다. 여기는 조그만 Visitor Center가 있는 입구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캐년을 따라 5마일쯤 되는 산길 자동차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포장도로의 아스팔트 자체가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이 이미 Red Rock Country에 들어섰음을 알려 준다.
한산한 입구가 좀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산길을 한 굽이 돌자마자 나의 그런 터무니없는 감상이 일순에 깨어져 버린다. 정면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붉은색 rock formation. 나도 모르게 나오는 화아~! 하는 탄성과 함께 그냥 온몸이 저려 온다. 전에 유타의 다른 국립공원들에서 보았던 그런 아기자기한 조형들과는 완연히 다른 육중함이 나를 순식간에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Kolob Canyons 연도 #1)
Kolob Canyons 지역은 굽이굽이 여러 곳에 Vista Point를 만들어 놓았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붉은 바위산. 이것이 그 연도의 곳곳에서 공히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각각은 모두 개성을 가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요세미티 El Capitan 처럼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 평평한 테라스형 꼭대기, 병풍 모양으로 이어진 까마득한 절벽들, 맑은 물이 흘러 나오는 깊숙한 협곡...
(Kolob Canyons 연도 #2)
(Kolob Canyons 연도 #3)
(Kolob Canyons 연도 #4)
(Kolob Canyons 연도 #5)
오늘 하이킹할 예정이 없었지만 왕복 5 마일쯤 되는 Taylor Creek Trail 입구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골짜기가 너무 멋있어 보여 정말 걸어보고 싶어서... 하지만 시간을 헤아려 보니 아무래도 일정에 무리가 될 것 같다. 몹시 아쉽지만 5 마일의 Kolob Canyons 길이 보여준 한 편의 통쾌한 파노라마에 감사하며 다음 목적지인 Lava Point로 행로를 재촉하기로 했다.
I-15를 타고 다시 남쪽 (라스베가스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동쪽으로 Utah 17번이 있고, 그 길은 곧 St. George에서 오는 Utah 9번과 연결된다. Utah 9번이 바로 Zion NP의 중심부로 가는 길이다.
9번을 타고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Virgin이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거기에 다음 행선지인 Lava Point로 올라가는 자동차길 (Kolob Terrace Road) 입구가 북쪽으로 나 있다.
포장된 산길을 따라 16마일쯤 올라가 Zion NP 팻말이 붙어 있는 짧은 비포장길로 들어서면 이윽고 Lava Point 전망대에 이른다. 고도 (7490f/2405m)가 높은 곳이라 눈과 얼음이 제법 깔려 있고, 아래쪽 Virgin 마을보다는 훨씬 쌀쌀하다. 그렇지만 확 트인 동남쪽 아래로 Zion NP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북쪽의Bryce Canyon NP와 저 동쪽 멀리 Grand Canyon의 아득한 윤곽까지... Lava Point는 Zion 버젼의 (요세미티) Glacial Point라고 하면 되겠다.
나 혼자밖에 없는 전망대. 벤치에 앉아 멀리 아래에 펼쳐진 장관을 조용히 음미하면서 맛나는 유타 마을의 homemade 샌드위치로 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왁짜지껄 사람들 소리. 3 세대 (할아버지, 아빠/엄마, 손자/손녀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몰려 왔다. 그리고는 할아버지가 아이들한테 저 아래쪽의 Zion 공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귀동냥을 해 보니 상당히 전문성을 띤 설명이다. 지리학자인가 아니면 고고학자인가?
설명을 마친 할아버지는 한참동안 혼자서 감회롭게 Zion을 응시하고 있었다.
점심을 마치고 앉아있던 나는 할아버지한테로 다가가 인사하고 몇가지 질문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내 질문들에 대한 답뿐만 아니라 방금 손자 손녀들에게 해 주었던 설명을 다시 나에게도 신나게 해 주신다. Zion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열정적인 설명.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어떻게 Zion을 이렇게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계시는가? 여쭈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올해 77세의 할아버지. 그분의 아버님께서 38년간 Zion NP의 Ranger 였으며, 당신 또한 40년을 Zion Ranger로 지내셨단다. Lava Point가 전에는 Fire Watchtower였는데 당신의 주근무지가 여기였다고. 지금은 은퇴해서 캘리포니아 Lone Pine에 살고 있지만 (물론 Mt. Whitney를 여러번 등정) 매년 추수감사절에 딸네 식구들이 다니러 오면 여기로 같이 온단다. (옆에 있던 그분 사위왈: 아까 할아버지의 설명은 매년 여기 와서 듣는 연례행사란다.)
그 할아버지의 Zion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이제 이해가 되면서, 하나의 감명 깊었던 기억이 곧바로 내 마음에 떠올랐다. 얼마전 PBS에서 방영한 'National Parks'에 나오던 대를 잇는 Park Ranger들. 할아버지께 그 프로그램 보셨냐고 물었다. 여러사람들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해 주어서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아직 보지는 못 하셨단다. Park Ranger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고 했더니 꼭 보시겠단다. 내가 오늘 Zion의 일급 Ranger를 만나 최고급 설명을 듣는 행운을 누렸으니 집에 돌아가 그 프로그램 DVD나마 구워서 할아버지께 보내드리겠다고 했더니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친해진 우리는 Zion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한장)
할아버지께서 Zion 중심부로 내려가면 어디어디 들릴 거냐고 물었다.
Angels Landing하고 The Narrows.
그 두 곳에 대한 할아버지의 특별 보충설명과 함께 코멘트가 따른다.
The Narrows를 흐르는 강물이 지금은 아주 차가울 것이고, Angels Landing은 trail 마지막 부분이 스릴 만점일 거라고. 여러 군데가 폭은1m 조금 넘을 정도인데 그 좌우는 수백길 낭떠러지란다. 휴우~
이 근처에 있는 전에 살던 집에 가 본다며 할아버지네들이 먼저 떠났다.
나는 남아서 그 할아버지처럼 한참 동안 Zion을 다시 내려다 봤다.
이제 Zion이 나에게도 감회로운 곳인 것처럼…
(Lava Point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Zion NP 중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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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와서 제일 먼저 갔던 여행지들입니다. 그 웅장함에 감탄하면서, 그렇지만 여유롭진 못한 여행이어서 다시 갈 날만 기다리는 곳이지요.
이렇게 사진이랑 여행담 함께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옛날(미국 온지 이제 6년이니까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네요) 생각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분명 Angels Landing 도 다녀오셨을 거 같은데, 다음편에 올려주실 거죠?
Walters Wiggles 를 비롯해 Angels Landing Trail 곳곳이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
이야기 보따리 펑펑 풀어 주시길... 학수고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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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좋은곳 다녀 오셧네요.
산동무님의 좋은 여행기 와 사진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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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3~4년전에 지나가는 길에 하루 들렸었는데, 전혀 색다른 경관,
붉은색 바위들과 길바닥 등이 생각 납니다. 차를 파킹하고 버스를 타고
골짜기를 구경했던 것, 사진을 찍으려하다가 렌즈에 들어오지 않아서
포기했었는데.... 산동무님 올리신 사진들은 또 다른면이 있는것 갔읍니다.
동쪽 서쪽 모두구경 속속들이 하고 오신것 같아서 부럽고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 집니다. -
부러우면 지는거다... 그래도 마냥 부럽기만 하군요.
다음에 산동무님 여행 가시면 안면몰수하고 따라 붙어야겠습니다.
이야기 보따리 계속 풀어 주셔서 게시판을 달궈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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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무님,
근사한 사진과 재밌는 여행 이야기 감사해요.
다음편을 잔뜩 기대하고 있을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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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 공중전 치루고 올리신 사진과 설명 대단하십니다
올리신것 구경은 잘하는데 안면몰수하고 따라붙기는 고생이 이루말로~~~차로다니면 한번쯤!!
암벽하시는분들은 침이 꼴깍!!
바위도 특이하네요~~ 자연 역시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국립공원입니다. 남가주 살 때는 매년 갔었는데, 이리로 온 후에는 아직 못갔습니다. 잊고 있었던 지명들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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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 말로 형용할수없는 표정들로 보이는 돌산의 모습들이 웅장함과 더블어 환상이네요~~
좋은산행후기와 멋진사진 올려주셔서
덕분에 전 이렇게 편안하게 감상할수있음에 산동무님께 무~쟈게 감사드립니다..^*^
비오는날 이런글을 접하게되서 그런지 분위기도 아주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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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산동무님의 여행후기(1)를 읽고, 언젠가는 나도 가야지.... 하며 부러워했는데..... (아직도 안가봤다면 믿으시겠어요?)
이번 연말에 가자는 계획이 한달전 부터 있었는데 드뎌 저희가 타고갈 큰 벤이 결정이되어서 친구들과 가기로 결정하고나니
산동무님의 산행후기를 다시한번 읽으며, 꼼꼼하게 후기를 남기신 덕분에 좋은정보를갖고 떠날수있어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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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관광버스 타고 지나갔던곳 같네요.
두말하면 대자연을 모독하는것 같아서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대단하다!!" 산동무님,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