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Rock 여행담 (2)

by 산동무 posted Dec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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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on #2

 

오래전 한국에서 친구들과 철부지처럼 등산다닐 때 그 무거운 군용텐트를 짊어지고 다니며 거기서 자곤 했던 것은 늘 잊혀지지 않는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비로소 근간에 들어서야 텐트에서 자는 재미를 다시 실제로 맛보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도 자연속에서는 텐트에서 잔다라는 신나는 원칙을 세웠다.

 

어제 오후 Lava Point에서 Springdale에 있는 Zion 공원의 중심부로 내려오니 시즌이 지났는데도 주말이라서인지 겨우 텐트 사이트를 잡을 수 있었다. (Zion NP는 겨울철에는 walk-inWatchman Campground 하나만 연다.) 작년 조카가 왔을 때 사 놓았던 4인용 텐트를 혼자서 치느라 한참 동안 끙끙거렸다. 그만두고 그냥 내가 backpacking 다닐 때 쓰는 MSR Hubba Solo로 할까하다가 (얘는 5분이면 혼자서도 쉽게 끝낼 수 있다.) 연습삼아 주섬주섬 다 세우고 나니 Hubba Solo에 비하면 대궐같이 넓고 편한 뿌듯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고요함속의 잔잔한 바람소리 들으며 잠이 들어, 텐트를 스쳐 주는 동틀 무렵 바람소리에 잠을 깼다.  , 오늘은 Zion의 간판스타 Angels Landing the Narrows로 하이킹을 간다. 비 올 가능성이 있다는 일기 예보가 좀 걱정이 돼 얼른 바깥 하늘을 살펴 보니 비가 내릴 기색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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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mpground 의 이른 아침: 동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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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mpground 의 이른 아침: 서쪽 모습)

 

밖의 아침 공기가 좀 쌀쌀한 것 같아, 따뜻한 아침을 해 먹으려고 준비해온 미역국을 꺼내는데, 허걱! 불현듯 어제 만난 그 Ranger 할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Angels Landing trail이 좁고 그 양옆이 수백길 절벽이라… 슬그머니 미역국을 도로 집어 넣고는 바로 하이킹 행장을 챙겨 Zion Lodge로 갔다. 거기 식당에서도 버터 같은 것은 전혀 손대지 않았지만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Zion Lodge 바로 건너편에 Emerald Pools Trails 입구가 있다. 그리고 그 trail을 한 바퀴 돌고 나면 Virgin River강변옆 산길을 따라 West Rim Trail (Angels Landing도 이 trail로 해서 간다.) 입구로 연결된다. Angels Landing으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워밍엎삼아 Emerald Pools부터 한 바퀴 돌고 대망의 Angels Landing으로 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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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erald Pools Trail에서 북쪽으로 본 모습. 가운데로 Angels Landing이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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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erald Pools Trail에서 남쪽으로 본 모습)

Trail 입구로 향하다 한 무리의 야생 칠면조를 만났다. 야생으로는 난생 처음 보는 칠면조다. 강쪽으로 가려고 산기슭에서 막 내려와서는 도로를 건너려다 말고 천연덕스럽게 도로가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전혀 주변 사람들을 개의치 않는다. 신기하게 바라보던 몇사람중 어느 누군가가 죠크를 했다. 얘네들이 엊그제 (추수감사절) 살아 남은 유일한 칠면조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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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변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야생 칠면조들)


Emerald Pools는 그 높이에 따라 Lower, Milddle, Upper 세 군데로 되어 있는데  pool들의 물이 지금은 많지는 않으나 모두 이름처럼 참 맑다. 강수량이 많을 때는 각각의 pool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 세 곳의 pool을 연결하고 있는 trail은 완만하고 길지 않으면서 경관이 괜찮아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때문인지 오르내리는 trail에서 많은 귀여운 어린이들을 만났다. 또한 독일에서 왔다는 한 사진여행가와 몇 차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인사가 “beautiful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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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erald Pools Trail의 동물 머리 닮은 어린이용 springboard (?)에 올라 태연히 놀고 있는 귀여운 아이들. 고향 친구사이인 아빠 셋이서 아이들만 데리고 Zion에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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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Zion 찍기에 여념이 없는 Ansel Adams의 후예. 독일인인 그의 인사는 늘 "BEAUTIFUL!" 이었다.)

 

Emerald Pools를 돌아 나와 드디어 West Rim Trail입구 (Angels Landing은 여기에서 왕복 5마일)에 도착하니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초반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열심히 오르고 있다. 아래에서 쳐다보니 그 산길 끄트머리 위로는 전혀 길이 날 수 없을 것 같은 높은 바위 절벽이다. 반 마일쯤 올라가서 보니 두 바위 절벽 틈새 사이로 좁고 깊은 골짜기가 나 있고 그 골짜기 벽을 따라 trail이 있다. 이 좁고 깊은 골짜기가 바로 여름에도 냉장고처럼 시원하다는 Refrigerator Canyon이다. 골짜기 벽에는 여기저기에 조그만 움집같은 구멍들이 나 있는데, trail올라가던 사람들이 들어가 얼굴만 바위 구멍으로 쏙 내밀고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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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으로 가는 West Rim Trail trailhead. 여기서 Angels Landing은 왕복 5마일. 어제 자동차로 올랐던 Lava Point까지는 편도 13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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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 가는 trail의 초반부. 구불구불한 산길을 꽤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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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사이 골짜기인 Refrigerator Canyon. 포장된 trail이 희끗희끗 보인다.)

Refrigerator Canyon협곡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면 샌프란 Rombard 꽃길을 닮은 폭이 좁고 가파른swichback을 만나게 된다.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이라 물론 꽃은 없다.) 여기가 그 유명한 Walter’s Wiggles이다. 오기전에 읽어 본 바로 모두 21 굽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놀랍기도하고 좀 신기하기도 해서 기념으로 직접 한 번 세어 보려고 했다. 웬걸, 서너굽이 지나면서 하나, , 하나, 내 발걸음 헤아리기가 더 바빠진다.  


 

 (아래의 내가 찍은 Walter’s Wiggles 사진을 보다가 기가 막혀서 퍼온 어느 사진 전문가의 Walter's Wig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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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동무 버젼의 Walter’s Wiggles. 믿거나 말거나 이 사진의 장소는 위의 사진하고 분명 같다. 내 사진에는 뜬금없이 왜 저 둥그런 물빠지는 drainage까지 들어와서 얼굴을 더 뜨겁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를 뜯어 봐도 이게 21굽이 switchback 사진 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전체적인 현실감은 나름대로 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ㅋㅋ)

Walter’s Wiggles를 벗어나면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평평하고 넓은 공간인 Scout’s Lookout이 나온다.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Lava Point로 향하는 backpacker들은 West Rim Trail을 따라 계속 서쪽으로, 그리고 Angels Landing으로 향하는 hiker들은 동쪽으로 가게 된다.  이 지점에서 Angels Landing 꼭대기까지가 0.5 마일 거리. 바로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수백길 낭떠러지 구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쉬고 있었다. 아니, Angles Landing오르기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또는, 오르기가 엄두가 안 나 포기하고 앉아서 쳐다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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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의 최종 점검지 Scout’s Look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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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ut’s Lookout에서 Angels Landing까지는 고작 반마일. 그러나 여기서 하이킹 끝내는 사람도 많다.)

 

이 반마일 구간에도 요세미티 Half Dome처럼 캐이블을 설치해 놓았다. 그러나 Half Dome은 두줄 캐이블이지만 여기는 외줄 캐이블이라 몸의 균형 잡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물론 Half Dome이나 여기나 캐이블에서 두손을 다 놓으면 결과는 마찬가지겠지만.. (절벽의 각도와 높이로 따진다면, 事後 뼈추리기는 여기가 훨씬 더 어려울 듯 싶다.) 여기에도 Half Dome 캐이블 초입같이 사람들을 더 쫄게 만드는 아래와 같은 문구와 그림의 안내판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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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림 문구: 위로될 만한 표현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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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올라와서 저 그림보고는 뒤돌아 설 사람들도 많을 터...)

 

나도 마지막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후에 캐이블에 매달려 한걸음씩 한걸음씩 정상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널찍한 것 같던 초입은 두엇 등성이를 지나자 곧 정상까지 가파르고 좁은 외줄 능선으로 변한다. 발끝 아래로 아스라이 보이는 붉은색 포장도로,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이 마치 딱정벌레들 같아 보인다. 거의 엉금엉금 기듯이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자주 있다. 내려오는 사람과 좁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서로 안절부절. 자리바꿈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언뜻언뜻 부러워지기까지 하고. 그렇지만 내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도로 내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자면, 내려가나 올라가나 마찬가지인 마당에 그냥 올라간다는 게 더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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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까지의 외줄기 좁은 능선. 사진으로 보면 나름 멋있고 할 만 해 보인다. 그러나 곧 다음과 같은 장면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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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걸 하이킹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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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곳도 많다. 여기서 캐이블을 한손으로만 잡는 간 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른쪽이 아래 사진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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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두손으로 캐이블 꽉 잡고 목 살짝 내밀고 내려다 보면 어쨋든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

한걸음 한걸음 마침내 정상에 도착했다. 별로 넓지 않은 이 공간에 오른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결국 해 냈다는 것과 그리고 여기서 보는 이 장관! 옆에 있던 한 중년 남자가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지 그냥 소리친다. This is the most memorable hiking that I’ve ever made!! (나머지 사람들은 웃음 또는 마음으로 전폭적인 지지표시: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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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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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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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여기서 한 컷 안 할 수 있겠나. 서로 축하해 주고 카메라 바꾸어 가며..)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1900년대 초엽에 여기 올라온 누군가가 발아래 펼쳐진 이 아름다운 장관을 보고는 천사들만 내려 앉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Angels Landing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여기의 이 경관은 확실히Angels Landing이 맞다. 그러나 여기 올라오는 저 반마일 캐이블 구간은 “저승사자의 Landing”으로 이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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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gels Landing에서 내려다 본 "저승사자의 Landing". 휴우~ 내가 방금 저리로 해서 올라왔단 말이지...)

한번 더듬고 왔던 길이라서인지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내가 캐이블 구간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원숭이들처럼 한 손으로만 캐이블을 잡고는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탄성을 지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흔들어 대고들 있는 것이다. 순간 내머리위로 뭔가가 휘익하고 지나간다. 쳐다보니 엄청나게 큰 콘돌 (condor) 한쌍이 바로 내 앞의 공중에서 그야말로 장관의 airshow를 펼치고 있었다.

 

 

 (펌: 내가 서 있던 그 좁은 공간에서 날고 있는 콘돌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것은 바로 자살행위였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콘돌들은 이 사진보다 훨 나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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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젊은 친구는 그 콘돌들한테 확실히 나보다 더 혼을 뺏기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과 함께 Angels Landing에 오르다 말고 Half Dome의 springboard 같은 데에 걸터 앉아서 콘돌의 비행 모습을 잡으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먼저 오르던 그의 어머니는 이 장면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콘돌들의 쇼는 쉼없이 한 20여분 계속됐다.

나는 공중을 나는 새가 그렇게 크고 멋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검고 흰 무늬의 활짝 펼쳐진 아름다운 날개, 여유로우면서도 힘찬 비행, 사람을 전혀 두려워 않는 친근함과 카리스마, 그리고 그 비행의 배경이 되는 여기 Angels Landing의 경관... 내가 평생 처음으로 보게 되었던 또 하나의 귀중한 장면. 기가 막힌 행운의 타이밍. 그냥 모든 것이 완벽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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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인가. 내가 캐이블 구간을 빠져나온 직후 airshow를 마친 콘돌 하나가 내 코 앞에 있는 나무위에 앉더니 나에게 의연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


**지면 사정상 Zion편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은 Sedona편으로 이어 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