횐님들, 죄송합니다.
Red Rock여행담의 interval이 좀 길어 졌네요. 그동안 감기에다가 Lake Tahoe에 눈이 많이 와서 제설 작업 좀 도와 주고 오느라… (오늘 오랫만에 직장에 출근하니 비로소 글 쓸 念頭가 다시 생기네요. ㅋㅋ )
거기 눈이 또 내린다니 눈 치우러 곧 또 가야 겠지만, 앞으로 형편 되는대로 그랜드 캐년 여행담까지 두어 차례 더 써 볼 생각입니다.
시원치 않은 글 읽어 주셔서 넘 감사하고요…
Sedona #2
어제 세도나에 들어오면서 들른 Visitor Center의 진열대에 여러가지 언어로 된 세도나 홍보 책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국어판 표지에만 “세계에서 氣가 최고인 땅, 세도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아는 다른 언어들의 책자 표지 문구들은 氣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자랑스러운 우리 단군의 후손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타고났을 백두산 精氣.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氣에 대한 욕구를 여기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도나의 氣”. 소위 “Energy *Vortexes”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장으로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나는 “세도나 氣”의 존재를 별로 믿지 않는 쪽이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세도나에 정말 그런 것이 있고 또 정말 받을 수만 있다면 여기까지 와서 어찌 그걸 마다할소냐. 나도 엄연한 단군의 후손인데…그리하여 나의 오늘 하이킹의 주제를 ‘氣와 景觀’으로 했다.
* ‘vortex’의 복수는 본래 불규칙적인 ‘vortices’ 인데, 유독 세도나의 vortex는 ‘vortexes’로 잘못된 것을 관습적으로 쓰고 있다. 이를 두고 세도나의 氣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도나의 vortex 기운이 영문법까지 뒤틀었다 (twisted)”고 비꼬기도 한다.
세도나에서 ‘氣와 景觀’으로는 단연 으뜸이 되는 Boynton Canyon이 오늘 하이킹의 첫 대상이고, vortex의 강도는 거기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세도나의 360도 景觀을 자랑하는 Airport Loop Trail이 오늘의 두번째이자 세도나에서의 마지막 하이킹 목표이다.
Boynton Canyon은 세도나 “Y”에서 서북쪽으로 8마일쯤 되는 곳에 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이 부근 인디언들이 聖地로 받들어 왔는데, 특히 Yavapai-Apache족은 여기를 그들의 발상지로 여기고 요즘까지도 매년 여기서 기도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energy vortexes”說 (간단히 말하면, 어떤 영적인 에너지가 세도나의 vortex들을 만들었다는 說.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유행하면서 여기가 세도나에서 가장 그 에너지가 많은 곳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 오기 시작했다. 내가 도착한 이른 아침에도 이미 여러 대의 자동차가 trail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있었다.
(Boynton Canyon Trail 입구 주차장.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동쪽으로 보이는 바위산이 아주 멋있다.)
Boynton Canyon은 trailhead인 입구 주차장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trail은 편도 3 마일쯤 된다. 오르막으로 된trail 초입에서 올려다 보면 여러 모양의red rock formation들이 Canyon의 좌우에 근위병처럼 도열해서 Canyon을 지키고 서 있는 형국인데, 이 초입부의 오르막을 조금만 더 올라가면Boynton Canyon의 상징격인Boynton Spire이 오른쪽 언덕끝에서 Canyon을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꽤 rocky한 이 초입 오르막의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 지금까지 조용하던 trail의 왼편 아래쪽에서 요란한 착암기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trail 옆의 나무 숲에 가려져 있던 고급스런 건물들과 조경 잘 된 정원들이 시야에 들어 왔다. 아~여기가 바로 오기전에 정보 정리하면서 봤던 Enchantment Resort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보수 또는 확장 공사중인 그 방대한 규모의 리조트를 내려다 보면서 나는 갑자기 가슴이 몹시 답답해져 왔다. 공사로 인한 시끄러운 소리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Boynton Canyon의 입구를 완전히 틀어 막고 앉아 있는 그 리조트의 위치때문이었다. Canyon 전체로 보면, 그 리조트가 Canyon의 숨길을 꽉 틀어막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 리조트의 property 구역을 피해가느라 trail이 입구에서부터 지금까지처럼 산길 오르막으로 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르막 우회의 수고로움은 trail을 걷는 hiker들에게는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리조트는 내가 보기에 분명 자연의 경관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지형의 흐름까지 심하게 거스르고 있었다.
(큰 규모의 고급 리조트가Boynton Canyon의 valley bottom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trail은 이를 피해 리조트 울타리 바깥쪽 산길로 우회해서 올라간다.)
하~ 이런 것이 “세도나 氣”의 유행이 가져온 한 단면인가… 심지어 이 리조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당시 땅주인들이 이 주변에다 라스베가스식 카지노 단지를 만들려고 계획했다고 한다. 수많은 인디언과 주민들의 피눈물나는 기도와 반대운동에 힘입어 아리조나주에서 단 2표차이로 그 계획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Trail을 걸으며 여기에 카지노 단지가 들어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나는 여기서 氣를 받기는 커녕, 그나마 있던 氣마저도 다 털린듯 터덜터덜 힘없이 리조트 울타리를 따라 있는 내리막길을 내려 갔다. 내리막은 곧 리조트의 북쪽 경계부근에서 끝이 나고, trail도 드디어 리조트를 벗어나 Canyon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되었다. 바햐흐로 이때부터 Boynton Canyon은 그 본래의 명성과 진면목인 아름다운 경관을 거침없이 보여 주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의trail은 지금까지의 우회 산길과는 확연히 다른 감촉 좋은 붉은 흙길이 되는데, trail 좌우에서 녹색을 발하는 낮은 나무숲이 그 붉은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며 호젓한 오솔길을 만들고 있다. 또한 Canyon 바닥을 따라가는 그 오솔길 연도 곳곳에는 무슨 전시회인양 아름다운 붉은색 바위 조형들이 즐비하다. 그 옛날 여기 聖地를 오가던 인디언들에게는 저 하나하나의 바위 조형들이 어떤 의미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Boynton Canyon trail 연도의 암석 조형 #2)
Canyon의 끝자락에 가까와질 무렵, trail은 서서히 키 큰 활엽수들로 가득한 한적한 오르막이 된다. 여기에도 어제 들렸던 West Fork Creek Trail처럼 한창 때는 눈이 부셨을 단풍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었다.
(키 큰 활엽수가 가득한 한적한 구간. 여기도 한창때의 단풍이 아주 아름다왔을 것 같다.)
(Boynton Canyon의 끝자락. 중앙에 Canyon의 시발점이 되는 물이 마른 큰 폭포가 보이고, 그 오른쪽 앞에 상반신 모양의 암석 조형이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Boynton Canyon의 끝자락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병풍같은 바위 절벽 일부.)
Canyon끝자락에 이르는 동안 시종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굽이굽이의 암벽과 암석 조형들이Boynton Canyon을 잘 감싸며 보호하고 있는 형태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여기는 암석 조형들이 참 다양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 옛날 인디언들이 왜 여기를 그들의 聖地로 삼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런 보호된 아름다운 영역의 이미지가 그들의 聖地 선택에도 작용한 것은 아닐런지…
이런 상념속에서Boynton Canyon을 돌아나오며 어느듯 그 리조트에 다시 가까와지고 있었다. 얼마동안 잊었던 답답함이 다시 일어나며, 그들의 빼앗긴 聖地의 입구가 이처럼 틀어 막혀버린 인디언들의 아픔까지도 나에게 전해 오는 듯 했다.
다시 세도나 시내로 들어와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Airport Loop Trail로 향했다. Airport Loop은 세도나 “Y”에서 서쪽으로 1마일쯤에 있는 Airport Road 를 따라 반마일쯤 올라가면 조그만 주차장이 딸린 trail 입구가 있다.
89A 에서 들어가는Airport Road는 길 입구에 분명 ‘Airport Road’라는 표지와 ‘Sedona Airport’라는 입간판이 서 있지만 길이 산위로 올라가는 오르막이다. 공항이 산꼭대기에 있을 리 없다는 선입견에 길을 잘 못 들었나하고 몇 번이나 갸우뚱했지만, 곧 trailhead도 나왔고, 나중에 loop을 돌면서 산꼭대기에 있는 활주로도 보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하자면, 세도나 공항이 있는 산은 서울의 남산, 그리고 Airport Loop Trail은 (도보 버젼) 남산 순환도로로 생각하면 되겠다. 남산 순환도로에서 서울 곳곳이 보이듯, Airport Loop Trail을 한 바퀴 돌면 (4마일) 360도 파노라마로 세도나를 관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trailhead는 남산의 북동쪽끝 장충단 공원 근처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Trailhead인 주차장이 Airport Road 왼쪽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주차한 후 자연스레 시계 방향으로 loop을 돌기 시작했다. 낮은 나무들만 있는 산 중턱을 따라 난 trail이라 해가림이 거의 없고 길바닥도 매우 rocky 하며 거칠다. 그러나 trail은 아주 완만한 편이다. 한 등성이를 지나자 곧 아름다운 세도나의 동쪽 원경부터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바라보니 왼쪽의 Courthouse Butte 와 오른쪽의 Cathedral Rock이 그 크기와 위치로 더욱 대칭을 이루며 다시 나로 하여금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연상하게 한다. Cathedral Rock은 그 모양이 섬세하고 정교하며 참 아름답다. 그래서이겠지만 세도나의 암석 조형중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Courthouse Butte는 모습이 참 단순하고 무뚝뚝하다.
경주 불국사가 고향에서 멀지 않아 어릴때부터 자주 갔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꼭 들른다. (내 입맛으로는 한국 최고인 아구찜집도 경주에 있다. 그리고, 흠~ 추억어린 경주 황남빵…) 어릴때는 정교한 손길이 많은 다보탑이 이쁘면서 좋았는데, 그에 비하면 그저 밋밋하기만한 석가탑은 나에게 거의 탑도 아니었다. 머리가 커지면서 석가탑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불국사에 가면 석가탑 주위를 맴돌며 한참 머문다. 그러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空’ 다음으로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深入淺出’ (정말 속깊은 것은 겉으로는 간단하고 단순하게 표현된다는 그런 뚯) 의 도리를 맛보는 것이다. 여기 세도나에서는 Courthouse Butte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한다. 어제 그 곁을 걸으면서도 그 단순함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지만, 오늘 멀리서 이렇게 바라보아도 역시 참 좋다. 그리고 헤어지기가 정말 아쉽다.
Trail이 서북쪽으로 꺾어질 무렵, 한 무더기의 돌탑들을 만났다. 왜 여기 이런 돌탑들이 모여 있을까? 광활하게 펼쳐진 세도나의 서쪽. 틀림없이 아름다울 여기에서의 일몰 모습이 그렇게 만들었나…어쨌든, 쌓인 하나 하나의 돌에 쌓은 한사람 한사람의 염원과 뜻이 담겨 있겠지… 나도 조그만 돌 하나를 집어 나의 염원 그리고 석별의 정과 함께 돌탑 맨 위에다 올려 놓았다.
공항 활주로를 잠깐 조우한trail은 곧 세도나의 서북쪽 경관을 보여준다.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Capitol Butte. 그 우람하고 육중한 모습은 가히 세도나의 무게 중심 같이 이 아늑한 도시에 더없는 안정감을 주는 듯했다. 그 왼쪽 뒷편으로 오전에 걸었던 Boynton Canyon이 멀리 자리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는 거기에도 나는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trailhead 주차장까지는 반마일 남짓 거리이다. Trail은 이윽고 좌우가 보이지 않는 키 큰 나무 숲길이 된다. 지금까지의 노출되고 좀 거칠었던 구간과는 사뭇 다른 이 호젓한 오솔길. 아직 헤어짐의 아쉬움이 가득한 나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리고 서서히 세도나의 경관들과 작별을 하게 하고 여기서의 여정을 차분하게 정리하도록 했다. Airport Loop Trail을 세도나에서의 마지막 하이킹으로 한 것, 그리고 애초에 Loop을 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한 것이 참 잘 한 것 같았다.
자, 안녕 세도나...
다시한번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