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The Show Must Go On
넵, 쑈는 계속 되어야지요.
뭐 인생살이가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젊은이가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다가 실연을 당하고 가슴 아파하다가,
또 다른 여인을 만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추억을 만들고...
본인에게야 무척 아름다운 추억이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다 그렇고 그런, 뻔한 스토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랬지요.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K대 간호학과에 다니는 Y를 만나 다시 연애를 하게 됩니다.
Y대와의 KY전에도 그들의 T-Shirt 를 입고 가서, Y대의 "아까라까칭"에 대항아여
"멀리 기적이 우네, 짜잔~ 짜잔~" 하는 응원가도 함께 부르고, 서울 시가지를 K대 응원팀과 어깨동무하고 휩쓸기도 하면서...
(흠, 여기서 왜 멀리가 나오나...ㅋㅋ)
결국, 79년 2월의 제 졸업식에는 Y가 와서 사진도 같이 찍고 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 12월에 저는 방위산업 특례로 5년의 Obligation 과 함께 G사 연구소에 입사를 하게 됩니다.
연구소가 오산에 공장과 함께 있었던 관계로, 처음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오산 기숙사에 있었는데...
너무나 따분하여, 얼마 후에는 수원 팔달동에서 자취를 해 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노량진역 부근에서 자취를 하면서 통근열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는 경수 산업도로가 확장되기 전이고, 수원-오산 간에는 왕복 2차선 만 있어서,
한 번 사고가 났다 하면 서너시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이례적으로 대학동창이 나를 포함하여 5명이나 함께 같은 연구소로 들어가는 바람에 (전체 특례 동기는 12명),
신참들이지만 파워가 있었습니다. 착각이었겠지만...ㅎㅎ
방위산업체로 군 출신들이 많았는데, 군대도 안갔다온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설쳐대고 다니니
얼마나 눈에 가시이었겠습니까마는...
군대문화로 이루어잔 기성세대에 대한 우리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마 제가 블랙리스트 1호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공장의 새마을 과장이 소령 출신이었는데, 출근 시간 마다 정문 앞에 나와서 공장 직원들에게 소리를 질러 댑니다.
빨리 뛰라고... 물론 우리들 한테도 그러지요.
그러면, 우리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빤히 쳐다 보면서 더 천천히 걸어 갑니다. 지각으로 하거나 말거나...
나중에는, 정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다가 우리만 보이면 경비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항상 연말만 되면 생산 비상이 걸립니다. 그러면, 평상시와 반대로 잔업을 안 하고 정상 퇴근하는 사람이
부서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경비초소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시간만 되면 그냥 나갑니다.
제가 하던 프로젝트 관계로 미국에 컴퓨터 교육을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해외 출장에 일년의 Obligation 이 더 붙는다고 합니다.
5년 Obligation 도 지겹고, 나는 5년 끝나면 유학 가려고 하는데 (결국 못 갔지만)...
싫다고 했더니, 그래도 영어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해서, 이름만 쓰고 백지를 내고 나왔다가,
시말서를 써야 했습니다...ㅎㅎ
그 때 당시, 미국 출장이나 교육은 Big Deal 이었습니다. TTY 텔렉스로 비지니스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어느 날, 제가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서 공장장이 무슨 상장을 준다고 나오라고 합니다.
근데, 군대 사열식 같이 모든 공장 직원들을 도열시켜 놓고 하는 자리더군요. 안 나갔습니다.
마이크로 몇 번 찾다 말더군요. 그래도, 나중에 상품은 챙겼습니다...ㅋㅋ
가끔씩 계열사인 G사 제품을 직원들에게 강매를 하곤 했습니다. TV, 냉장고, 선풍기 같은 것들...
절대 안 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쩔 수 없이 샀습니다. 왜냐하면, 급여에서 강제로 공제를 했기 때문에...
선풍기였는데, 일 년 뒤에 가서 찾아 왔습니다. 창고 깊숙한 곳에 잘 보관해 좋았더군요...ㅎㅎ
하여간, 나중에 돌이켜 보니 저도 참 회사에서 골치 아픈 문제아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후에 매니져가 되어 직원들을 리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산업발전과 사회 변화의 수레바퀴 사이에 끼인 불행한 세대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본 개념만 제외하고...).
공대로 간 2학년 때는 진공관을 배우고, 3학년에 올라 가서는 트랜지스터를 배우고,
4학년 때는 IC (초보적인 집적회로)를 배우고... 졸업을 하여 회사에 갔더니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알아야 합니다.
최초의 애플 컴퓨터가 82년에 나오고, 초기의 IBM PC Junior 가 아마 83년에 나왔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은 그냥 패쓰 하셈).
그리고, 수 년 전 부터는 대표적인 사오정 세대가 되었지요...ㅠㅠ
각설하고...
그리하여, Y가 사는 후암동 집 바로 부근에 서울-오산 직행버스 종점이 있었던 관계로
Y의 집에 자주 놀러 갔다가 막차를 타고 내려 오고는 했는데...
어느 날, Y의 아버지가 계속 교제를 하려면 결혼을 하겠다는 전제로 만나라고 하더군요.
Y 는 외동딸이라, 지금은 딸을 둔 아빠로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당시에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만나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함께 찍은 졸업장 사진 만 한장 달랑 남기고... 그나마 나중에 찢어 버렸지만...
아무래도, 그녀에 대한 추억이 그 때 까지도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인이 됩니다.
친구들과 함께 미팅도 종종 했습니다만, 애프터 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에 피해를 본 사람은 G사에 같이 입사한 절친한 경복고 친구.
갈 데가 없으니, 그 친구가 미팅을 해서 애프터를 하면 꼭 낀돌이로 끼어 다녔거든요...ㅎㅎ
아마도 나 때문에 좋은 사람 여럿 놓쳤을 겁니다.
그 후 저의 생활은 회사에 반항하는 일 아니면, 그저 회사일.
국방과학연구소 프로젝트를 주로 하여, 진해 기계창 및 대전 유성에 장기 출장도 많이 다녔습니다.
무슨 프로젝트였는지는 묻지 마셈. 일급 비밀 취급 인가증 (소위, 비취증)을 가져야 할 수 있었던 일들이니까요...
그리고, 회사에서 잔밥이 늘어나면서 밑에 직원들이 들어 오는데, 주로 나보다 서너살 많은 해군 또는 공군 대위 출신들...
얄짱 없지요, 내가 고참인데...ㅎㅎ
그렇게 재미없는 쑈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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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늘 하루동안 많이 푸시긴 하셨네요...일은 안하셨나봐요?? (참, 오늘 휴가받으셨다고...)
그래도 빨리 끝내지는 마시고 쭈~욱 재미있는 얘기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잠잠하던 사이트에 활기가 도는 게 보이는 걸요.ㅎㅎ -
?
아이고... 저처럼 성질이 급한사람 숨넘어갑니다.
가능한한 빨리 올려주시길.... -
?
인죠이 하는 독자들은 신났지만... 이렇게 한번에 다 풀어놓으셔도 되는건가여?
암튼 제 예상이 빚나가지는 않을것 같은데요~~
마지막편 기대하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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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새해 4
성질이 급해서 일을 시작하면 끝을 빨리 봐야 하니...ㅠㅠ
오늘은 정말로 끝 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마지막 편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