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첫 이틀

by FAB posted Jun 30, 2010 Views 6698 Replies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언제나 그렇듯, 몇일간 잠시 방문하는 것과 살러 오는 것은 정말 많이 다릅니다.

22 년 전 미국땅에 첫발을 디뎠을 때, 미국과 한국을 비교했던 내 버릇이 그제, 어제 되살아 났습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이 나라는 왜 이래 하면서 부닥치는 상황마다 툴툴거렸던 그 상황이 재연되었습니다.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새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낯선 상황의 불편함이 첫째 이유이고, 먼저 살던 지역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성향이 둘째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 에피소드 하나. (6 월 29 일)

장소 : 수원 출입국 관리소 외국인 거소 신고 접수처.


나 : 거소 신고하러 왔습니다.


담 당 : 시민권자이신가요 ? 국적 상실 신고 하셔야 하니. 기본 증명서하고 가족관계 증명서, 사진 한 장, 여권 사본, 시민권 사본을 제출해주세요.


나 : 국적상실신고는 미국에서 하고 왔습니다. 비자도 받았습니다. 말씀하신 구비서류들은 미국에서 비자받을 때 이미 다 제출했는데, 또 해야 하나요 ? 그리고 출입국 관리소 웹싸이트 구비서류 안내에 가족관계 증명서는 누락돼 있습니다. 업데이트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담당 : 비자를 받고 오셨군요. 그러실 필요없는데.... 여기서 국적상실 신고까지 한꺼번에 다 할 수 있거든요.

(이 순간 머릿속이 멍~~했다. 그놈의 비자 받으려고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영사관을 세번이나 다녀오고, 영사관 가서 위임장 받아서 한국에 있는 동서한테 보내서 동서는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받아서 나한테 다시 보내고,  갈 때마다 반나절 깨지고, 기름값에 비자 신청 비용에, 톨게이트 비용에 ~~~)


그리고, 미국에서 비자를 받으셨어도, 여기서 비자 발급 절차를 또다시 해야 합니다. 영사관에서 넘어오는 기간이 너무 길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또 뭥미..... 담당 부서(외교부/법무부)가 다르다고 같은 업무를 두번 봐야 허대는 얘기. 게다가 서류들을 준비해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서울까지 다녀와야 했을 것이다...)


*** 결국 국가에서 공지한 절차를 밟고 온 나만 짱구됐다. 주 샌프란시스코 대한민국 영사관 어느 직원도 "한국가서 하셔도 됩니다." 한마디 해주는 NYUN/NOM이 없었다.


***에피소드 둘 (6 월 30 일)

장 소 : 수원역 지하상가 전화 가게


나 : 전화기 사러 왔습니다.


점 원 : 개통에 필요한 서류 작성해야 하는데 외국인 등록번호 있으신가요 ? 신분증이 있어야 합니다.

나 : (가방속 뒤적뒤적) 어제 출입국 사무소에서 외국인 등록하고 접수증을 받은 게 있거든요.

점원 : 접수증은 신분증이 아니니 오늘 개통은 안되겠습니다.


나 :  담당 공무원이 접수증만 있으면 각종 서비스 신청하는데 문제가 없을 꺼라고 하던데요.

(나는 이 대목에서 한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접수증과 미국 정부에서 이런 상황에서 발행하는 임시 신분증을 동일시 하는 판단 미스를 했다. 미 )


점원 : 출입국 사무실에서 발행한 접수증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지는 몰라도, 전화 회사에서는 그 접수증을 신분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외국인 등록증을 받으셔야만 개통이 가능하겠습니다. 최소한 등록번호와 정확한 유효기간 날짜만이라도 나온다면 개통해드릴 수 있습니다.


나 : 알았습니다. (뚜껑이 열리기 시작)


접수증에 나와 있는 출입국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아리따운 여인의 목소리 "수원 출입국 관리소에 전화주셔서 감사험당. 저희 번호가 바뀌었으니 1345 번으로 걸어주시면 감사허겠슴다. Thank you for calling Suwon bla bla bla --- 궁금하신 분은 031-695-3800 으로 전화해서 직접 체험해보시길.....---- 일헌 된장, 밑도 끝도 없이 1345 번으로 걸면 전화가 되냐.... 031-695-1345로 걸어 봤다. 결번이랜다. 

(웬 놈의 관공서가 전화번호 안내 하나 제대로 못하냐..... ) 김이 나기 시작. 결국 통화를 했다.


나 : 어제 거소 신고한 사람인데요. 이러저러한 상황입니다. 혹시 임시 신분증 비스름한 거라도 없나요 ?


담당 공무원 : 접수증 외에는 없구요. 외국인 등록 심사를 마쳐야만 합니다. 외국인 등록증은 심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가합니다.

(한 국가의 시스템이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짜증은 민초라는 신분의 한계적 울분이다.) 

DMV에서 발급하는 임시 면허증의 사회적 효력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건 왜일까.

어쨌든 나는 전화기 사는 걸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런 개인의 사소한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정신적 스트레스는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얼어죽을.... 내가 밖에서 너무 오래 살았음이야.....


나 는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내 나라와 22 년을 살다온 미국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건 비교가 되는 걸 어쩌라구...


첫 이틀 동안 에피소드가 두 건이니, 앞으로 어떤 에피소드꺼리가 기다리고 있을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