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밥 먹고 옷 입을 수 있으면 생활이 되어가는데 눈 산행에 입는 옷은 생소하기만 하다.
무슨 지퍼가 그리 많은지 바지에도 공기순환 지퍼가 양쪽에 달려 있고, 가슴에도 달려있다.
어려서나 입어 보았던 '멜빵바지'를 입고 드디어 산행지에서는 처음으로 생소한 '가이토'란 것도 착용해 보았다.
새로운 것을 도전해 본다는 것은 늘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한다. 중간쯤 가다가 '크램폰' 이란 것으로 갈아 신어야 하는데,
흰님들의 도움을 받아 챙겨 신고 걷는다.
흰님의 도움을 받으니 어린애도 아니고 쑥스럽다. 잘 보아두었다 다음번에는 내 신발은 내 손으로 신을 것이다. ㅎㅎ
얼마 더 오르니 높이 쌓인 하얀 솜, 아니면 솜사탕 위를 걷는 것인지 푹푹 빠지길래 ‘스노우 슈즈’로 갈아신는데 그것 역시 도움을 받아 신었다.
나도 이제는 눈 산행의 도구를 두루 사용하여 첫발을 떼게 되니 멀리 보이는 하얀 산처럼 오늘 이후로는 희고 순수한 생활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얼마후 새 신을 신으면 어색하듯이 박자 맞추어 걷기도 어색하고 toe가 자꾸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타이트하게 당기지 않아서겠지만, 그냥 어설프게 걷다가 나중에 '크램폰'으로 바꿔 신으니 날아갈 것 같이 편하다.
잘한다고 했는데도 어딘가 초보는 허점이 있어서 착용한 것이 어설퍼서인듯 싶다.
오를수록 바람이 분다. 정상을 700미터 앞두고 한 분이 힘들어한다.
나 역시 첫눈 산행에 힘들어서 잘됐다는 힘든 심정(99%)과 자애(慈愛) (1%)쯤으로 그분의 짝꿍과 셋이서 남기로 하고 산님께 허락을 얻었다.
우리는 간간이 있는 가냘픈 나무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주먹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자마자 하산하는 흰님들이 보인다.
기어이 정상에 오르고 세찬 바람에 잠시 후 내려왔다고 한다. 헤어진 지 불과 삼십 분 정도로 인해 같이 행동을 못 한 내가 지금 생각하니
첫 눈산행의 추억에 한 점을 남겼다. 집에 와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요일 정오가 되어간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아들 녀석이 집에 왔다.
집사람에게서 아빠가 어제 눈 산행을 갔다 왔다는 말을 들었나 보다. 내방에 가보니 무슨 영화를 볼 수가 있게 해 놓았다.
단 한 번의 클릭에 "히말라야" 영화가 펼쳐진다. (오늘따라 괜찮은 녀석이다. ㅎㅎ)
좋아하는 와인과 함께 느긋한 오후에 어제를 회상하며 보냈다.
어린 병아리가 어찌 어미 닭의 따듯한 품속을 헤아리겠냐 만은 한국인의 특유의 “끈끈한 동료애와 가족 사랑,
후배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한 가슴 뜨거운 여정의 영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
첫눈산행을 솜사탕 산행으로도 기억하게 도움을 주신 분,
차편과 운전을 하여주신 분, 그 외 모든 흰님과
지금도 뒤치다꺼리를 정리하실 "산야" 님과 많은 인원을 즐거운 산행으로 이끌어 주신 "산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기회에 꼭 이곳에 오르기를 다짐하면서... "여러 흰님과 한 눈산행 즐거웠습니다."
무척이나 아쉬웁고 안타까웟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하면 내려가야 하는것이 맞다고 생각되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구요
내가 함께 남아 있어야 하지만 어쩔수없는 사정상 저는 올라갔지만 많이 미안하기도 하였고 고마웠습니다.
무심님의 동료들을 배려 하시는 멋진 자애정신에 엄청난 감동을 받으며,
역시 형만한 아우는 없구나 라는 우리네 속담이 새삼 떠오르는 하루였습니다.
동료얘가 빛이 났던 멋쟁이 무심님,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많이 싸랑 합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