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일할 나이인데도 막내 녀석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내자마자 가게를 정리하였다.
그때는 이십 년 동안 적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에 지쳐있었고, 자정이 가까워 집에 오면 와인 한잔에
"내 청춘을 돌려주오"란 넋두리 비슷한 투정을 집사람에게 부리곤 했었다. 일 못 하고 영어 모른다고 구타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손님으로부터의 언어의 폭력을 들을 때에는 그 못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
유학생활로 이곳에 정착한 분도 공부와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혹은 어려서 부모의 손에 이끌리어 오신 분은 다른 분과 비교적 쉬운 이민 생활이라 해도, 당신의 부모를 생각해 보시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셨는지를... 누구에게나 있음 직했던 슬픈 기억은 흘려보내자!
그런 기억은 지우개로 말끔히 지우고 더는 이야기하지 말고, 그저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적게 남은 세월을 마음 편하게 보내보자!
-------------------------------------------------------------------------- 0------------------------------------------------------------------------------------------
관광객과 운전사의 비애
가게 정리 후 고국에 여행을 갔었다.
제주공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종종 바닷가와 관광지를 들러가며 마련해 준 각자의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 삼십 분가량 정차후 떠난다는 안내방송을 들었다. 세 번째 바닷가에서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떠들어 대는 소리만 들린다.
한 젊은 분과 기사 양반의 승강이가 한참이다.
승객은 애인(부부?)이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이고 기사분은 분명히 삼십 분만 정차 하겠다고 했고,
오십 분이나 기다렸으니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십 분을 더 기다려 준 것은 합리적이고, 더욱이 기사 양반은 젊은이에게 다음 관광버스(같은 회사)를 타고 오면 된다고
설득을 했으나 그 젊은이는 멱살 잡을 기세다. 버스 안은 점점 소란 해지고, 삼십여 명의 승객은 두 분의 처분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모든 시선이 내게로 몰려온다. 아무리 한국을 떠나 온 지 오래되었다 해도 나는 그 뜻을 알고 있다.
이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관습이 한국에는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밥값을 하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인가?
바보스럽게도 두 사람에게 적당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나지만 나 자신 부끄러웠다.
그 젊은 분은 말쑥한 정장 차림에 학식도 꽤 있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많은 학식을 가졌다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당혹감과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드디어 기사분이 회사에 연락해서 그 젊은 친구는 내리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향하였다.
삼십여 명이 한 배를 타고 가는 길에 어찌 이런 일로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지 참으로 딱한 일이다.
흔히 화가 날 때는 운전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나는 목적지까지 불안한 마음을 지녔던 것은 대부분 관광객과 같은 생각이고, 그 기사분도 자기의 직책을 탓하며 운전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운전 못 해 먹겠다고 승객을 내던지고 떠나 버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단지 승객과 가족을 생각하며 그 수모를 잊어버리고 즐겁게 운전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