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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보리고추장굴비
 

보리굴비는 옛날 부잣집에서 술안주와 밑반찬으로 먹던 식품이다. 일반 민가에선 귀한 음식이라 항아리에 감춰두고 먹었다. 민가의 어느 아낙에게 입이 짧은 외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여름마다 입맛이 떨어져 식은땀을 비지처럼 흘렸다. 저것이 커서 사내구실을 하려나, 걱정된 아낙은 어렵사리 굴비를 한 두름 장만했다. 부실한 아들에게 먹이려고 항아리에 감춰뒀는데 먹성 좋은 시부와 남편, 시동생에게 줄줄이 빼앗기고 말았다. 이듬해 굴비를 또 한 두름 장만한 아낙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방아를 찧을 때 외엔 잘 열어보지 않는 보리 항아리 구석에 굴비를 숨겼다.

시부가 마을에 놀러 가고 남편과 시동생이 들일을 나가자 아낙은 항아리에서 굴비를 꺼내 뿌연 쌀뜨물 속에 담갔다. 구우면 연기 때문에 들킬 것 같아 삼베 보자기를 깔고 폭 쪘다. 행여 가시가 있을세라 굴비의 살을 손으로 일일이 바르곤 아들을 은밀히 부엌으로 불러냈다. 급히 먹으면 체할까 봐 뜨거운 밥을 찬물에 털썩 말아서 숟가락에 굴비를 한 점씩 올려주었다. 그제야 아들이 밥을 쪼작쪼작 먹기 시작했다. 아들의 몸에 살이 좀 붙는가 싶었는데 그만 보리방아를 찧다가 숨긴 굴비를 시동생에게 들키고 말았다.

옛 부잣집서 먹던 보리굴비,
입 짧은 아들에게 몰래 먹이다
가족에게 걸려 쫒겨난 이야기

생각다 못한 아낙은 꼬깃꼬깃 모은 쌈짓돈으로 해마다 굴비를 사서 고추장 단지 속에 감췄다. 누가 고추장 단지 밑바닥까지 훑어보랴 싶었다. 하루는 남편이 집에 일찍 오니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살며시 정주간을 들여다봤더니 모자가 그 비싼 굴비를 옆옆이 놓고 뜯어 먹는 게 아닌가. 부뚜막에 앉은 아들은 노란 굴비, 빨간 굴비를 정신없이 먹어대고 아내는 배가 부른지 연방 손가락을 쪽쪽 빨며 부채질까지 살랑살랑하는 통에 허파가 제대로 뒤집혔다.

"세월 좋네, 세월 좋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남편은 "집구석 망해먹을 년"이라며 지게 작대기로 아내를 작신 때린 뒤 집에서 내쫓았다. 어미는 굴비를 뜯어만 줬지 한 점도 먹질 않았다며, 아들이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소용없었다. 멍투성이 아낙은 쫓겨나면서 여름이 오면 뒷산 돌무덤 밑을 파 보라는 말을 아들에게 남겼다. 여름이 되어 뒷산 돌무덤을 파니 항아리가 두 독이나 나왔다. 고추장 항아리와 보리 항아리. 물론 그 속에는 입이 짧은 아들을 위해 어미가 재어놓은 굴비가 그득했다. 이것이 내 할머니 조상문씨에게 들은 보리굴비의 슬픈 전설이다. 하여 이 못난 생선에는 가난한 어미의 비린 한숨과 넉살, 푸진 울음이 스미어 있다. 보리굴비를 가만히 살펴보면 늙은 어미의 쭈그렁 얼굴과 배배 말라비틀어진 살가죽이 도장 찍듯 새겨져 있다.

보리굴비 한 상.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보리굴비와 보리고추장굴비에는
가난한 어미의 한숨과 넉살, 
푸진 울음이 스며들어 있어

이맘때 먹기 좋은 보리굴비를 한 두름 사면 쌀뜨물에 두 시간 정도 담가 염분을 빼야 된다. 찜통 속에 물과 청주를 넣은 후 찜기에 25~30분 정도 찐다. 노리끼리한 굴비 기름이 흐르기 때문에 일회용 여과지나 무명 보를 깔고 찔 것. 갓 찐 보리굴비는 목장갑을 끼고 꼬리 부분을 잡아당기면 북어포처럼 살이 한 번에 쭉 찢어진다. 뜨거울 때 살과 뼈를 분리할 것. 보리굴비는 찜통에 쪄도 껍질이 까슬까슬하게 일어나고 살점이 쫀득해 입맛을 돋운다. 얼음을 넣은 녹차나 찬물에 만 밥과 함께 먹거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일미다. 깨가 박힌 굴비 머리도 버리지 말고 오도독 씹으면 고소하다.

보리고추장굴비는 매년 봄에 어획한 참조기를 습도가 적은 곳에서 건조시킨 후 고추장 단지에 박아 6개월 정도 숙성시킨다. 그것을 다시 새로운 고추장에 버무려 용기에 담으면 육포처럼 빨갛고 쫀득한 살에서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흐르는 시간과 세월 속에서 오묘한 맛을 빚어내는 보리고추장굴비는 때깔이 좋아서 술안주용으로 맞춤하다. 정식 보리고추장굴비가 가장 맛나지만 집에서 만드는 간편식도 있다.

1:보리굴비는 참조기가 좋고 보리고추장굴비는 값이 저렴한 부세도 괜찮다. 2:부세로 만든 보리굴비를 사서 찜통에 쪄 살만 분리한다. 3:고추장+꿀(조청, 올리고당)+참기름+청주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불을 끈 후 매실 액+다진 마늘을 추가해 양념장을 만든다. 4:발라낸 보리굴비 살에 양념장을 흘러넘치도록 붓고 검정깨를 뿌린다. 이것을 실온에서 이틀간 숙성하면 되는데 3개월까지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 ?
    Rose 2016.05.26 15:00
    굴비 에 이런 깊은사연이 ..아...보리굴비 먹어보고 싶다~~~~^^*
  • profile
    소라 2016.05.26 15:20
    나두나두...
    근데 매맞고 쫒겨날깨비 꾹 참기로.
  • ?
    Rose 2016.05.26 16:22
    오늘은 쉬는날? 누가 소라님을 패겠어...소라님은 지혜로워서 절대 쫓겨날일 안만들걸? ^^녹차우린 얼음물에 밥말아서 보리굴비 올려 먹음...ㅋ 상상으로 나마 맛나게..
  • profile
    아리송 2016.05.26 16:46
    암만! 지덕체를 겸비한 여장부지라 !! 두분다ㅋㅋ 하프돔/클라우드 레스트/알타픽을 접수한 여인들!
  • profile
    소라 2016.05.27 09:45
    산악회 평생 남아 있어야쥐...
    결점투성이를 잘봐주시는 분도 계시니.
    지덕체는 몰라도 풍채는 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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