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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 카미 리타

by 빅터 posted May 09, 2022 Views 209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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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페북 친구인 젊은 교수님의 글이 세르파의 얘기로 시작하는게 와닿아 잠시 옯겨 봅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게 아니라 모든 궁극의 경지의 하나의 써밋을 경험 했다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써밋이 존재한다는건 우리 베이산악회 식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제 알타픽, mt휘트니를 오르고 오늘 샤스타의 써밋을 내일은 이스트 씨에라 어딘가를 향하는 베이산악회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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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또 그 기록을 계속 경신해 나가며 더더욱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만들어 나가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나라 네팔에는 에베레스트를 동네 뒷산 오르듯 오르는 셰르파들이 꽤 많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셰르파 카미 리타 (Kami Rita)는 에베레스트를 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완등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번 5월 7일에 26번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름으로써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25회 등정 기록을 다시 한 번 더 갱신했다고 한다.
1970년생으로서 쉰을 넘긴 카미 리타 셰르파의 집안은 네팔의 셰르파 대부분이 그렇듯, 셰르파*가 가업인 집안이다 (*사실 셰르파는 특정 직업군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일종의 민족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부터 셰르파로서 20년 넘게 에베레스트를 올랐고, 친형도 에베레스트를 17번 완등했을 정도로,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히말라야 등반이 가업이나 마찬가지인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카미 리타는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셰르파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셰르파와 비슷한 나이에 처음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독보적인 에베레스트 완등 기록을 가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거의 매년 끊임 없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실 셰르파가 단독으로 히말라야에 오르는 일은 별로 없다. 따라서 셰르파의 등반은 도전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애초에 셰르파 족은 상업적 등반가들의 가이드와 짐꾼 등의 일을 대행해 주면서 얻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등반대 한 팀 당 두 달 정도의 term을 평균으로 잡으면, 셰르파 한 사람이 그 기간 동안 버는 소득은 대략 5-7천 달러 수준). 물론 히말라야에서 나고 자란 셰르파라고 해서 항상 등반에서 안전을 보장 받는 것은 아니다. 1950년 이후 기록에 따르면,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한 사람은 300명 정도인데, 그중 114명이 셰르파다. 대략 40% 가까운 비율이 셰르파인 셈이다. 즉, 등반가들은 물론, 셰르파들도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에는 목숨을 걸고 오르기는 매한가지다. 아무리 그 과정에서 얻는 소득이 높아도 목숨과 맞바꿀 정도는 아닐텐데, 셰르파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또 오른다. 돈 많은 탐험대들의 무거운 짐을 지고 또 진다. 베이스캠프와 전진 캠프 사이의 크레바스 숨어 있는 절벽길을 수십 차례 왕복하면서도, 또 무릎 연골이 닳는 것이 느껴지면서도 또 그렇게 묵묵히 등반을 지속한다. 등반가들에게는 에베레스트의 정복만이 도전의 대상이겠지만, 셰르파들에게는 등에 짊어진 가족의 생계라는 짐을 에베레스트에서 놓아버리지 않는 것 자체가 도전이다.
카미 리타는 24세가 되던 1994년부터 올해까지 28년 동안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위험한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속했다. 1996, 2001, 2011, 2014년을 제외하면 매해 에베레스트에 올랐으며, 그 중 1995, 2015년을 제외하면 매번 등정에 성공했다. 대부분은 셰르파 중에서도 가장 고된 직무인 짐꾼으로서 등정에 나섰으며, 등정에 성공한 것도 대부분 짐꾼으로서였다. 이전 세계 기록이 21회였던 시점인 2017년에 등반을 성공한 이후, 40대 후반이 된 2018년 이후부터는 카미 리타가 독주할 채비가 되었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짐꾼으로서가 아닌 등반가로서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매해 등반에 성공했고, 2022년 5월 7일에 다시 등반에 성공함으로써, 아마도 앞으로 수십 년 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을 경신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쉰이 넘은 연령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등반계에서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 아마 내년, 후년에도 이 기록의 갱신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략 30년 동안 같은 산을 거의 매해 같은 시기 (주로 매년 5월 중순 전후), 거의 같은 코스 (남벽 코스 (S Col-SE Ridge 루트))로 올랐으니, 그 산에 대해 이제는 아주 잘 알 것 같다는 느낌, 친숙하다는 느낌, 나아가 좀 만만하다는 느낌도 가질 법하지만 카미 리타 셰르파는 그런 느낌에 대해 일언반구도 않는다. 에베레스트에서 죽은 등반가들의 숫자가 이야기해주듯, 에베레스트는 결코 정상을 쉽게 허락하는 산이 아니며, 그것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셰르파들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기상이 악화되고 지진이 일어나고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세계 기록 보유자인 카미 리타 셰르파도 언제든 등반에 실패함은 물론, 목숨도 위협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도 계속 에베레스트를 오를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세계 기록의 보유자고,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고, 영광과 물질의 축복도 누려 봤을 사람이지만,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혹자는 에베레스트가 사람의 마음을 자석처럼 이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그러한 등반을 매년 의식을 치루듯 계속 이어나가는, 그렇지만 산 앞에서는 항상 겸손한, 그야말로 조용한 욕망을 소리없이 외치는 초로의 등반가에게 에베레스트 등정은 아마도 도를 닦는, 자신만의 도를 이루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컨대 자신의 도는 아직 완성이 멀었고, 몸이 허락하는 한 그 도를 끝까지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생그럽기에, 그는 아마도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매년 5월이면 에베레스트를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각 분야마다 범접할 수 없는 자취를 남기고 있는 대가들이 있다. 어떤 대가들은 노벨상을 포함,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아 보고, 누릴 수 있는 학계에서의, 사회에서의 영광은 다 누려 본 후, 조용히 은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어떤 대가들은 자신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상과 영광은 그저 기록으로 남긴 채, 계속 새로운 분야를 탐험하고 본인의 눈과 뇌가 허락하는 한 끊임없이 펜을 굴리고 분필을 집어들고 자판을 두드리며 실험실의 문지방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 학문의 도를 충분히 이루지 않았다는 자각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지난 2019년,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 공로로, 무려 97세의 나이에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존 구디너프 (John B. Goodenough)는 올해 100세가 된 노학자이다. 커리어 초기에는 기상학, 고체물리학, 전자공학 등에서 연구를 하다가, 1970년대부터 무기화학 분야로 연구 방향을 틀었으며,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의 양극 물질 개발을 시작으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이 상업화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 구디너프 교수는 충분히 상업적 성공을 거둔 리튬 이온 배터리에 만족하지 않고, 80대로 접어든 고령의 나이에 다시 도전을 했는데, 그것은 리튬인산철 배터리 기술이었다. 같은 리튬이긴 하지만, LFP 배터리는 전고체 배터리이므로 재료부터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애초에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기술적, 상업적 성공을 끊임 없이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구디너프 교수였으니, 나이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걸림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100세가 된 올해에도 여전히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 출근하고 있으며 계속 새로운 에너지 자원과 재료를 찾는 연구에 도전을 하고 있다. 누릴 수 있는 영광과 상복, 물질의 축복을 충분히 누렸다라고 자복할만하지만, 노구를 이끌고 끊임 없이 도전하는 대가의 모습에서 에베레스트의 기록 경신을 스스로 이어가는 카미 리타 셰르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의 도를 이룰 때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멈추는 순간은 육신의 기력이 다할 때일 뿐일 것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혹은 어느 정도 스스로 정한 마일스톤을 달성하면 이제 좀 놔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 한 번 뿐인 인생을 끊임 없는 도전의 역사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자극을 받는다. 그들의 인생을 보며 내 인생을 자책할 필요는 없지만,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저렇게도 인생을 스스로 끌어올려 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공식적으로는 내 학계 은퇴 시점이 아마 25년 내외 정도로 남은 것 같은데 (물론 아마도 출생률 문제 때문에 은퇴 연령은 강제로 5-10년 뒤로 밀릴 수도 있다.), 은퇴 후에도 할 수만 있다면 계속 학계의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후학들, 제자들, 동료들이 안 풀리는 문제가 있을 때, 작은 실마리라도 붙들고 싶다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계속 기억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감히 학계의 Guru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렇게 또 풀어낸 문제의 리스트가 업데이트되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한 번 더 오른 것 같은 느낌까지는 아니겠지만, 스스로 뿌듯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을 때까지 도전한다고 해서 우주의 비밀을 다 알아낼리 만무하지만, 어쨌든 우주의 비밀의 아주 일부의 일부라도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 인생도 값진 인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는데, 사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새로운 도를 또 듣고 싶기 때문에 저녁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도는 하나여서, 어떤 경로로 오르든 정상에서 만난다고는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산이 있고, 또 각자의 정상은 또 다른 것이니, 계속 도를 알고 싶고 닦고 싶다. 그렇게 도전을 계속하다가 육신의 기력이 다 하는 날, 약간의 아쉬움이 남겠지만, 그래도 조용히 만족하며 눈을 감아도 좋을 것 같다.
===================== [권석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