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1일(Mon)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본 에메랄드 빛 피이토 레이크와 레이크 루이스가 눈에 선했다. 어제 저녁 레이크 루이스의 트레일(Lake Agnes Trail)을 내려와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본 모레인 레이크(Moraine Lake) 물빛도 같은 색이었다. 구경하면서 호수색이 왜 그렇게 에메랄드 빛이 날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산위의 빙하가 녹으면서 흐르는 물이 산의 석회석(limestone) 가루("rockflour"라고 불린다)와 섞이면서 그런 멋있는 색이 나온다고 한다. 매일 눈만 뜨면 사방에 보이는 산, 나무, 눈, 호수의 색깔들로 당분간은 모든 게 다 그렇게 보일 것만 같았다.
오늘이 드디어 밴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집을 떠난지 열흘이 가까워 오니 슬슬 집에는 별일이 없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두고 온 강아지도 보고 싶었다. 오레곤과 워싱톤 주를 지나 밴쿠버를 거쳐 캐나다 록키를 열흘 동안 훑다보니 우리가 잡은 일정이 이 모든 곳들을 자세히 보기에는 얼마나 무리였나 하는 것은 진작에 깨달았다.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끝까지 올랐었으면 하는 트레일들도 많았고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친 절경들도 많아 아쉬웠다. 이제 내일이면 캐나다를 떠나니 남은 시간이나마 알차게 보내기로 했다.
우선 Yoho National Park 을 가보기로 했다. 먼저 Spiral Tunnels Viewpoint 로 가서 Kicking Horse Pass National Site 를 가 보았다. 이곳을 가장 먼저 탐험했던 James Hector 라는 백인의사가 있었는데 말이 뒤로 차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 인디언들이 그걸보고 이곳의 이름을 Kicking Horse Pass 라고 지은 것이다. 간단히 역사적 지식을 안 뒤에 Takakkaw Falls 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Takakkaw 란 Cree 말로 "Magnificent" 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높이가 384m 나 되는 거대한 폭포였다. 기나긴 폭포가 바위를 때려 물보라를 만들고 있었고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은 에메랄드 빛이 나는 시냇물로 흐르고 있었다. Yoho National Park 을 더 둘러 본 후 밴프 시내로 돌아왔다.
밴프의 다운타운 격인 Banff Avenue 에는 기념품가게, 스포츠용품점, 식당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는데 한국인 부부가 하신다는 ‘서울옥’이란 한식집도 있었다.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고 시내구경을 한 뒤 저녁무렵 Sulpher Mountain 에 있는 곤돌라를 탔다. 눈 덮인 산으로 둘러 쌓여서 마치 분지처럼 되어 있는 밴프와 그 주변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내일이면 떠난다는 아쉬운 마음에 정상에서 본 밴프와 그 주변 경치가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았다. 전망대로 올라가니 산양떼가 몰려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위를 쳐다보고 있지만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다 걸리면 캐나다 달러로 5,000불까지 벌금을 물 수 있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나니 어느새 밤 9시 반이 가까웠는데 여름인데다 알버타 주는 Pacific Time Zone 보다 한 시간이 빨라서 그런지 밖이 아직도 환했다.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Upper Hot Springs 가 밤 11시까지 오픈이라고 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돌아가는 일정을 계획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캐나다 록키까지의 여정은 미리 정하고 예약도 마쳤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특별히 세워진 계획이 없었다. Canadian Badlands 나 Glacier National Park, 27-8 년 전에 가본 Yellow Stone National Park 을 다시 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오레곤 주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매일 본 산, 호수, 폭포 들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어서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여러 곳들 때문에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밴프에서 집으로 직행을 한다 해도 1,300 마일이나 되는 장거리인데 지친 몸으로 운전할 생각을 하니 돌아가는 일만으로도 까마득했다. 이래서 젊어서 놀라고 한 것일까... 돌이켜 보니 집과 직장을 오가는 일상을 벗어나려고 떠난 여행이 어느새 숙소와 산 또는 호수를 오가는 또 다른 일상이 된것 같았다. 이제 내일 캐나다 로키를 뒤로 하고 국경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밤 잠을 청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