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문자가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물체에는 작자의 설명이 없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가설이란 이름으로 이런저런 스토리를 만듭니다. 저자가 두꺼운 책 5권짜리를 집필하면서 첫머리에 빗살무늬토기와 돌도끼를 언급한 것은 앞으로 전개될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술과 미술 행위에 대한 인류의 행동양식입니다. 그 오래 전에도 미술 행위 즉, 장식이 기능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된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학교 미술 시간에 보았던 빗살무늬토기입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이런 무늬를 넣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수천년 전에는 문양작업에 들이는 공이 그릇 만드는 공보더 더 많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 시대로서는 명품인 셈입니다.
경기도 연천에서 발견된 주먹도끼입니다. 특히 유럽학계와 일본학계를 놀라게 했다는데 핵심은 이렇습니다. 주먹도끼는 인도 서쪽 주로 유럽에서 발견되었고, 인도 동쪽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어서 유럽에서 우월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도끼의 발견으로 그 우월감이 깨졌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구석기가 없다고 주장하던 일본학계는 이걸로 한큐에 멘붕상태가 돼버렸다고 합니다. 미군병사가 발견했다는 것도 객관성 확보에 도움이 됐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고학 분야에선 그렇고 미술쪽에서 관점을 보면 짐승을 잡는 기능 위에 디자인에 대한 가설을 더하고 있습니다. 예쁘게 만듦으로써 이성의 관심을 유도했다는 내용도 재미있는 가설 중 하나입니다. 머렉 콘(Marek Kohn)이라는 학자가 1999 년도에 발표한 가설(Sexy Handaxe Theory)인데, 이건 참 현대적인 가설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기능성에 디자인이 가미되면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는 건데, 이 관점으로 본다면 180 만년 전 구석기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은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기능성의 끝판왕, 월마트에서 28 불 주고 산 비옷입니다. 이거 우중 산행에서는 최고의 기능을 자랑합니다.
300 불이 넘는 몽클레어 우비입니다. 좀 지나친 시례인지 모르지만 와이프한테는 이런 거 사줘야 합니다. (필경 와이프들은 이 비싼걸 왜 샀냐고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겠지만,,,,, 여자친구라면 그냥 좋아라 할 겁니다. 어머머,,, 이런 걸 다 ~~~.) 그렇다고, 비만 막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월마트꺼 사주면 내가 먹는 밥상위 반찬이 부실해지고 두고두고 내가 반찬꺼리가 됩니다. 구석기 시대 남자들도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도기표면에 정성을 들여 빗살을 촘촘이 장식하고, 돌도끼를 최대한 예쁘고 정교하게 노력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미술행위가 기능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것은 인류사를 통한 공통적인 언어였다는 것이 미술책 첫머리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