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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결혼한 아들놈에게..

by 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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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결혼한 아들놈에게..

 

 

 

 

수빈아, 한참 지금 깨가 쏫아질때이겠구나. 깨 볶는 냄새가 여기까지 밀려온다. 지난 10월 결혼한 너의 사랑하는 와이프가 요즘 아빠 혼자 지낸다고 크리스마스때 너희둘 올라와 연말까지 함께하고 가겠다고 전화 왔더구나.

 

지난 땡스기빙때도 와서 3일 있다 간다는거 아빠가 토요일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루만 자게하고 금요일 돌려보낸거 미안하다. 사실은 데스밸리 일요일 캠핑가서 놀려고 계획해 놓은게 있어 아빠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뻥친거다.

 

 

 

그런데, 오늘은 아빠가 한창 깨를 볶고 있는 너에게 결혼 31년차 인생선배로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하나 해줄께

 

그냥 얼마전 있었던 내 하루의 평범한 일상이야. 언뜻들어면 뭐가 슬퍼? 하겠지만 너도 세월이 흘러 내나이가 되어 잘 곱씹어보면 슬픈이야기가 되니까 들어둬..

 

 

 

너가 아빠보다 더좋아하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안 서열1위 연희동 7공주파 면도날이라고 아빠가 유일하게 맥을 못추는 너 엄마랑 몇일전 카톡으로 한판했다.   

 

큰싸움은 아니고 그냥 결혼 30년이 넘는 노인네들이 하는 그런 사소한 부부싸움이었고 보스인 너의 엄마가 한국 체류중이어서 옆에 없기때문에 조금 기어올라도 당장 전치 3주의 부상은 면할수 있다는 사실에 아빠가 조금 용기를 내어 기어올라 봤다.

 

하지만 기어오른 아빠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보스인 너의 엄마에게는 조금 심각하게 권력의 위협으로 다가왔나 보더라. 엄마가 거의 2주일 넘게 아빠에게 카톡 한번없이 연락을 끊더구나. 아빠에겐 자유를 만끽할 기회였지만 엄마에겐 권력질서 유지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의 고뇌의 시간이었겠지.

 

그런데 아빠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의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권력순위 확실히 할려고 시도할거고 아빠도 가정과 세계평화를 위해 침묵을깨고 어제 너의 엄마에게 아빠가 먼저 카톡 영상통화를 시도해봤다.

 

영상 통화때 요즘 아빠가 나이가 들어 치매끼가 있는지 갑자기 너의엄마 이름이 생각안나  “여보” “허니라는 말이 실수로 튀어나오더라. 그래도 보스인 너엄마에게 아빠가 공손한 자세를 취하니 너의 엄마도 기분이 풀렸는지 그래 잘지내?” “밥은 잘챙겨먹고?” 하면서 권력질서 유지에 대한 안도감이 들었는지 무척 온화하고 따스한 모습이더라.

 

 

이렇게 서열끝순위 아빠가 먼저 다가와 숙여줄걸 바라는 니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아빠가 평소보다 조금 오버를 하고 말았다.

 

당신원하면 한국 더 있다오고 나는 매일 잘지내고 있어니 아무걱정말고 푹 쉬다가 와

 

어때? 아빠 잘했지?

 

 

 

근데 말이다. 이런 화기애애한 조직의 단합중에서도 불행의 씨앗은 이미 꿈틀거리고 있었어.  보스인 너의 엄마가 대화도중 갑자기 망고의 안부를 묻더라.

 

하필이면 화상 통화중이었고 망고좀 비춰봐라 하는데 망고가 현재 집에 없잖니.

 

아빠도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보스인 너의 엄마가 없는틈을 타 최소한 망고에게도 밀리는 아빠의 서열을 다시 좀 올리고 싶었고 아빠도 오라는데는 없지만 갈데는 많아 사실 니 엄마 없을때 몇군데 댕겨오고 싶었다. 그래서 망고 훈련소 보냈다.

 

허락없이 보냈다고 왕창 구박 받았고 너도 알다시피 1살도 훌쩍 넘은 망고를 아직 애기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아빠보단 망고걱정이 가득이더라.

 

참 슬픈일이다.

 

 

너도 혹시 나이들어 키우는 견순이나 견돌이보다 이쁨 못받고 서열밀리면 느낄거다.

서로 상부상조하자.  

내가 비밀로 하고 봐줄께.

너도 나이들면 가끔 몰래 튀고 싶은 유혹이 있을거다..

 

아빠가 데스밸리 다녀오며 34일동안 내비 아가씨랑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근데 내비  아가씨는 참 친절하더라. 아빠가 길을 잘못들면 친절히 다시 설명해주고 절대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지 않더라. 4일째 돌아오는 날에는 내비 아가씨랑 친해져 말놓으라고 하고 싶더라. 나도 니엄마가 내비 아가씨처럼 비록 서열 말단 조직원이라도 연민의 심정으로 나를 대해 줬어면 한다..

 

 

 

그리고 니엄마가 통화 마지막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묻더라. 아빠도 좋아하는 생선회 냉동에 집락백에 챙겨 넣어둔 하사품이 있는데 찿아 먹었냐고. 벌써 챙겨먹고 없다 했더니 그럼 니처도 좋아하니 가서 직접 생선잡던지 알아서 구해  너희들오면 먹이란다. 같이 사먹어란 소리는 안하더라.

 

아빠보고 이제는 배타란다. 이나이 아빠에게 어부가 되란 말인가보다. 비록 이아빠가 가끔은 농땡이 쳤지만 나름 경제생활도 했다. 근데 결국 이나이에 직접 배타라는거 같다.

 

슬픈일이다

 

너희들 회먹고 싶다하면 아빠에게 직접 잡아오라며 매번 배타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한창 깨볶는 새신랑 수빈아, 가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면 슬픈영화나, 인간극장 그런 드라마 보지말고 너의 장인이나 아빠같이 결혼 30년 넘게한 분들한테 소주 한잔만 사주세요 그래봐라.

 

그리고 한마디 물어봐라. “행복하시죠?” 그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거다.

 

 

 

 

 

그리고, 수빈아 너의 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라. 요즘 아빠혼자 지낸다고 일주일씩이나 크리마스와 연말을 함께 할려는 너처의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이쁘다.

근데 그거아니?

아빠집에 올땐 아빠와 의논하고 허락받고 집에와라.

요즘 시대엔 그게 예의다.

너의 처와 전화통화때 말은 못했지만 나 사실 망년회 한다고 노는 계획 두개나 있다. 나도 바쁘다.

 

 

 

그리고, 망고는 너 엄마에게 3일 훈련갔다 했는데 사실 3주간 보냈다.

비밀로 해주라.

나 Redwoods 캠핑 가야된다.

 

나도 망고 돌보는 대신 놀러다니고 싶다. 본의아니게  너와 너엄마에게 선의의 거짓말 하는게...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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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고 이거저거 좀 정리하다 잠시 쉬는 도중  컴퓨터 앞에 앉아  끄적거려 봅니다.

조금 주책스럽더라도 같이 그냥 한번 웃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