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칼럼 1> 꺾여진 나무들과 역경의 유전자
여간해서 눈이 내리지 않는 실리콘 밸리 지역의 산에 사상 초유로 눈이 많이 온 다음 날 (2월 25일 토요일), Saratoga의 Sanborn 공원의 산을 산행하는 내내 수도 없이 넘어지고 꺾이고 무너지고 초토화된 나무들을 보면서 큰 의문점이 생겼다. 도대체 바람이 얼마나 불었길래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나무들이 한꺼번에 넘어지는 유례없는 참상이 발생했을까? 이를 보면서 같이 걷던 산우 한 분도 수일전에 주변에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며 바람 쪽으로 은근히 그 화살을 돌렸다.
사실 나의 산행 15년 역사상 이렇게 나무들이 통채로 한꺼번에 많이 넘어진 것을 보는 것은 처음 보는 일로써, 이 기괴한 현상을 그런 간단한 원리로 다 설명이 되지 않았다.
바람으로 치자면 최고로 불어 봐야 16mph가 정도가 고작이고 올 겨울에도 작년에도 그 전에도 여러 번 이와 비슷한 바람이 불었지만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무너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관찰력과 추리력이 발동이 되기 시작했다.
산행 내내 면밀하게 관찰을 지속해보니 어떤 공통점들이 나오는 것 같았다. 주로 넘어진 나무들은 Laurel이라고 하는 월계수과의 나무들과 이와 유사한 나무들이고 삼나무나 일반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듬성 듬성 큰 레드우드도 넘어져 있었지만 그것은 여느 폭풍이나 폭우에도 벌어지는 일이라 특별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내린 잠정 결론은 이랬다.
실리콘 밸리 지역의 월계수 같은 나무들은 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탓에 평소에 눈의 무게를 견디는 힘을 기르지 못했을 것이다. 산행 길에서 이런 의견을 파랑새님께도 피력을 했더니 파랑새님도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늘 정회원 승급 문제로 FAB님과의 통화 중에 팹님께 물었을 때 팹님의 대답은 그런 나의 직관적 판단을 확신시켜 주었다. FAB님 왈, "눈이 오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하는 나무들이 있는 데" 그걸 '설해목'이라고 부른다고, 동명의 제목인 법정 스님의 "설해목"이라는 수필까지 언급해 주신다.
어제 10마일의 평범한 산행을 유격 훈련과 써바이벌 게임 이상으로 난이도를 높여준 설해목들을의 비참한 잔해들을 바라보면서 몸의 건강도 우리의 인생도 약간의 역경과 스트레스는 힘이 된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겨울 내내 히터를 꺼놓은 방에서 수면을 취한 후 일어나자마자 차가운 냉수 샤워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주 저녁을 건너 뛰고 16시간 이상 공복을 유지하는 일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평상의 일이 되어 버려 숨쉬는 건 만큼 쉬운 일이 되었다. 역경의 유전자를 자주 작동시켜 신체 나이를 돌리는 원리를 주창한, 베스트 셀러 "Life Span"의 저자이기도 한, 유전공학과 Anti-Aging의 대가인 하버드 교수 David Singcliair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예전부터 건강유지법으로 전해 내려온 막연한 방법들이 이제 유전공학과 관련 과학의 발달로 하나 하나 입증되고 있는 것에 스릴을 느낀다. 의도적인 추위 노출, 소식, 단식 등은 역경(adversity)의 유전자를 자극하고 유전자 배열을 리셋시켜 신체 나이를 거꾸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싱클레어 교수에 따르면 단순히 음식 조절 (예: 섭취 시 당을 최대한 줄이는 것, 소식 등)과 생활 양식 변화(예: 공복 늘이기와 정기적인 운동 등)만으로도 15년에서 최장 20년의 신체 나이를 돌릴 수 있다고 한다. 과학이 밝혀낸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이제 약간의 눈에도 쓰러져 버리는 월계수 같은 설해목들의 모습을 거울 삼아, 자잘한 역경들에 의도적으로 노출시켜 우리 몸의 역경의 유전자들을 깨워 환경적 위해에 굴하지 않고 건강히 오래 사는 삶을 꿈꿔 보면 어떨까.
아래, 무너진 나무들 만큼 새 생명들이 다시 숲을 메꾸어 가길 바라며 2월 25일 토요 산행 사진 중, 넘어진 나무 사진들 몇 장 공유합니다.
산행 시작점부터 줄줄이 전선을 덥치면서 무섭게 쓰러진 나무들
히릇밤의 눈벼락 맡고 눈의 무게로 이렇게 뿌리채 넘어간 나무들...믿기지도 않고 또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건 "생존 게임"을 방불케한다.
본의 아니게 곡예를 수도 없이 넘게 했던 이날, 하루 새 단련이 되어 이정도야 가쁜히 통나무 점핑을 하시는 와이씨님, 멋져부러유.
이 많은 월계 나무와 그 친척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향신료로 쓸 겸 잎을 따서 말려 놓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글을 올리셨네요. 내용 중 설해목 관련 살짝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설해목은 눈무게로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진 나무를 칭하는 것으로, 특별히 눈에 약한 나무로 칭하지는 않으니 이 점은 정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