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 11> 자물쇠와 어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난 주에 향년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의 작고 후 1년 반 만이다.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죄스러움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휴가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뵈면서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해오고 있었고, 또 한 달 전에도 어머님을 뵈러 한국을 다녀왔었는데도, 너무나 갑작스런 부음 소식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지난 한국 방문 동안 집중 간호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여 노모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왔지만 이렇게 부음 소식이 빨리 날아들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아가는 대장정의 여행이었다. 하필 최절정의 성수기여서 비행기 표를 구하기가 난망한 상황이었지만 여행사 등 이곳 저곳을 백방으로 알아 본 결과, 간신히 당일로 들어가는 아주 비싼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주로 가는 국내선 표였다. 며칠 전 불어닥친 태풍의 여파로 인한 항공기 결항 사태와 휴가의 절정기에다 광복절 연휴까지 겹쳐 국내선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힘들어 아예 예약을 하지 못하고 들어갔다. 김포 공항에서 여러 드라마틱한 우여곡절 속에서 민첩한 재치와 기지를 다 발휘한 후에 마침내 기적적으로 표를 구하는데 성공, 다행히 하루 만에 고향 제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대장정의 여정 덕분에 3일 간의 장례 절차 모두를 가족 형제들과 같이 치룰 수 있는, 불행 중 다행의 행운을 누렸다.
허전함과 비장함이 쓰나미로 밀려왔다. 1년 반전 아버지 타계 후에 어머니가 생존해 계셔서 그나마 고향과 고향 집의 존재감이 컸었는데, 이제 어머니마저 떠나버리셨으니 텅 비어버린 집에서 오는 허전함은 형언할 수 없었다. 남겨진 고아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물론, 동시에 죽음과의 상봉에 대한 내 나름의 오랜 훈련이 있어왔기에 담담함도 마음 밑바닥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말이 없는 망자의 물건들이었다. 장례 현장에 빠듯하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입관, 조객 맞이, 발인, 화장, 매장 등의 일련의 장례 절차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잘 절제됐던 내 감정은 유품을 정리할 때 터져나왔다.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물건들이 많아, 장례식 후에 누이들과 조카들이 고향집에 모두 모여서 어머니 유품들을 정리하는데 벽장, 옷장, 서랍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잘한 물건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세월 때문에 사소한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집안 가득히 쌓아왔기에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특히, 어릴적 대했던 친숙한 어머니 물건들이 나올 때마다 숨이 탁 막히고 가슴이 아련하게 저려옴을 느꼈다. 그 물건마다 어머니의 향수가 떠오르며 어머니의 옛 모습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내 기억 속을 스물스물 후비고 다녔다. 나이가 들어도 집에 가기만 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게미역국을 진하게 끓여 주시던 어머니의 손맛과 따스했던 기억들을 포함해서.
어머니는 최근에 치매기가 와서 자꾸 물건을 어디에 두셨는지를 잊어 버리는 일이 잦아졌었는데, 몇 년전부터 잃어버리는 물건들을 남이 훔쳐간 거로 오해하는 의심증이 생기면서부터는 물건들을 여기 저기 숨기는 습성이 생기셨다. 무려 5년 전에 친지로부터 선물 받은 말린 고사리가 벽장 깊은 곳에서 발견되지 않나 5만원 짜리 현금 뭉치가 옷장에서 나오고, 병원에서 처방 받고 보관 위치를 잊어 버려서 먹지 않은 약들도 벽장 구석에서 줄줄이 나왔다. 결혼 초에 바느질로 옷을 직접 만들어서 입었던 어머니의 젊은 시기에 소중하게 간직한 헝겊쪼가리들도 나왔다. 당신이 직접 지은 제주 갈옷도 여러 벌 정갈하게 보자기에 정리된 채 궤에서 나왔을 때 그 험난한 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주마등처럼 내 기억을 스쳐 지나갔다.
어느 순간 나를 비롯한 누이들의 탄식이 쏟아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을 안타깝고도 아리게 만든 것은 이곳 저곳에서 발견된 자물쇠와 열쇠의 행렬이었다. 산발적으로 여러 장소에서 발견된 자물쇠와 열쇠를 모두 합쳐 보니 총 20개가 넘었다. 평생 문을 열고 다녀도 도둑 한 번 들어 본적이 없는 제주의 시골집인데도, 최근에 어머니는 물건을 도난 당한다는 환상과 불안 심리로 서랍이나 벽장 등 자물쇠로 잠글 수 있는 것은 모두 잠그고 다니셨다. 문제는 치매로 인해 사용하는 자물쇠들을 자꾸 잃어 버리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하나, 저기에서 하나 숨겨 놓으셨는데, 마치 다람쥐나 딱따구리가 열심히 겨울을 대비해 먹이들을 여기 저기 숨겨 놓고는 정작 겨울이 왔을 때는 숨겨놓은 먹이를 찾지 못하고 방치되는 격이었다. 어릴적 밥 그릇하나도 소중했던 어려운 시대를 거쳐 너무나 경제적으로 풍요한 시대까지 거친 내 어머니의 복잡다난한 삶에서 오는 이런 특이한 습관과 심리들을 생각할 때 그 안타까움과 씁쓸한 애잔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자물쇠로 대변하는 불안 심리는 내 어머니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미국으로 돌아 오는 길에 뉴욕 타임즈지(NY Times)를 펼쳐 들었을 때, 거기에 실린 ‘왜 우리 모두는 항상 불안을 느끼는 걸까? (Why Does Everyone Feel Insecure All the Time?)”이라는 수필이 눈에 들어왔다 (링크: https://shorturl.at/tBNZ4). 그 내용을 보건데, 어머니의 물건에 대한 집착과 도난에 대한 불안감은 단지 특수한 상황을 살아온 내 어머니 혼자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그 글의 저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직면해야 하는 두 가지 불안감, 즉, 하나는 제한된 삶으로 인해 우리 인간이면 누구나 본성적으로 느끼는 ‘실존적 불안(existential insecurity)’과 다른 하나는 경쟁과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제조된 불안(manufactured insecurity)’을 언급하면서 후자의 만들어진 불안 대해 장문의 소회를 밝히고 있었다.
현 시스템에서 사는 한 우리는 이 제조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못 가진 사람은 좀 더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하며, 자기 자존감의 회복과 행복은 소비나 소유로부터 온다고 착각하며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많이 가진 부자들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좀 더 가지려고 발버둥친다. 예측 불가한 미래의 삶은 더욱 더 이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물건이나 써비스를 팔고 장사하는 기업들은 이런 인간의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더욱 더 많은 상품과 써비스를 팔아 이윤을 챙긴다. 이런 시스템에 있는한 우리는 이중의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불안의 치유는 어디서 시작될 수 있을까? 이런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서 살면서 그 희생양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존적 불안을 공유하면서 사회 구조 변혁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데서만이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이 수필의 저자는 제언하고 있다. 기후의 문제, 부의 불평등 문제, 과생산 과소비 등 거대 사회 문제에 관한한 이런 접근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그 저자라면, 해법의 열쇠를 하나 더 제시할 것 같다. 사회적인 연대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벗어나서 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벗어나는 정신적 자유가 우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생각 관리에서 올텐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 하나를 다루지 못해 불안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차원에서 그 불안 해소의 핵심은 다름 아닌 ‘동일시(identification)’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를 따라다니고 정체감을 주는 많은 이름 딱지들과 관념들에서부터, 그리고 나를 엄습하는 생각들과 감정들에서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이들이 나하고 하나라고 보는 '동일시 습관', 아니, '동일시 중독'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습관과 중독에서 벗어나는 ‘탈동일시’의 연습과 훈련이 있을 때만이 우리는 구조적 속박 속에서도 정신적 탈출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본다. 구체적으로, 불안 해소의 가장 강력한 해법은 나를 떨어 뜨려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명상적인 관조적 방법이 그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자물쇠를 통해 내마음의 자물쇠는 몇 개나 되는지 들여다 보았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마음의 자물쇠들이 점점 늘어남을 느낀다. 이 시점에서, 자물쇠가 전혀 필요없었던 어린시절 시골 마을의 삶을 회상해 보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인생길에서 그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도난 걱정없던 자유로운 개방적 정서를 회복하여 내 마음의 자물쇠 수를 줄여 나가리라는 각성의 소리를 되뇌여 본다.
어머니, 쉼없이 달려온 고단한 어머니의 삶을 이 자식이 애도하고 또한 그 질곡에서 해방 되심에 안도합니다. 그동안 저를 나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보살펴 주시느라 너무 노고가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자물쇠들이 필요없는 곳에서 평안히 영면하소서!
(이 사진을 찍은 후에 어머니 방에서 자물쇠가 추가로 5개가 더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