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평안한 영면을 기도드립니다. 저도 노모를 모시는 상황이라 남의 일이 아닙니다. 유족 모두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님 더이상 아픔 없는 곳에서 부디 평안하시길 기도드리고 창공님과 가족분들도 부모님과의 소중했던 추억들 떠올리시며 평온과 위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큰슬픔에 창공님과 가족분들께 위로를 전합니다.
창공님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위 기사 (https://shorturl.at/tBNZ4)를 읽어보았습니다. 역시 결론은 가진자나 갖지 못한자나 모두 불안은 존재한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우리들이 서로 돕고 연대하는것만이 불안에서 해방될수있다는 것을 강조했군요.
의사인 Gabor Maté는 "가장 단단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가 먼저 털갈이를 하고 부드러워지듯이 가장 강력한 나무가 자라려면 부드럽고 유연한 새싹이 필요하다." 정서적 취약성 없이는 성장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공유하는 실존적 불안을 인식하고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연대를 구축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결국 연대 (Solidarity)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안보 형태 중 하나이다. 위기에 처한 이 지구상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곤경에 함께 맞서는 안보가 바로 연대인 것이다.
Insecurity, after all, is what makes us human, and it is also what allows us to connect and change. “Nothing in Nature ‘becomes itself’ without being vulnerable,” writes the physician Gabor Maté in “The Myth of Normal.” “The mightiest tree’s growth requires soft and supple shoots, just as the hardest-shelled crustacean must first molt and become soft.” There is no growth, he observes, without emotional vulnerability.
The same also applies to societies. Recognizing our shared existential insecurity, and understanding how it is currently used against us, can be a first step toward forging solidarity. Solidarity, in the end,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forms of security we can possess — the security of confronting our shared predicament as humans on this planet in crisis, together.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창공님과 가족분들께 위로를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평안한곳에서 영면하소서....
창공님 글 잘 읽었습니다..
우주에서 볼때 살아있음이란, 너무나도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현상 (singularity)이란 생각에 개인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 불안함의 원인이 무엇이던, 자유롭기란 어렵고, 다만 한없이 겸허해질수 밖에는......
그래서
오늘도 하루 숨쉬며, 살아감에 대한 깊은 감사. 일상에서오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생각하며,
마지막날까지
지내고자하는 바램으로 살아냅니다..
힘든시간들 잘 이겨내시고
조만간 만나,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그간 정리된 생각들 듣기를 바랍니다.
창공님, 어떠한 위로의 말씀을 드려도 상심이 크시겠지만,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큰 슬픔을 당한 창공님과 가족분들에게 삼가 위로의 마음 전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이제 편히 쉬세요.
다시 반갑게 만나 뵈올때까지..
미국 이민와서 살면서 가장 쓰라리고 가슴 아픈일은
엄니를 곁에서 모시지 못하고 ,
바로 말하자면 버리고 떠나온 불효 막심함 입니다.
미국땅이 뭐라고 울 엄니 두고 떠나 왔을꼬...
돌아가는 비행기안애서 얼마나 맘이 슬프고 아펐을지.
.
어머님에 대한 창공님의 애틋한 그리움이 뭍어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본의 아니게도, 제 어머니 상과 관련 개인적 소회의 글을 올려 우리 산악회 홈피를 상가집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점 낯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조의를 표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살아계시든, 이미 타계하셨든, 우리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계셔서 이렇게 공감을 표시해 주신 거로 믿습니다. 더욱이, 이국 만리 고국에 어머니가 계신 분들한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점에서 제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기도 하겠고요.
이 참에, 위에서 선비님이 지적하신 대로 우리가 살아있음이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 느껴보고 살아있는 동안 감사하면서 치열하게 산행도 열심히 하는 산악회가 되길 바래 봅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어머니께서 불안과 걱정이없는 평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창공님도 마음 잘 추스르시고 일상으로 회복 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물쇠 사진들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 창공님과 가족분들께 위로의 맘 전해드립니다.
이제야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한 곳에서 영면하기를 바랍니다. 제 어머니는 58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셔서 비자 문제로 당시 가보지도 못했는데, 제가 그 나이에 가까와지는게 인생무상이 느껴지는군요. 58세든 90세든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형언할 수 없슴을 절감합니다. 웬지 저도 주변정리를 해야 자물쇠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소유욕과 물욕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도 되는군요. 하루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를 바쁘게 만드는 게 좋을듯합니다. 이것 또한 쉽지 않겠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