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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by 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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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발바닥 3.jpg

 

산악인들에게 발은 생명이다. 산을 오를 때 머리가 몸을 인도하고 마음이 또 따라줘야 하겠지만, 결국 오르는 주체는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발과 다리인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는 산행 계획이나 목표가 좋아도, 아무리 내가 오르고 싶은 열정과 마음이 강하다고 하나, 다리가 말을 안 듣고 발이 따라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현실이 머리를 배반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산행을 할 때마다, 내가 그 전날 머리로 상상했던 장면이 직접 발바닥으로 걷는 현장에 와 보면 그것이 거의 다 허황되거나 환영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내일 산행은 재미가 없을거야, 오늘만은 안 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면 그 생각은 현장과 괴리된 바보같은 것이었다는 게 곧 판명이 된다. 

오직 내가 단단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발바닥이다.  대지를 굳건히 딛고 나아가는 발바닥만이 그 현장에서 살아있는 역동성과 현실의 주체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영혼과 우리 삶의 역동성을 진단하는 기준은 머리의 생각도, 마음의 흔적도 아닌 우리 발바닥의 족적일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산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삶의 역정의 핵심을 잘 꼬집어주는 박노해 시인의 생생한 시를 하나 읊어본다. 
 

“사랑은 발바닥이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뀌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사람은 자신의 발이 그리로 가면
머리도 가슴도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지리니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내 두 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바로 나이니 
그리하여 우리 최후의 날
하늘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리니
어디 너의 발바닥 사랑을 보자꾸나.

 

박노해 시인은 말하고 있다. 사람의 중심은 너무 빠르게 식어버리는 가슴도, 날씨보다 더 변덕스러운 생각이나 마음도 아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늘 행동하는 발바닥이야 말로 사람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발바닥이야 말로 우리 행동의 원동력이고 가슴과 마음까지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의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인 것인 바, 즉 그 행동의 표상이 발바닥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생각도, 마음도 아닌 우리의 발의 자취인 ‘족적’인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갔느냐, 얼마나 세상을 보려고 돌아다녔느냐, 등, 우리 산악인들에게 딱 떨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발바닥이 나에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 본다. 그것을 알려면 또 우리는 발바닥을 쳐다봐야 한다. 

발바닥에 의존해서 열심히 산길을 걷다가 우리는 하늘을 쳐다 보고 별을 헤아려 본다. 같은 시인의 “별은 너에게로”라는 시도 덩달아 읇조려 본다. 

 

“별은 너에게로”
 
어두운 길을 걷다가
빛나는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도 달하지 않았다
 
구름 때문이 아니다
불운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네가 본 별들은
수억 광년 전에 출발한 빛
 
길 없는 어둠을 걷다가
별의 지도마저 없다고
주저앉지 말아라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이 시 행간에 삶의 의지가 가득하다. 그 '가장 빛나는 별'이 무엇이든간에 열심히 꾸준히 살아가다보면 빛은 언젠가 나에게로 온다는 희망.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노력하는 자에게는 값진 결과가 찾아오리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빛의 속도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그 '가장 빛나는 별'을 오늘도 나는 설레며 기다려 본다.

우리네, 산행도 그러하지 않은가. 중도에 길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 지친 몸을 이끌고 내 발의 힘을 빌어 꾸준히 가노라면, 간절하게 찾고 나아가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삶도 이러하리니. 역경과 난관이 있더라도 간절히 기다리면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난관은 희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희망은 가장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나의 가장 빛나는 별을 만나기 위해 간절하게 우리의 길을 걸어간다.

마지막으로 작금의 중동에서 펼쳐지는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을 생각하면서, 16년 전에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아픈 역사의 질곡을 버리지 못해 서로 총칼을 겨느고 있던 그 아픔의 땅의 현장에 서서 박노해 시인이 그 당시 남긴 시로 내 별(?) 볼일 없는 짧은 글을 갈무리 해본다. 어서 빨리 그 부조리한 인류의 총부림을 끝내는 날을 염원하면서.

 

“나 거기 서 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아 레바논이여!
팔레스타인이여!
홀로 화염 속에 떨고 있는 너
 
국경과 종교와 인종을 넘어
피에 젖은 그대 곁에
지금 나 여기 서 있다
지금 나 거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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