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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21> “하하하하하” 사태와 다양성과 포용

by 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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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21> “하하하하하” 사태와 다양성과 포용

(하마스, 하버드, 하원, 하차, 하소연)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대학가에 반유대인 시위가 번지자, 최근에 미국 명문대 총장들이 줄줄이 미의회 청문회에 불려나와 곤혹스런 심문과 추궁을 당하는 수난을 당했다. 이런 시위를 적절하게 막지도 대응도 안 한다는 폭풍같은 비난과 함께. (링크)

청문회에서 한 공화당 의원이 시위대가 결국 유대인 학살을 주장하는 것이라며 이들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하버드대를 포함한 명문대 총장들은 하나같이 거기에 동조하지 않고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답변했다. 게이 하버드 총장도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링크

 “하버드 대학교는 불쾌하고 모욕적이며 혐오스러운 견해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치, 숙련된 변호사가 검사가 파놓은 덧을 피하면서 변호인을 방어하는 듯한 자세로 모호하고도 중립적인 언어로 대학가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명문대학을 후원하고, 유대인이 지배하는 월가 큰손들과 동문들은 이 총장들이 사퇴하지 않으면 기부금을 환수하겠다며 압박을 하였고, 결국 펜실베이니아대 여성 총장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며 12월 11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링크). 

이 일로 하버드 역사상 최초로 여성 흑인으로서 올해 7월에 총장으로 임명된 신임 여성 총장인 클로딘 게이(Claudine Gay) 박사도 엄청난 사퇴 압력을 받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 (이와 관련, 한 달여 전 유대인의 배경을 가진 그 유명한 로렌스 써머즈(Lawrence Summers) 전 하버드대 총장도 학생들의 반유대 정서를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며, 현 총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다행히 700여명 이상의 교수진들이 게이 총장의 신임을 표하는 지지 성명을 내주어서 간신히 사퇴를 면했다. 이 지점에서 왜 하버드 이사회가 하버드의 금융 자산을 좌지우지하는 큰손들과 동문들의 압력에도 불구 게이 총장을 사퇴시키지 않았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통을 중시하고 지극히 보수적이던 하버드 이사회(과거 7명,현재 13명)이 그 사이 크게 변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나아가 게이 총장에게 하버드가 채택하는 다양성 존중과 포용(Inclusion)의 정책이 시들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게이 총장은 흑인 여성으로서 그의 경력이나 면모가 이런 정책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버드 출신이 아니고 스탠포드대 출신이라는 것도 다양성을 대변하는 상징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청문회에 불려나온 MIT, 펜실베니아, 하버드 총장들은 다 하나 같이 여성 총장이다. 이것만 보면 아카데미아에도 유례없는 여성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것 같다. 하필 이쯤에 이스라엘 전쟁이 나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대학가에 번지는 반유대 시위로 총장들이 시련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하버드 대학의 입학 절차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차별 및 인종을 근거로 한 입학 허가 배분과 관련된 법적 논란이 있었으나, 하버드 대학은 대체로 개방적인 정책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최근 하버드대 학생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의 조사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 교수진 중 80% 이상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조사되기도 했다 (링크).

그럼, 미국의 명문을 대표하는 하버드 대학은 언제부터 이렇게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과 개방을 표방하는 소위 진보적인 대학이 되었을까? 월가를 점령하는 유대인의 자금력이 하버드 대학의 돈줄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 초창기에 보수적인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되어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으로 시작한 하버드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대학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실, 한 동안은 그런 모습을 유지한 것도 사실이다. 

1636년에 청교도 사상과 보수적인 캘빈니즘 신학을 기반으로 시작된 하버드 대학이 본격적으로 변화한 것은 1700년대 최초의 비청교도 총장인 레버레트(Leverett) 총장이 등장하면서 그 흐름이 시작되었고, 1800년대에 들어서 하버드 신학대학의 교수로 전통적 보수신학인 캘빈니즘 대신 세속적 교육을 채택하는 ‘유니테리언’ 출신 홀리스(Holis) 교수가 되면서 하버드 신학의 개방성의 물꼬가 트였다. 다시 말해, 개방적인 신학에 대한 표방이 대학 내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 후로 하버드 대학은 전통적 관행을 중요시하는 보수적 학교 경영과 개방적 학문과 사고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공존해왔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다양성 존중과 포용을 강조하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대학으로 크게 변모하였다. (한편, 하버드의 진보적 성향에 반발하여 1700년대에 코네컷주에 대안으로 세워진 예일대학은 현대초기까지도 보수적인 색깔을 강하게 유지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보다 개방성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모한 것도 참고해 볼 만한 점이다.)

개인적인 체험으로, 나는 2000년에서 2015년까지 16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교수를 하며 16년 동안에 내가 거친 총장은 중간 과도기(interim) 총장까지 합쳐서 총 4명이었다. 그 중에 클린턴 대통령 당시 미상무부 장관을 지낸, 로렌스 써머즈(Lawrence Summers) 총장을 비롯해서 최초의 여성 총장인 드류 파우스트(Drew Faust) 총장이 있다. 내가 하버드에서 일할 때 쯤부터 다양성 증진 정책이 본격적으로 나왔는데, 이 정책이 일환으로 남성들만이 지배하던 총장 자리에 파우스트라는 여성 최초 총장이 선출됐고, 공부 잘하는 가난한 학생들이 전액 장학금을 받고 무료로 다니는 현상들을 직접 목격했으며, 내가 속한 학과에서 줄줄이 여성 교수와 소수민족 출신 교수들이 영입되는 걸 목도하면서 그런 포용 문화를 피부로 실감했었다. 한 번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는 전쟁을 벌였을 때 이를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대거 시위하는 것을 목도 하면서 하버드의 진보적 성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버드의 진보적 성향은 내 연구실 바로 옆에 있던 신학대학(Divinity School)에서 특히 많이 도드라졌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목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시작된 하버드 신학대학은 근대와 현대에 와서는 종교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개방적인 신학대학으로 변모했다. 한국에서 스님들이 초청돼서 거기서 목사 후보자 학생들과 같이 나란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같이 소통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얼마나 이 신학대학이 개방성을 추구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종교들 간에 서로 소통하고 나아가 종교 통합을 하는 시대를 꿈꾸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여 자본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계층 간의 간극이 커지며 자본주의의 약점이 더욱 드러나는 요즘, 세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명문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가 세계를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우리 산악회도 원래의 기본 취지를 더욱더 살려 보다 다양해지고 보다 개방을 추구하는 열린 산악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최근에 다양성의 측면에서 조금은 조금 위축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새로운 회원들이 왔을 때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격려하며 이끌어주는 것도 다양성 확보의 좋은 열쇠가 아닌가 싶다. 그런 격려가 없으면 초심자들은 곧 관심과 열의를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 미국 전역의 가장 모범적 산악회라는 확신과 함께 이 자부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거듭 나는 산악회를 꿈꿔 보면서 ‘하하하하하’ 사태는 그냥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래 본다.

 

하버드 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