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배움
2024.04.11 16:17
<창칼 31>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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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31회>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 (1부)
이 세상에서 권력이나 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을 빼고, 불평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다수가 실제로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 가치관 조사”라는 게 있다 (링크). 100 여국의 사회과학자들이 각 사회의 사회문화적, 윤리적, 종교적, 정치적 가치를 정기적으로 조사해서 발표하는 조사이다. 이 조사의 한 항목인 사회 불평등 인식 조사에서 수년 동안 한국이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2014년 이 조사에서 “당신은 계층간의 수입이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24%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100여 개의 조사 대상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고 가히 충격적이다. 세계에서 불평등 지수가 가장 안 좋은 미국인들조차도 그 질문에는 32%가 나왔고, 반면 불평등 지수가 낮은 독일인들은 58%로 나와서, 이들 나라와의 격차를 실감나게 한다. 시간이 더 흐른 2024년에는 같은 질문에 대한 한국인들의 답이 10년 사이에 24%에서 12%로 반토막이 났다. 더 심각한 것은 “계층간에 수입의 격차가 더 벌어져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 한국인들은 60%가 그렇다고 대답해, 이 수치도 100여 국가 중에서 나쁘게 나왔다. 지금의 불평등에 대한 낮은 감수성도 모자라 계층간의 수입 격차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인들의 불평등 인식은 가히 병적인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다수가 불평등에 대해 둔감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의 상태를 용납하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뉴욕 타임즈에 <한국은 소멸하고 있는가? (Is South Korea Disappearing?)>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링크). 기본적으로는 저출산 현상에 대한 얘기이지만, 현재 출산율 0.7이라는 초저출산율의 원인으로, 잔인한 경쟁 사회로의 지향이 한국인들을 병들게 한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 최근 미국 출산율은 1.7, 프랑스는 1.8이다.) 한국 사회문제 전문가인,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들의 인구 감소율은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시기를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구 소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링크).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가?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이 인구 감소에 있어 ‘인류 역사의 최악’이라는 불명예의 딱지를 받아야 하니 말이다.
이런 침통한 분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태리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전세계 나라들 중에서 허무주의가 가장 급진적인 형태를 보이는 나라가 한국이라면서 그 원인으로 1) 끝없는 경쟁과, 2) 극단적 개인주의, 3) 일상의 사막화, 그리고 4) (살인적인)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링크).
또한, 영국의 킹스 칼리지의 런던 정책 연구소에서 국가 구성원들간에 갈등, 혹은 “문화 전쟁(Culture War)”이 얼마나 심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28개 OECD 국가들을 비교 조사한 결과, 한국은 압도적 1위를 거두웠다고 한다 (링크). 어느 나라와도 비교 안 될 정도로 12개 항목 중에 무려 7개 항목에서 한국은 일등을 차지한 것이다. 그 항목을 보자면 1) 빈부 갈등, 2) 이념 갈등, 3) 정당 갈등, 4) 남녀 갈등, 5) 세대 갈등, 6) 종교 갈등, 7) 학력 간의 갈등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한 마디로 갈등 공화국인 것이다.
위의 국제적인 조사 외에도, 국내 자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들이 나온다. 서울대 발전 연구소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세계의 관용도” 조사를 벌인 결과, 52개 대상국 중에서 한국은 52등인 꼴찌를 차지했다고 한다 (링크). 예를 들어, “당신의 아이가 공부 못하고 있는 아이와 사귈 때 사귀도록 도와 줄 것인가, 아니면 같이 놀지 말라고 한 것인가” 같은 질문에 한국인들은 대부분 후자의 답을 택했다고 한다.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한국의 사람들이 국민소득이 1,100불을 넘지 못하는 르완다 보다 성숙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최근에 작고한, 재야 경제 학자인 정태인님에 따르면 한국은 전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250년 역사에서 한국만큼 더 불평등한 공동체는 없다라는 어마무시한 평가를 내렸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 시대는, 주인공 장발장이 나오는 소설 <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1830년 프랑스 혁명 당시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그 때보다 더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링크). 수치로 말한다면 그 때의 불평등 지수가 10점 만점에 7.2 이라면 현재의 한국은 9라는 것이다. 이 수치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한 경제 전문가의 말이니 새겨 볼 필요는 있다.
이런 암울한 통계나 분석들을 보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위의 인용된 부정적인 수치들만이 한국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문가들에 비친 한국 상황이 심각한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수년 뒤에 돌아가서 살아갈 고국이기에 고국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우려를 갖고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낮고, 국민들 간에 갈등이 심하며, 관용이 최고로 적은 나라. 이런 거대한 난제들로부터 한국이 빠져 나올 수 있는 비책은 없는 것일까?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원인 진단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단적으로 김누리 교수의 분석을 빌리자면, 이 현상들의 핵심 기저에는 “경쟁"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한국과 이를 부추기는 잔인한 교육 제도와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 어떤 이해가 필요하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가. 다음 글 2부에서 이를 계속 풀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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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 사회 문제를 집중 파고들어 연구하는 김누리 교수의 강연 씨리즈를 많이 참고했습니다.그외에 글을 쓰면서 제가 일일이 찾은 참고 신문 기사들은 본문에 하나 하나 링크를 달았으니 본문 링크를 참고하세요..강연: 한국은 어쩌다가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병든 사회가 되었을까? (링크)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2020) (책 링크), (책 소개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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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서 드는 개인적 감회입니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눈부신 대처 능력을 보여 주면서,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돼 있었다!"라는 얘기가 회자됐던 것이 불과 2, 3년 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링크).윗 본문에서 언급된 여러 병든 고국의 모습은 우리가 의식을 하든 못 하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산업화 이후로 오랫동안 지속돼온 일이지만, 요즘 들어 특히 모든 상황이 급격히 더 나빠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상한 정부가 들어서더니 순식간에 외교, 경제, 사회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경제, 사회적으론 마치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많은 시련을 극복해 온 한국의 저력이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전문가로서 조금은 거창한 주제이지만, 배우는 자세로 이를 위한 방법론적 모색을 하는 의미로 이 글을 써 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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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Manson이라는 미국의 한 여행 작가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탐색 (I investigated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두 달 전에 올린 유툽 영상이 130만의 조회수를 찍었습니다 (아래 영상).이 작가는 이 영상에셔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이곳 저곳을 보여 주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엄청난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룬 한국이 OECD 국가에서 가장 자살율이 높고 정신 질환자가 최고인 나라로 전락한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미국과 한국 젊은이들에게 행복한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미국 젊은이들이 1) 건강, 2) 관계, 3) 재정 안정으로 꼽은 반면에, 한국 청년들은 1) 재정 안정, 2) 건강, 3) 관계로 나왔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서 거의 모두가 돈에 매달리고 얽메이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노인들의 75%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구조를 가진 나라, 물질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겉은 화려하되 속은 형편없이 문드러진 나라, 유교의 영향으로 남과의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경쟁심과 수치심에다 (천민)자본주의에서 오는 물질주의 숭배와 극심한 개인주의가 짬뽕이 되면서 많은 개인들이 엄청난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운데 우울증과 정신 질환에 걸린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비관적이고 우울한 영상이지만 문제 해법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우리 자화상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공유해 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JCnvVaXEh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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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제목을 맹자 이야기로 변경해서 올립니다. 내용이 어렵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좀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해석하고, 주희의 해석 부분은 필요하지 않으면 생략해서 내용을 간단하게 작성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주셔서 감읍할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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