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 35>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면 보이는 것들 (1부)
명상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명상의 인기는 스트레스와 불안이 넘치는 현대 생활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명상의 대중화에 비해서 과연 명상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등, 제대로 이해가 쉽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찌기 20대 중반에 명상을 접하고 소위 마음의 자유라는 것도 맛본 적이 있었고, 40대 때는 삶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다년간 집중적으로 명상을 통해 작은 깨달음들도 성취 한 적도 있었다. 조만간 은퇴를 하면 명상 전문가로서 이를 직접 가르쳐 보려는 계획도 있기 때문에 이는 필자에게 의미가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흔히, 명상이란 멍 때리거나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혹은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다 막연한 표현들이다. 영어로 메디테이트(Meditate)는 원래 ‘기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로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살면서 의식적인 삶을 잊고 사는 우리가 기억을 돌이켜서 ‘의식적’이 되는 것을 말한다. 한자로 명(冥)은 ‘어둡다’이고 상(想)은 ‘생각’이다. 사전에는 ‘눈을 감고 깊게 생각한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실제의 뜻은 정반대이다. 생각을 어둡게 해서, 즉 생각을 적게 해서 의식을 각성 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두 정의의 공통점은 생각에서 벗어나서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상태 혹은 행위를 말한다.
한 마디로 ‘의식적'으로 사는 것을 연습하는 게 명상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의식적인 삶을 사는 우리가 ‘의식적'인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조건화되고, 프로그램화 되고, 습관화 돼 있는 무의식적인 삶을 디폴트(=기본값)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자동화된 무의식적인 삶을 조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생각과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인 삶에서 탈출하고 의식적 삶으로의 전환에 첫번째 관문이 바로 생각 관리, 즉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10여년 전에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링크)'이라는 책이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책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제목은 참 잘 붙였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바로 명상의 핵심을 궤뚫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바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쉴새 없이 돌아가는 생각을 잠시 멈추는 것을 말한다. 이때 생각과 생각 사이의 여유 공간이 생겨난다. 바로 그 공간의 인식이 바로 명상의 1차적인 효과인 ‘의식적’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마음의 고통은 생각에서 나오기에 생각을 멈추고 그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록 더 의식적이 되고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내면을 통찰하는 안목의 힘도 커지는 것이다.
단적으로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한다면 이것에서 벗어나는 ‘탈동일시' 작업이 바로 명상인 것이다. 즉, 의식과 생각의 분리를 통해, 자기 객관화 혹은 메타 인지가 생겨 나는 것을 말한다.
방법론적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일찌기 전통 한국 불가(佛家)에서는 명상 수행의 방법으로‘지관쌍수('(止觀雙修) 혹 ‘정혜쌍수(定慧雙修)'라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했다. 지(止)와 관(觀)을 동시에 사용해서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명상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이미 용어만 다를 뿐, 고대 인도에서 명상이 생겼을 때 사마타(止)와 비파사나(觀)가 이미 있었다. 여기서 ‘지(止)는 생각을 멈추고 집중하는 것을 말하고 관(觀)은 관찰을 통한 알아차림을 말한다. 즉, 집중(=생각 멈충)과 관찰(=알아차림)의 어우러진 춤이 바로 명상인 것이다. 명상 초보자들에게는 이 닫힌 의식인 집중과 열린 의식인 관찰이라는 반대 요소가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게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된다. 즉, 마음을 모아 집중하면서도 주변에 일어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릴 때 제대로 된 명상이 되는 것이다.
숨을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생각) 멈춤(=집중)과 숨이 고요해고 몸이 이완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관찰)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명상이 잘 일어나는 것이다. 명상을 하려면 뭔가 하나에 집중(concentration)을 하면 자연히 알아차리는 일(mindfulness)도 같이 일어난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마음이나 신체를 알아차리는 주의를 먼저 기울이면 동시에 집중도 일어난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혹은 감정에 대한 안목과 이해가 저절로 일어난다. 그게 바로 자잘한 깨달음이고 지혜인 것이다. 다시 말해, 명상을 자주 하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커지고 안목도 높아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혜로워진다는 얘기다.
결국, 명상은 생각을 통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보통 뇌는 생각의 과정을 통해 현실을 왜곡시키는 습성이 있다. 고정 관념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려는 습관 때문이다. 명상의 알아차림(mindfulness)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감각, 감정, 생각을 바라 봄으로써 내면을 관찰하고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과 자기신념, 혹은 자기속임수를 통해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사는 지를 깨닫게 해 준다. 이렇게 내면의 관찰을 통해 고착화된 나의 생각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되고, 이때 나는 ‘나라는 생각' 아닌 순수 의식 (혹은 메타인지)임을 깨닫고 큰 자유를 얻게 된다. 바로 이게 명상의 훈련을 통한 의식적으로 되는 요체인 것이다.
이런 의식적인 삶을 통해 삶은 하나의 거대한 놀이가 될 수 있다. 마음의 자유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 명상을 자주 하면 직관이 열리고 창조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두려움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가 안정이 돼서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난다 (이전글 링크). 긴장된 몸이 이완될 뿐만 아니라 강화된 메타인지를 통해 행복감이 높아진다.
정보 홍수와 소비 홍수 속에 산만해지고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들. 끊임없는 자극과 정보 소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다 볼 여유가 없이, 무언가에 붙잡힌 채 쫓기듯이 노예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명상은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뇌를 편안하게 휴식시켜서 성찰 능력이 자라게 하는 최고의 방법을 알려준다.
넘치는 자극과 바쁜 일상으로 잃어버린 마음의 여유와 내면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오늘부터 명상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나는 무엇인가?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인가? 그 감정과 생각을 바라보는 의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