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postedJun 29, 2024

소주 마시고 가출해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

by 보해 Views 195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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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을 먹고 장거리 운전에 나선다. 며느리의 유일한 자매 여동생의 결혼식이 July 4th 연휴에  LA에서 열린다. 곧 태어날 손주를 위해 며느리도 좀 챙겨야 할거 같고 LA 사는 오랜 지인도 이번에 만나 회포도 좀 풀어야 할거 같아 좀 일찍 출발해 LA에 일주일 정도 머물 예정이다.

 

올해초에는 지난세월 비지니스 하고 일하느라 개인적으로 미뤄왔던 여러가지 일들과 급한거만 맡기고 그외에는 모두 미뤄왔던 손볼데가 계속 늘어나는 집 수리도 이젠 해보자 싶어 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흐미, 막상 To Do 라 적고 Personal To Do 와 House Repair 라고 카테고리를 만들어 리스트를 작성해 나가니 항목이 엄청나다.  그래도 일단 시작…

Personal 이야 급한거만 먼저하고 나머지는 천천히 해도 되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 집수리는 일을 한번 벌리면 집안이 공사판이라 가능하면 집중도를 좀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전에 직접 이거저거 조금씩 고친적은 여러번 있지만 이번에는 막상 제법 큰판을 벌리고 보니 내가 전문가 수준의 컨트렉트도 아니고 모르는건 Youtube 뒤지고, 웹사이트 뒤지고 시간이 따따블로 든다. 또한, 몸은 아직 이팔청춘인줄 알았는데 서너시간만 일해도 허리, 무릎, 어깨 온 샥신이 쑤신다.

 

그래도 여러가지 제법 손본거 같고 스스로에게 보상으로 길 나선김에 조금 쉬어가자 싶어 이번 LA 방문일정을 좀 여유있게 잡았다. 이번 LA 방문길에 동승한 조직의 보스 칠공주파 “연희동 면도날”에게 물어본다.

 “우리 가는길에 1번으로 빠져 Santa Barbara 나 Morro Bay 라도 들러 바닷가서 하루 쉬었다 갈까? “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거주지 조직의 보스 면도날이 답한다.

“아저씨, 정신 차리고 빨리 LA 일보고 집에 돌아와 제발 좀 벌여놓은것들 좀 정리해라. 집이 공사판이 아니고 난장판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건뭐 난장판 벌여놓고 바닷가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드나?  내가 시다바리도 아니고 뒷정리는 전부 내몫이다. 내가 더 힘들다”

맞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도 있는데 사실 영혼과 육신의 불일치 관계로 3시간 일하고 맥주한잔, 두시간 일하고 와인한잔, 유로 축구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임시 공휴일.  태양이 녹스는거도 아니고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된다는 식으로 지난 몇개월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ㅎㅎ 


  “연희동 면도날” 이라는 조직의 보스는 성질이 파닥파닥하여 어지럽게 널려있는걸 싫어하는 성격이다보니 매일 매일의 뒷정리는 자연스레 자기몫이었나보다.

 

내가 한마디 던진다

“가시나, 무드라고는 진짜 더럽게 업따”

누가 면도날 아니라 할까봐 돌아 오는건 무언의 레이저 눈빛뿐이다.

 

주유소들러 기름넣고 근처 식당들러 밥먹고 다시 출발한다.

이번에는 교대로 운전대를 잡은 면도날의 한쪽손을 아무말 없이 살포시 잡아본다.

“아저씨, 주책 그만부리고 졸리면 한숨자라”

주책?? 주책이라 했나??? 살며시 손잡으면 그윽한 눈빛으로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는 영회장면은 고사하고 이건뭐 마귀할멈 심술부리는 느낌이다.

 

다시 한마디 던져본다

“가시나, 니 자꾸 나를 정신적으로 학대하면 나 소주마시고 가출한다”

면도날 대답이 간단 명료하다

“ 넵, 감사합니다”

 

장남에, 남쪽 바닷가 출신에, 반곱슬에, 옥니에,  보통이 아닌 시어머니와 시부모 15년 모신거에, 젊었을때 대화방식이라고는 “와 이리 시끄럽노”, “댓따, 고마해라”,  그래도 뭐라하면 “가시나, 디비자라” 이게 판에 박힌 남푠 (남의편) 대화방식이다 보니 어느새 FC Razor Blade 가 천하무적 강팀으로 변모되어 있었나 보다. ㅎ

(편집자주: FC Razor Blade 는 축구팀 Football Club 약자가 아니고  Fighter Chicken - Razor Blade 로서 한국어로는 “싸움닭 - 면도날” 이고 평생 말단 조직원 “남포동 씨발류”가 뿌려놓고 다니는 씨발류 화재날까 사고날까 뒤치닥거리 하다 아까운 청준 다 보냈다고 항상 주장한다 )

 

내가 캠핑, 백팩킹등 포함해 장거리 여행을 좋아 하는 이유는 길을나서  장거리 운전을 하다보면 분명 아무생각을 안하고 그냥 풍경을 주시하며 운전만 하는거 같은데 이때가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 가는거 같다. 그중 하나가 왜 일상에서 별거 아닌일로 신경 곤두세우고, 목소리 높이고, 짜증내고 하는지, 아무리 출신이 부루조아가 아닌 남쪽 바닷가 프로레탈리아 출신이지만 나이가 들어도 언어는 왜이렇게 순화가 안되는지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운전대를 잡고 있다보면 느껴진다.

어느샌가 내인생도 60을 넘었다. 지나온 60년이 왜이렇게 휙 빨리 가버렸나 싶다가 지난 60년에 비해 훨씬 짧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또 얼마나 금방 지나갈지 한편으로는 두렵다. 저 날카로와진 면도날을 좀 무디게 해야 될거 같고 내스스로 씨발류 관리도 좀 잘해 다른 사람의 걱정도 덜어줘야 할거 같고, 더늦어 후회하기전에 가족이나 아끼는 상대에 대한 배려도 좀더 신경쓰야 할거 같고… 갑자기 멀쩡한 인간이 된다.

근데 문제는 이게 딱 일주일 약발이다. 여행에서 일주일 지나면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의 복원력이 참 대단함을 느낀다. 매주 여행만 하며 살아야 하나??? 그럴 능력은 안되고 ㅠㅠ

 

 

앞에 갑자기 정체가 생겼는지 면도날이 급브레이크 밟아 내몸이 앞쪽으로 쏠린다. 나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바로 튀어 나온다.

“ 에고 가시나, 운전좀 똑바로 해라.”

또다시 레이저 눈빛이 발산되는게 느껴진다.

오, 신이시요 ! 구제불능의 이 불쌍한 중생을 구제해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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