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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39> 내가 의지하는 가장 소중한 친구
 

 
초등학교 5학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
 
집 앞에 있는 큰 호수에서 친구 서너 명과 멱을 감으며 놀고 있었다. 그때, 헤엄을 잘 치는 친구가 수심이 깊은 곳으로 가서 놀자며 그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 당시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던 나는 그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겁이 나는데도 친구들을 따라갔다. 그당시는 자존심이 무척 센 아이였던 것이다. 자맥질을 하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따라 나도 조심스레 깊은 물 쪽으로 이동해 봤다. 그 순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너무나 당황한 나는 물 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몸은 물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손을 위로 들어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순식간에 숨이 차오르면서 허파가 터질 것 같았다. 동시에 의식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앞이 안 보이면서 의식이 아득해지더니, 나는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흐릿하게 의식이 돌아오며 웅성거리는 소음과 함께 눈이 살포시 떠졌다. 친구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뜨거워진 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던 장면이 떠오르며, ‘아, 내가 죽었었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중에 친구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나를 소생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트라우마가 너무 컸던 나는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그 평평한 바위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거기에 누워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절대 부모님께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얻은 단 하나의 아들이 그런 화를 당했다는 것을 아시면 충격을 받으실 부모님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 후 살아가면서 또 한 번의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인 고교 시절이었다. 그 자세한 내막은 지면 상 생략하기로 한다. 
 
두 번에 걸쳐 죽음에 가까이 갔던 '근사 체험'은 내 뇌리에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었고, 이후에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삶이 '덤'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고 죽음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 증거로, 나는 죽음과 마주치는 것이 크게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은 나에게 매혹적인 주제가 되어 이와 관련된 책이나 강연들도 많이 접하면서 죽음을 삶의 과정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로마 시대 때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항상 죽음을 연습하고 탐구하라, 그리고 훈련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부정의 시각화’의 방법과 비슷하다. 이 세네카의 철학은 20대에 벌써 내 정신에 깊이 자리를 잡게 되어 이후 내 삶의 시나리오에도 항상 죽음이 들어 있었다. 
 
고향에 가면 어렸을 때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어른들이 다 돌아가서 부재하다. 부모님 두 분도 최근에 돌아가셨다. 이미 저 세상에 간 학교 동창들도 있고, 직장 동료도 있다. 이 죽은 지인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 삶도 여지없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늘 상기하게 된다. 타인의 죽음들이 내가 죽음을 연습하고 대비하게 만들어 주기에 먼저 사라져간 이들이 소중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죽음과 친해진 나는 누군가 죽으면 냉정할 정도로 덤덤해진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누이들은 통곡했지만, 나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저도 곧 따라가겠다’는 마음과 함께 축복을 빌어 드렸다.
 
나는 인생이 시궁창이 될 때, 혹은 삶의 시련이 몰려올 때마다 죽음을 소환한다. 먼저 죽은 지인들의 얼굴도 떠올려 본다. 그러면, 죽음은 여느 가까운 사람보다도 더 강력한 친구가 되어 나에게 통찰과 힘을 준다. 처한 역경이나 시련도 단박에 사소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힘은 마약보다 더 강력하다. 그리고 도전적인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용기를 가지고 당당히 헤쳐가도록 나를 인도한다.
 
엊그제, 미국에서 소중한 인연이었던 사람과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근황을 물었다. 삶이 참 지치고 힘들다고 했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들, 그리고 재산 분할을 둘러싼 분쟁, 내가 들어도 머리가 복잡했다. 위로를 구하는 그에게 죽음을 친구로 삼아 보라고 제안했다. 죽음이 그에게 삶의 우선 중요도의 순서를 밝혀주고 생각 정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마침 모레면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딱 1주년이 되는 기일이 된다(이전 글 링크). 어머니 죽음에 대한 기억은 오늘 하루도 더 빛나게 보낼 수 있는 힘을 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놀라운 기적의 순간을 맛보게 해주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내 자신을 좀 더 사랑하도록 교훈도 준다. 좀처럼 시선이 안 가는 주변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도 하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고, 내가 그렇게 정의롭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을 해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혹, 내가 잘 났다는 오만이나 내 잣대만이 옳다는 강한 독선은 나도 모르게 남을 크게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과 시기나 질투로 남을 모함하는 일이 또 얼마나 헛되고 무모한 일인가도 동시에 돌아보게 한다.

기적처럼 다시 나를 찾아와준 오늘, 나는 또다시 죽음에게 조용히 속삭여 본다. “너는 내가 늘 의지하는 가장 소중한 친구야!”
 
 
 

삶과 죽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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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공 2024.07.24 21:46
    영원한 친구 (배경 음악): 
     
    https://youtu.be/jzX1Nj3aUxA?si=E8sJdllRo0E7phey

     

  • profile
    창공 2024.07.25 07:41

    마침 이 글의 초안을 쓰고 있던 지난 주 일요일(7/21) 밤에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작곡가 김민기 선생님이 세상을 뜨셨대요."

    ......

    어쩌면 영롱한 아침 이슬이 사라지듯, 한 시대의 정신을 이끈 그 님도 그렇게 사라지고 마셨네요. 

    많은 동시대분들한테는 애석한 소식일 겁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나 또한 조만간 이슬이 되어 사라질 거라는 것도 상기해 봅니다. 

    이 안개 자욱한 아침에 그 분의 남기고 간 숨결을 추억해 봅니다. 

     

    아침 이슬: https://youtu.be/IGJm8pN0_9Q?si=Wl884wiI_LrjfIK7

     

  • ?
    에코 2024.07.25 12:28

    한국 대학에서 학과 조교를 하고 있었을 때예요. 새벽에 한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나와 친한 후배 한명이 새벽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어디로 연락해야할 지 몰라서 조교 선생님에게 먼저 알린다고 하더군요.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근처 대학병원 영안실로 바로 갔죠. 어제 만났던 그 후배가 영안실에 누워있는 걸 보니, 삶이 얼마나 허망하던지! 그때 깨달았죠, 삶을 좀더 잘 살고 싶으면, 가끔씩 영안실에  가봐야한다고. 살아있는 거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어죠. 그것을 잊고 있었는데, 창공님의 글이 그때를 다시 일깨워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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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공 2024.07.26 13:15
    같은 차원에서, 한 때 저는 삶이 고달플 때면 공동묘지 같은 데를 가기 좋아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묘지에 가면 기분이 이상해진다고 하지만, 저는 죽음을 떠오를 수 있는 곳에서 오히려 평온과 힘을 얻곤 했었거든요. 최근에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힘겹게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을 차분하게 생생히 목도를 한 것도, 그리고  입관을 할 때 굳어버린 시신을 보면서도 덤덤할 수 있었던 것도 자주 자주 죽음을 마주하고 훈련해서 그렇지 않았나 해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 제가 제일 좋아했던 구절이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역으로 살아 있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더 소중하다,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감이 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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