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postedSep 29, 2024

설악산 암릉 이야기 2편 석주길

by 돌고래. Views 94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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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는 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릉길이고 그곳에는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 등 멋진 암릉길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석주길'은 아름다움 보다는 그곳에 얽힌 설화 같은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그 슬픈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60년대 후반에 명성을 날리던 '요델산악회'에서 할동하던 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였고 동시에, 절친이자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송준호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세 사람의 순수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엄홍석과 신현주 곁을 홀연히 떠난다. 

 송준호가 떠난 얼마 후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설악산 천당폭으로 빙벽등반을 하러 간다. 하지만 빙벽을 오르던 신현주가 그만 추락 하자, 당시 빌레이(확보)를 보던 엄홍석은 연인인 그녀의 추락거리를 줄이기 위해 빙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날린다. 그러나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고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하여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는 악우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넋을 기리고자 1968년 7월 지금의 천화대 석주길을 개척하며 엄홍석의 이름 끝 자인 "석"과 신현주의 끝 자인 "주"를 따서 '석주길'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암릉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친다. 

송준호 역시 1973년 초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가 실족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 따르게 되고 그의 시신은 그토록 사랑하던 친구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1973년 새해 첫 날밤 등반하루 전 그는 엄홍석과 신현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는데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번지 없는 주소로 엽서를 보냈다고 한다. 받는사람 "석주 귀하" 주소는 "벽에서 노루목" 보내는 사람 "준" 그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한편 서울에서는 토왕성폭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던 송준호의 애인은 1973년 1월5일 오후2시 서울 중앙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영을 앞두고 그를 기다린다. 그가 나타나지 않자 뇌리에 스치는 불안감으로 송준호를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섰고... 송준호는 그녀가 짜준 목도리와 장갑, 모자를 가슴에 품은 채 토왕폭에서 그녀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만다. 

 송준호는 토왕폭을 등반 후 돌아와 그녀와 함께 스위스 등산학교를 유학 한 후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팩트 체크에 의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자. 

 사실 영화 한편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슬프고도 아름다운 설화같은 이야기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 사실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냥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다만 송준호와 엄홍석은 서로 절친한 자일파트너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사람 모두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사고의 내용은 알려진 사실과는 좀 다르다. 신현주와 엄홍석은 1969년 하계 설악산 장기등반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소토왕골로 나들이를 갔다가 비룡폭포 아래에서 급류에 실족한 신현주를 구하려다 엄홍석도 함께 사망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자일이나 등산화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슬리퍼 차림으로 가볍게 나섰으며 이들은 선후배 사이로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고 한다. 어쨌든 선후배 사이로 설악산 노루목의 산악인의 묘에 함께 묻히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 처녀, 총각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되어 영혼 결혼식을 해주었다고 한다. 

 석주길 또한 두 사람이 사망하고 이후 개척한 것이 아니라 이미 1968년에 송준호 등 요델산악회 회원들에 의해 상당부분 개척이 된 상태로 특별한 명명없이 '천화대 칼날능선' 이라고 불렀는데... 요델산악회의 창립멤버인 백인섭 선생은 '마켄나의 황금절벽'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여기를 가보면 붉은 적벽의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마켄나의 황금절벽'이라는 이름이 참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이후 1969년 엄홍석과 신현주를 추모하기 위해 송준호 등 요델산악회 회원들이 추모동판을 설치하면서 '석주길'이라 널리 알려진 것이다. 

 송준호는 토왕성폭포를 등반하던중 빌레이어(확보자)가 스탠스를 잘못 잡아 넘어지면서 자일을 잡아채는 바람에 덩달아 선등하던 송준호도 추락하였고 송준호 또한 엄홍석, 신현주와 함께 나란히 노루목의 산악인의 묘에 묻히게 된 것이다. 

 Anyway!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하여 없던 일도 만들고, 있던 일도 사실과 다르게 전하는 것은 마뜩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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