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많은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결과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명성이 높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중국의 찬쉐이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강이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많은 토론과 담론들을 쏟아냈다.
필자도 “왜 하필 한강이었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다양한 평들도 접하고 나름 분석도 해봤지만, 만족할 만한 시원스러운 답을 못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최근에 박구용 철학 교수의 담론(링크)을 듣다가 한 가지 강력한 해답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구용 교수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대표작에서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한강 작가의 정신은 ‘통치술에 대한 감각적 불복종’이라는 거창하면서도 쌈박한(?) 용어로 규정을 했다. 좀 평이하게 풀어보자면, 한강의 작품은 사회적 불의나 폭력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원초적 감각을 깨워 그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필자가 최근에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에 비추어 크게 공감을 한 포인트이다. 즉, 이전 세대는 거대 악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해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저항의식을 갖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역사적 소명이니 하는 생각은 너무나 거창한 것이며, 처한 시대적 상황에 아예 신경을 끄고 무감각으로 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쟁이나 기후 재앙 같은 불편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무관심이 정상으로 통용된다. 어쩌면, 정보와 자극이 너무 많아지면서 거대 담론에 마음을 쓸 신경과 에너지가 바닥이 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세태에 대해, 한강은 여린 감수성의 언어로 무감각해진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불의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불의에 대한 관용을 넘어 적극적인 가해와 다르지 않다는 어마무시한 은밀한 메시지를 내포해서 말이다.
무감각과 무관심이 만연한 시대에 한강은 머리의 언어가 아닌 가장 원초적인 몸의 언어, 즉 감각적 언어에 불을 붙여 폭력에 대해 어쩌면 가장 적극적인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감성이 여린 사람이 거친 폭력에 느끼는 정서가 강렬하듯이, 이에 대한 저항의 표현도 가장 강렬해질 수 밖에 없는 역설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힘은, 작품을 쓰는 내내 작가가 주관에 빠지지 않고 타자(=폭력의 희생자들)의 감각으로 들어가, 그 타자의 시각에서 고통을 같이 느끼고 신음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렇게 타자로 빙의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각을 절제된 언어로 (즉. 시적 산문으로) 표현해냄으로써 그 강렬함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이처럼 한강의 작품은 (조직적 폭압에 대해) '감각적 불복종'이라는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그 불의에 대한 무감각을 깨우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이끌며,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실천을 시작하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라고 팔자는 해석을 해 본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 작품 활동으로 국제적인 명성과 인기가 엄청나게 높고 다작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문학 평론가가 아닌 필자가 그의 작품성을 한 마다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강과 비교되는 대비점을, 바로 앞에서 언급한 ‘감각적 저항’을 통해 사회문제를 파고들어간 그 깊이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팔자가 검색하고 접한 자료들을 압축해 정리해 보자면, 하루키는 분명한 역사인식과 반체제 의식을 포함한, 높은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갖고 있으나, 그의 작품 세계는 많은 경우에 사람들의 일상과 대중문화, 그리고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를 다루는게 많다. 또한 일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개인의 성장과 자아 찾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인류가 처한 보편적 문제를 천착하는 깊이에 있어 한강 작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아마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가 간파하지 않았나 싶다.
감성이 여린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권위있는 상을 수상함으로써 대단한 명성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한국 문학의 위상도 높였다. 이참에 일상과 바쁨, 그리고 넘치는 자극과 정보의 홍수로 둔감해져가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되살리기 위해 나 자신과 대면하는 침잠의 시간을 늘리고 한강의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가 보면 어떨까.
(Amazon에서 몇 주전에 구입한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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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소년이 온다 (Human Act)'를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집중해서 읽으면 화자들(희생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그대로 생생하게 느껴져서 헉헉 거려야 했고, 역으로 또 감정이입을 안 하면 흐릿해서 잘 읽혀지지 않고요. 문장들이 아주 간결하고 책 두께도 얇아서 금방 읽을 책이지만 생각외로 만만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채식주의자는 영어로 읽었는데 번역본이 더 다가 오는 듯하기도 해서 신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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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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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전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20대초반에 열광했지만 그때의 내 깊이가 고만고만했기때문에 (물론 지금이라고 더 깊은것은 아니지만) 말씀하신 하루키와 한강의 작품 깊이에 동감되네요. 개인적으로 (어겐) 한강은 너무 읽기가 힘들어서 (몸에서 모든 힘이 빠지고 마음은 먹먹) 저는 채식주의자밖에 안 읽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