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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2> The Crucible (도가니) - 마녀 재판과 추론의 사다리
 
 
서부로 오기 전 16년 동안 동부에 산 적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보스턴 옆, 케임브리지(Cambridge) 시에 있는 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다. 보스턴은 알다시피 미국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초창기 미국 역사의 흔적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곳이다. 직장 생활을 한 대학도 미국의 최초의 대학이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케임브리지에서 북쪽으로 25마일쯤 가면 세일럼(Salem)이라는 자그마한 타운이 있다. 바닷가에 인접한 이 타운은 영국에서 이주한 청교도들의 역사가 펼쳐지던 17세기 말에 마녀 재판이 실제로 벌어진 곳이다. 아서 밀러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연극 “크루시블(The Crucible, 일명 “도가니” 혹은 “마녀 사냥”)”을 썼다.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도 마녀 재판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의 세일럼을 배경으로 쓰여진 게 흥미롭다. “주홍글씨”는 마을 사람들이 한 여인을 간통죄로 몰아 마을에서 완전히 왕따시키는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은 책이나 영화로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루시블”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스토리의 강렬함은 “주홍글씨”를 압도하는 이야기로 1996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692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애비게일이 이끄는 몇몇 소녀들은 장난삼아 마을 사람들을 마녀로 고발하기 시작한다. 이 고발은 처음에 개인적인 원한과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삽시간에 마녀사냥의 광풍에 휩쓸려 서로를 고발하고 비난하는 광기의 도가니를 일으킨다. 이 대혼란 속에서 많은 마을 사람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지금도 세일럼에 가면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재판을 보여주는 마녀 박물관이 있다.)
 
이 연극 혹은 영화는 두려움과 의심이 뿌리내릴 때 군중이 얼마나 쉽게 선동되고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며, 그 결과 사회가 어떻게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적 붕괴의 핵심에는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추론(=가정)의 함정”이 있다.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의 '추론의 사다리' 이론은 인간관계의 갈등 해결을 위해 제시되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한 결론에 도달할 때는 일곱 가지 단계 (관찰 - 선택 - 해석 - 가정 - 결론 - 신념 - 행동)을 거친다. 이때, 선택적이고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된 해석을 거쳐 성급한 가정과 결론을 내릴 때 엄청난 “추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크루시블"의 맥락에서 보면 두려움과 편집증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은 너무 빨리 이 사다리를 올라타 버린다. 즉, 제한된 증거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들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성급한 가정과 결론을 내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무고한 사람들을 유죄로 몰아 처형하게 되는 참극을 일으키게 된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판치는 오늘날, “크루시블”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정보만을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집단이나 개인을 매도하는 현상은 "크루시블"의 마을 사람들의 행태와 비견된다. 이와 같이 성급한 '추론의 사다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잘못된 추론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 과정을 더욱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제한된 정보의 과필터링하기(즉, 보고 싶은 것만 보기); 그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편향된 정보의 과몰입에 의한 확증편향적 사고하기; 그리고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객관화된 진실에 눈 감아버리기 등, 우리 인식의 한계와 성급한 추론의 함정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영화와 연극 '크루시블'은 마녀 사냥의 광기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인식의 혼란 속에서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현상임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의 환경에서 허위 정보는 마치 마녀 사냥과 같이 개인과 사회를 급속도로 파괴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와 균형 잡힌 추론과 판단이야말로 진실의 길을 가기위해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이 점에서 진실의 길은 예전이나 오늘이나 참 어려운 것 같다.

 

크루셔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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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 2024.11.11 18:01

    추론의 사다리 이론에 의하면, 판단을 내릴때 제일 먼저 관찰하고 선택을 한다고 했죠.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정보를 선택할때, 어느 정도 정보를 선택해야 충분한지 잘 인식하지 못할거라는 거죠. 단편만 보고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릴수 있다는거죠. 그 선택의 정도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근대 이거 하기 쉽지 않을걸요. 생각의 습관과 같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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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공 2024.11.11 18:13

    좋은 지적이고 참 고민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최근 유시민 작가의 "세상은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아름다운가? (https://www.youtube.com/watch?v=cqx2UbdJ6JE)"라는 강연에서 잘 설명해 준 것 같아요. 세상에는 생존에만 매달리는 사람과 의미와 진실 찾기를 부단히 하는 사람들로 나뉠 수 있대요. 전자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자하는 건만 볼 것이고, 후자의 사람들은 넓은 안목을 끊임없이 길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취하고 그 바탕위에서 판단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에 의하면, 세상은 전자와 후자의 사람들로 (물론, 중간의 사람도 있겠죠) 뒤죽박죽 섞여있기에, 세상은 그토록 고통스럽고, 또 가끔은 그토록 아름답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