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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3>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나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한다. 권장 도서 중 하나로 교실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이 있었다. 특히, 공부 좀 한다는 여자 아이들이 돌려가며 이 책을 열심히 봤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과 그럴듯한 삽화 그림들로 인해 나도 한 번 읽어보려고 책을 빌려서 집에 가지고 왔다. 하지만 몇 장 넘겨 보다가 그만뒀다. 그 당시 어린 나이의 제한된 독해력과 인내, 그리고 문화적 감수성 부족으로 인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Heidi)'는 그렇게 나와 멀어졌다.

40년도 더 지난 지금, 갑자기 하이디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어린 시절 끝내지 못한 책에 대한 미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15년 이상 산을 타다 보니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됐고, 왠지 알프스에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요즘들어 부쩍 생겨났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상상하는 알프스가 그 책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하이디는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정말 행복한 삶을 누렸는지 등이 무척 궁금해졌다.

아마존에서 무료 이북을 다운받아서 영어 번역본을 먼저 읽었다. 그 다음에, 유튜브를 뒤졌더니 5개의 서로 다른 버전의 영어 더빙 영화가 올라와 있었다. 1937년에 제작된 흑백 영화를 위시해서 1968년, 1993년, 2005년, 2015년, 총 5개의 영화를 질리지도 않게 3일에 걸쳐서 다 섭렵했다. 이 중, 영화 속 배경, 배우 선정과 연기 등을 모두 합쳐 종합해 보면, 2015년의 최신 영화가 가장 뛰어났고 그 영화 속의 하이디 연기를 한 아역배우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로케이션으로 선정된 스위스 Grisons 지역의 알프스산과 마을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전체적으로 원작 내용도 잘 살렸다. 

하이디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이모와 살다가 이모에 의해 알프스 산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진다. 알프스에서 2년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이모가 다시 나타나 하이디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데려간다. 이모의 욕심으로, 다리 불구로 고립돼서 친구가 필요한 귀족의 딸 클라라에게 보내진 것이었다. 편리하고 화려한 부자집과 도시 생활에도 불구하고 하이디는 산 속 생활과 할아버지가 그리워 향수병에 걸린다. 결국 하이디는 다시 알프스로 돌아온다.

하이디 이야기를 다룬 서로 다른 영화 다섯 편을 몰아보며 나는 왜 이 늦은 나이에 아동 도서와 영화로 치부되고 있는 이 이야기에 그토록 매료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15년 간 산을 탄 경험을 통해 자연, 특히 산에 대한 깊은 동경과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이디가 살았던 알프스의 멋있는 자연은 내가 꿈꾸던 세상 그 자체였다. 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상쾌한 공기와 웅장한 산의 정취, 그리고 푸른 초원 등은 나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어 하이디 이야기 속 풍경과 오버랩되며 나를 설레게 했다.

주변 사람에 대한 하이디의 순수한 마음과 쉽게 자연과 교감을 하는 나이 어린 하이디가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화려한 도시 생활 대신 문명의 혜택이 거의 없는 단촐한 할아버지와의 삶을 선택한 하이디의 결정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시골 생활에 대한 나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도시 생활이 아무리 편리하고 화려해도 거기서 행복을 느낄 수 없었고,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와 알프스 산의 정기와 아름다움이야말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깨닫는 하이디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들어 새롭게 만난 하이디를 통해, 나는 19세기 말 알프스에 살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됐을 뿐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우치게 해주었다. 지난 15년 간 나는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지칠 때마다 산과 숲을 찾아 잃어가는 원기와 생명력을 되찾는 무수한 경험을 했다. 하이디는 그런 나에게 자연에서 오는 원초적인 생명력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산을 모르는 8살 소녀가 험한 산속 생활에 놓여지자마자 자연과 하나가 되어, 염소를 치며 목가적으로 사는 목동 피터와 금방 친구가 되고, 외롭게 사는 할아버지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사랑을 되찾게 해주었으며, 심지어 갑갑한 문명 속에 갇혀 병든 귀족의 딸 클라라까지도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알게 해준 하이디는 단순한 동화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보여주는 감동의 드라마다. 

하이디가 나에게 다시 찾아온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산과 자연에 대한 소망과 열망에 대한 응답이요, 내 삶의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이자 큰 선물이었다. 이제, 하이디가 선물한 감동과 영감을 가슴에 담고 하이디가 살았던 아름다운 알프스를 직접 찾아가 마주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하이디.jpg

<2015년 제작 영화, "Heidi"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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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공 2024.11.17 20:01

    이 감동의 영화와 소설의 로케이션을 찾아 직접 가보려고 검색을 했더니 "Heidi Land"라는 단체에서 이야기의 실제 장소가 된 트레일 따라 걷는 "하이디 트레일" 코스가 개발이 되어있더군요. 여기를 조만간 가보려고 점 찍어 뒀습니다 (싸이트 링크)

    그리고 하이디 영화 중에서 제가 가장 강추하는 2015년 영화 링크(유툽)입니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은 아마존에서는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존 링크).) 그리고 2005년 영화도 꽤 괜찮았습니다.

    참고로 2015년 하이디 영화는 스위스와 독일이 합작해서 만들었고, 하이디 역으로 뽑힌 당시 10세의 아역 배우, Anuk Steffen는 500명의 아역 배우들과의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뚫고 선정이 됐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깜찍하고 천진한 연기가 볼만합니다. 

  • ?
    에코 2024.11.18 07:32

    산과 자연에 대한 열정과 어린 시절 시골 생할에 대한 향수가 전원 속에 파묻혀 사는 하이디를 찾게 해 주었군요. 나이 들면 그런대요, ㅋㅋ.  한편으론 속세의 인간군상들에 치열함을 경험하다 보니, 그런 전원 생활이 더 그립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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