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9월13일: Icefields Parkway-Jasper National Park
아직 온전하지 못한 길동무의 발목 상태, 오늘 하루 더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등으로 여행일정을 약간 수정했다. Moraine Lake의 Larch Valley 산행을 보류해 두고 하루 앞당겨 Jasper로 출발. 그 유명한 Icefileds Parkway (Lake Louise와 Jasper간의 93번 도로, 230 Km)를 달린다. 하지만 이 도로의 명성에 걸맞는 절경들은 대부분 축축한 날씨에 가려져 다만 드문드문 그 자태를 드러낼 뿐이다.
북쪽으로 갈수록 어느새 가을색이 성큼 들어서 있다. 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낯설은 풍경. 9월초의 단풍이라..
Jasper에 가까와질 무렵 비가 잦아들면서 구름사이로 반가운 햇살도 살짝살짝 내비친다. Athabasca Falls를 둘러봤다. 오면서 두어군데 다른 폭포들을 구경했지만 Icefileds Parkway 연도에서는 이 폭포가 제일 볼 만 하다. 완만하게 흐르던 Athabasca 강이 여기에서 폭포와 긴 협곡을 통해 상당한 고도의 변화를 만든다. 내린 비로 인해 더욱 세차게 흐르는 물이 이 계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띄우고.
Jasper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black bear 한 녀석을 제대로 만났다. 이번 여행중 Glacier NP와 Waterton Lakes NP에서 귀엽게 생긴 grizzly 곰들을 세 녀석이나 만났지만 그놈들은 모두 몸을 빨리 피해버려 특히 길동무가 몹시 아쉬워 했었다. 근데 이 녀석은 만사태평. 카메라에 포즈를 취해 주기도 하고 가까이 접근을 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buffaloberry만 훑어 먹고 있다.
다음날, 일기예보대로 비는 그치고 날이 개인다. 좀 쌀쌀해졌지만 대단히 싱그러운 아침, 오늘의 산행지인 Sulphur Skyline 으로 향한다.
Jasper NP가 자랑하는 Sulphur Skyline Trail은 Jasper 타운에서 동쪽 (Edmonton 방향)으로 35마일쯤 떨어져 있다. 그곳으로 가는 16번 도로 연변의 수려한 경치가 몇 번이고 우리를 멈추게 한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Icefileds Parkway가 scale이 큰 웅장함을 많이 보여 준다면 이 16번 도로 구간은 다양하면서도 아주 아기자기하고 정감있는 정경들을 지니고 있다 .
한폭 한폭의 모습들이 각각 다르면서도 모두 맑고 조용하면서 부담스럽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Banff나 Lake Louise지역 보다 Jasper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데 있지 않을까.. 암튼 나는 Jasper 주변에서 여유와 편안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강과 호수들을 따라 시원하게 달리는 16번 도로, 그리고 바람이 불면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난다는 Fiddle Valley를 거쳐 Miette Hot Springs에 도착했다. 이 온천도 캐나다 국립공원이 운영하는 곳이다. 우리가 산행할 Sulphur Skyline Trail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Miette 온천 옆에 있는 Sulphur Skyline Trailhead. 이 trail은 왕복 5.5 마일 정도로 별로 길지는 않지만 후반부는 좀 가파르단다. 이 trail이 왜 유명하고 인기가 있을까하는 것이 평범해 보이는 trail 입구에 이르니 더욱 궁금해 진다.
와우~ trailhead를 지나 조금 오르니 방금전의 아랫 동네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가 나타난다. 엊그제 한 이틀동안 내리던 비가 여기는 어느새 눈이 되어 내렸던 것이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9월초의 눈산행이 우리에게 보너스의 즐거움을 주면서 우리를 들뜨게 만든다. 예쁜 X-mas tree들 사이를 마냥 걷는 기분.
Trail의 중간쯤에 있는 자그마한 meadow도 눈을 잔뜩 머금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treeline을 벗어나 꽤 가파른 민둥산길을 오른다.
확 트인 trail을 오를수록 하얀색으로 화장을 한 보기좋은 산간의 모습들이 사방에서 나타나고..
드디어 민둥산의 꼭대기에 올랐다.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남쪽으로 깊숙이 가고 있는 Fiddle River Valley와 그를 에워싸고 있는 산군들. 이 환상적인 정경은 곧 우리의 탄성마저도 멈추게 한다. 한참을 그저 말없이 쳐다만 볼 뿐.. 확실히 최상급의 valley view다. 왜 이 Sulphur Skyline Trail이 인기가 있는가 하는 것도 이 경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명해 진다.
꼭대기에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지만 우리는 대자연의 경치에 흠뻑 취해 꽤 오랜시간을 거기에서 머물렀다. 감동으로 뿌듯해진 마음으로 하산하다.
Sulphur Skyline Trail의 또 하나의 백미는 물론 하산후 바로 즐길 수 있는 Miette 온천. 캐나다 국립공원이 운영하는 온천중 수온이 가장 높고 분위기도 조용하고 아늑하다. 날씨의 쌀쌀함도 산행의 노고도 모두 말끔하게 풀린다.
다음날 아침 Jasper NP의 두번째 산행지인 Opal Hills 로 갔다. 이곳은 유명한 Maligne Lake 옆에 있는 trail로 Jasper 타운에서 Maligne Lake Road를 따라 27마일쯤 남쪽으로 간다. Maligne Lake Road에 들어서자 멋있는 산간 경치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Maligne Lake에 이르기전 만나는 Medicine Lake. 호수 옆으로 가파르게 치솟아 있는 암벽산이 퍽 인상적이다.
Opal Hills Trailhead. 이 trail은 짧게는 6 마일 정도의 loop만으로 산행할 수 있으나 꼭대기에서 trail을 벗어나 원하는 만큼 능선을 따라 3-4 마일을 더 걸을 수 있다. Trail에 들어서니 경사가 가파른 숲길이 곧바로 시작된다.
빽빽한 숲길을 따라 곰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buffaloberry가 지천으로 늘려 있다. 분명 곰들이 많이 서식할 것 같은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각종 버섯 또한 trail옆 바닥에 가득하다. 큼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것들도 눈에 많이 뜨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밖에..
계속되던 오르막 숲길을 벗어나자 완만한 meadow길. 이제 trail 걷기가 한결 수월해지며 원근의 산간경치들도 눈에 들어 온다. 이 meadow 구간에는 여러가지 들꽃들이 피었던 흔적이 가득한데 특히 진달래과 나무가 빼곡하다. 봄철에는 아름다운 들꽃천지였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Meadow가 끝날 즈음 loop trail을 떠나 Opal Hill 능선을 오르기 시작. 갑자기 빵터지듯이 우리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의 탄성. Maligne Lake 와 호수를 감싸며 연이어져 있는 준봉들. 특히 호변 가까이로 우뚝 솟아 있는 Mt Charlton (3219 m) 과 Mt Unwin (3270 m)의 웅대한 쌍봉이 호수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Opal Hills의 한 정점에 앉아 건너편 산군을 관망한다. 언뜻 이 정경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스친다. 그렇다! 작년에 스위스 리기산에서 보던 그 정경을 많이 닮았다. 루체른 호수와 그 뒤로 펼쳐지던 눈 덮힌 알프스의 고봉들. 여기와 거기 두 곳 모두가 아름답지만 나는 여기가 더 마음에 든다. 관광객과 인공적인 요소를 피할 수 없던 리기산에 비해 여기는 이처럼 단지 고요한 대자연만 있을 뿐이다.
Opal Hills의 능선을 따라 하산 시작. 우리가 올라 왔던 숲길이며 meadow길이 저 멀리 아래로 보인다.
산을 다 내려와 Maligne 호숫가로 가 본다. 여기에서 호수 저쪽끝까지가 거의 15마일이나 된다는 광활한 산중호수다. 뒷배경이 되는 고산들과 멋떨어지게 어우러지는 이 호수. 내 기억속에 오래 남게 될 또 한 폭의 자연의 모습이다.
Jasper에서도 더할나위 없는 흡족한 산행들을 마쳤다. 오늘은 다시 Lake Louise로 돌아간다. 본래는 Jasper 가까이에 있는 Mt Robson (Berg Lake Trail)에 가서 backpacking을 한 후 거기서 바로 Vancouver쪽으로 빠질 계획이었지만 기온도 뚝 떨어졌고 길동무의 발목도 아직 불편하다. 아쉽지만 Mt Robson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좀 쌀쌀하기는 해도 화창한 날씨. Icefields Parkway로 들어서니 며칠 전 비오는 날에 감추어져 있던 많은 풍경들이 선명하게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
Jasper NP를 대표하는 고봉 Edith Cavell (3367 m) 꼭지의 구름놀이를 한참동안 재미있게 쳐다본다. 다시 만나기로 작별인사를 하고..
Jasper에서 Icefields Parkway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산세가 웅장해 진다. 끝을 모르는 빽빽한 나무숲도 인상적이다.
Endless Chain Ridge. 같은 모양의 작은 산조각들을 끝도 없이 이어 놓은 것 같은 재미있는 구간.
Icefields Parkway라는 길이름을 실감나게 해 주는 멋있는 풍광들이 갈수록 연도에 펼쳐진다.
두터운 빙하를 머리에 가득 이고 있는 거대한 암벽산들.
잘 조형된 Castle처럼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뽐내는 암벽산들. 모두 멋있다.
Icefields Parkway의 꽃이라 할 수 있는 Columbia Icefield에 도착했다. 지난 번 여기 왔을 때 설상버스 투어를 하면서 너무 싱거워했던 기억에 이번에는 빙원을 한 2 마일쯤 마냥 걸었다. 빙원 입구에 좀 무시무시한 사진들과 함께 crevasse를 경고하는 팻말들이 서 있었지만 걷는 동안 위험한 곳은 없어 보인다. 역시 걷는 것은 차를 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각과 재미를 준다.
Columbia Icefield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오면 Parker Ridge Trail이 있다. 왕복 4마일 남짓한 짧은 산행코스지만 멋진 view가 있는 곳.
구불구불한 switchback을 따라 올라갈수록 주변 경관들이 선명하고 가깝게 다가오고.
이윽고 Trail이 산능선을 넘어서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거대한 Saskatchewan Glacier의 장관이 우리를 또 빵 터지게 한다.
한반도 모양을 닮은 듯한 이 빙하에 특별한 친근감을 느끼며 우리는 오래도록 이처럼 앉아 있었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물빛이 곱고 아담하게 생긴 Mistaya lake를 감상하고..
마침내 Canadian Rockies에서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Peyto Lake에 이른다. 참으로 호수빛깔이 곱다. 사람을 뇌살시킬 것만 같은 이 신비스러운 blue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갈 길이 아직 멀건만 Peyto Lake를 금방 떠날 수가 없다. 호수곁으로 나 있는 작은 trail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다. 떠나면서 Peyto의 마지막 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오늘 우리의 Icefields Parkway 투어에서 마지막 관망 포인트인 Bow Lake에 이르렀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 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인 Lake Louise도 이제 여기서 그리 멀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