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날짜 이틀 전에 모모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 산행에는 비가 내릴 것 같다는 소식이다. 친절한 새댁님으로부터 일기예보를 전해 받은 걱정스러운 음성이다. 본인이 올린 산행지에 바위가 많으니 애정이 어린 걱정이었으리라... 구월 중순에 비가 온다는 믿기지 않는 예보에 아침 신문을 뒤져보니 검은 구름에 빗방울로 표시 되었다. 하지만 일기예보는 셀 수 없이 지나간 나의 9월달의 경험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산행안내를 보니 오기로 한 팬더님이 사정상 결석이다. 단 둘 만의 산행이다. 어김없이 산행 하는 날은 하늘을 쳐다 보게된다. 이런 날을 여우의 날씨라던가 간간이 햇살을 비추면서도 흐린 날씨가 비님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 전 Castle Rock을 가려고 했는데, 화창한 날에 많은 사람과 주차할 자리를 못 찾아 지나친 적이 있어 오늘은 오붓함을 넘어 한적한 산행이 되리라 생각하며 산길을 오른다. 이 길은 curve가 많고 가운데 yellow line도 있지 않아서 운전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얼마후, 작은 차 한 대가 쏜살같이 내려오며 기우뚱하며 나의 차를 비켜간다. 성급히 누른다고 horn을 눌러 보지만 나는 항상 한발 늦어진다. 내가 순발력이 없는 건지, 그렇다면 어떤 사람처럼 미국 욕을 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한국욕 이라도 해야 했는데 나는 항상 늦으며 마음속으로만 삭여야 하니 이런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드디어 마음을 가라앉히며 도착하였다. 곧이어 낯익은 차가 옆으로 들어선다. 우리 흰님 한 분이 둘은 외롭다고 나와 주시니 고맙게도 3명이 출발이다. 사실 부부만의 산행은 뭔가 부족 하다고 생각하는데 말동무가 있으니 더없이 반갑다. 세 식구의 단출한 산행은 적적하고도 잠에서 덜 깬 듯한 나무, 숲과 함께 내리막길을 걸어간다. 이곳은 다섯 번 째쯤의 산행이지만 나름대로 좋아하는 곳이다. 정상에 있는 정자는 내가 뛰어놀던 파고다 공원 안의 정자와 많이 닮은 것이 친근감을 받는다. 또 오르면서 쇠줄을 잡고 내려다보는 안개에 가린 특이한 경치가 좋았다. 맑은 날이었으면 먼 곳의 바다도 보일 텐데... 정상에 거의 다 왔을 즈음에는 80은 넘어 뵈는 신사복에 중절모를 쓴 백인 할아버지와 굿 모닝도 했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이제 마지막 오름길이다. 가는 중에 새끼 노루도 보게 되었는데 사람이나 동물에게는 어리다는 것은 귀엽다는 관념이 있어서인지 산에서 종종 마주치는 새끼 노루는 언제 보아도 반갑다. 다른 때는 이쯤이면 더웁기도하고 숨도 차련만 오늘은 산을 오르기에는 최적의 기온이다. 마지막 오름길의 발걸음은 푹신히 밟히는 낙엽의 소리와 함께 세상의 부러움이 없는듯하다.
가까이 정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잠시 한숨 돌리며, 정자 가운데에 앉아서 간단한 점심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분과의 진짜점심은 산행후에 하기로하고, 가져온 점심의 절반으로 허기를 채웠다. 바같 한편에 있는 두 개의 식탁은 오랜 만 이라고 손짓을 하는 듯하다. 항상 이곳에서 반갑게 맞이하던 식탁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흰님들의 웃음과 쉼터를 제공해준 식탁에 정감이 간다. 그들은 비가 오나 햇빛이 비추나 늘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며, 미래의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그 무엇이 됐든 간에 충실히 보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설사 나쁜 곳에 쓰여진다 해도 만든 사람은 인간이 아니었던가.
식후, 아직 비가 내릴 낌새는 없지만, 쉬엄쉬엄 내려가기로 하고 곧 염소 바위에 다다른다. 오늘은 웬일인지 염소 목 부분에 쇠줄이 여러겹 둘러있다. 혹시 떨어질 수도 있어서 안전관계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할 하산길이다. 서너 군데를 엉금엉금 내려오니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다행히 이제야 비가 내린다. 적당히 비를 맞으며 걷는 산길도 오랜만이다. 나무가 없는 황량한 길이라면 옷이 흠뻑 젖을 것도 같은데, 일단은 잎사귀에 떨어지고 옷에 떨어지니 그리 불편하지가 않다. 저기서 한 가족이 오르는 듯싶다 아빠가 한살이나 됨직한 아이를 가슴에 메고 오르는 것이 왠지 불안하기도 하건만 그들은 즐거운 모습이다. 어린아이는 옹알거리고 벌거벗은 귀여운 다리는 추우련만 이곳 사람들은 상관을 않으니 부전자전이다. 아마도 한국분 같으면 이슬비라도 즉시 하산하였으리라...
잠시 후부터는 제법 빗줄기가 굵어진다. 빠른 걸음으로 40분 만에 도착한 주차장에서 비도오는 우울한 날의 식사는 염소 전골로 하기로 하고 싼따꿀라라에 있는 식당에 들어서니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뿌려댄다.
오랜만에 본 흰님 덕분에 비와 함께 염소바위, 염소전골, 그리고 한잔의 쇠주와 함께 염소같은 기분에 취해본다.
만약 내가 집에 있었다면, 오늘 하루가 이보다 더 좋았을 리 없었다는 것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