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님, 길동무와 함께 네팔에 있는 안나푸르나 서킷 (Annapurna Circuit) 트레킹을 다녀 왔습니다. 안나푸르나 서킷은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산군을 중심으로 그들을 한 바퀴 휘감아 도는 세계 최상급 트레킹 코스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들도 이번에 실제로 그곳을 트레킹 하면서 역시 최고의 코스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정말 잘 왔다는 소회를 많이 가졌었습니다. 누구든 일생에서 한번은 꼭 가 볼만한 곳이라는 것을, 아니 꼭 가 보시도록 주저없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트레킹 동안 저희들이 이곳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몇 장의 스마트폰 사진과 몇 줄의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더라도 그 가슴 벅찼던 감동들과 진면목들을 손상시키고 말 것이라는 염려가 앞섭니다. 모든 것을 그냥 가슴속에 여실히 놓아 두는 것이 낫다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몇 마디 되는대로 끄적여 보려 합니다. 단편적일 수 밖에는 없더라도 다만 수박 겉핥기식의 소개라도 해 드리고 싶은 의향에서 입니다.
(0(00) 안나푸르나 서킷(한국에서는 보통 “안나푸르나 라운딩” 이라고 부릅니다) 의 개괄적인 약도입니다. 붉은 선이 저희가 이번에 트레킹한 코스이고, 숫자와 더불어 표시된 작은 검정색 삼각형들은 숙박지들입니다. 붉은 선 위에 검정색 선으로 덧칠된 것은 도보 대신 지프차로 이동한 구간들입니다. 그리고 노란선 구간은 두루님만 다녀오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ABC) 트레킹 루트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8850m)를 비롯하여 8000m가 넘는 고봉이 모두 14개가 있습니다. 이들을 흔히 14좌 라고 부르는데 모두 히말라야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해 있습니다.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을 하는 동안에는 14좌중 안나푸르나 1봉 (8092m),
마나슬루 (8165m) 그리고 다울라기리 (8169m) 의 3좌와 그들 주변의 수많은 6000m, 7000m 급 산군들을 만나게 됩니다.
(0(01) 11월6일 네팔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국제공항 (Tribhuva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 네팔 유일의 국제공항이지만 한국의 지방공항 정도의 자그마한 규모. 반면, 많은 국제선들이 드나들어 상당히 번잡했다. 입국 비자 받는 길고 지루한 줄에서 먼저 도착한 두루님과 해후.
(0(02) 공항에서 시내 호텔로 들어가며 보는 카트만두의 한 단면. 일자리를 찾아 이곳 수도로 밀집한 인구, 신호등이 전혀 없는 교통과 무질서한 어지러움, 금방 감지할 수 있는 심한 공해와 매연…트레킹 준비 과정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실제로 대하니 팍팍한 이곳 삶의 현실이 안스러워 마음이 답답해졌다.
(((03) 카트만두의 타멜지역.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온 트레커들에 의해 형성된 거리이다. 네팔 트레킹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이 여기에 밀집해 있다. 트레킹회사, 여행사, 환전소, 장비점, 선물가게, 생필품점, 식당, 호텔…네팔 트레킹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
(0(04) 타멜 거리에서 트레킹을 위한 마지막 준비와 점검을 하며 첫날을 묵은 후 이튿날 아침 이번 트레킹의 시작점인 베시사하르 (Besi Sahar)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까지는 이런 미니버스가 수시로 다니는데 문제 없이 가면 (고장, 도로정체등 문제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다) 6-7시간 걸린다.
(0(05) 중간 지점에서 하차하여 점심식사. 처음으로 네팔의 일상식인 “달밧”을 맛보다. 앞으로 네팔에 있는 동안 자주 대하게 될 음식인데 맛이 괜찮아 저으기 안심..
(0(06) 베시사하르 도착. 요즈음은 여기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트레킹 트레일이 자동차 도로로 많이 대체되었고 공사중인 곳이 많아 먼지 마시며 걷기 보다는 보통 버스나 지프를 이용해 불불레 (Bhulbhule) 마을이나 더 위로 올라가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우리도 위 사진의 지프를 전세내어 이동.
(0(07) 지프로 이동중 나디 (Ngadi) 에 있는 이 예쁜 정원을 가진 롯지가 눈에 띄었다. 지프이동은 여기까지. 롯지 바로 옆으로 마르상디강이 우렁차게 흐르는 이곳에서 편안한 기분으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
1((08) 11월 8일 아침. 롯지를 떠나기전 이번 트레킹 팀원 전원이 출발기념으로 한 카트. 두루님 옆에 서 있는 청년이 우리와 함께할 가이드겸 포터인 쿨(Kul), 그리고 그 옆이 포터인 부번 (Bhuwan). 우리의 트레킹을 많이 도와준 순박하고 착한 네팔 청년들.
(0(09) 맑은 날씨가 트레킹 첫날 아침을 상쾌하게 했다. 아직은 고도가 낮은 곳이라 기온도 비교적 온화하고 주변 산록도 푸르러 히말라야라기보다는 낯설지 않은 동네 산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
(((10)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그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마을 바훈단다 (Bahundanda) 의 모습이 나타난다. 마을의 세팅이 무지 아담하고 평화스러웠다.
(1(11) 마을길 곁에 자리잡은 조그만 방앗간. 골동품이 아니라 이곳 마을 사람들이 생활속에서 늘 사용하고 있는 필수의 도구들이다. 시계 바늘이 한참을 거꾸로 돌아간다. 아련한 기억속에서 일어나는 정겨움을 맛보다.
(1(12) 마을 어느 집앞 길가의 강아지를 닮은 귀여운 애기 염소들. 이곳 사람들은 가축들과 생활 공간을 많이 공유하며 살아간다. 여유 공간이 적은 산악지방이라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냥 더불어 같이 살아간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인간중심의 세상살이에 길들여진 나의 의식구조에 어떤 충격이 오다.
(1(13) 한길에 드러누워 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잠자고 있는 가축들의 모습 또한 네팔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정경이다. “누구네의 개” 가 아닌 그냥 마을에서 같이 사는 개라는 관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네팔사람 어느 누구도 이들의 휴식과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줄에 목이 묶인 개를 네팔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1(14) 언덕마을 바훈단다 (‘단다’는 네팔어로 ‘언덕’이라는 뜻) 에서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어귀. 여기에서 내려다 보는 마르상디강과 계곡이 참 보기 좋았다.
(1(15) 언덕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폭포. 전체적인 규모로는 아마 요세미티 폭포를 능가할 것 같다. 그러나 이 폭포는 이름조차 없다. 앞으로 수없이 만나게 되는 이러한 무명의 시원스런 폭포 구경 또한 이곳 트레킹이 주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
(1(16) 마르상디강의 깊고 가파른 계곡 저멀리 한 줌의 가옥들이 언저리에 간신히 놓여져 있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자갓 (Jagat) 이라는 마을이다. 참으로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인상적인 풍경.
(1(17) 자갓 마을 가장 끄트머리 롯지에 들었다. 롯지 방에서 마르상디강의 수려한 풍경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강으로 합류하는 폭포수 소리가 정겹던 곳.
(1(18) 우리에게 맛난 음식을 만들어준 멋쟁이 롯지 주방장. 여러가지 친절함이 고마와 떠나며 같이 사진 한 장. 네팔 트레킹은 자연 경관도 대단하지만 현지의 주민과 문화와도 가깝게 교류하고 교감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외국에서 트레킹하러 온 낯선 여행객일 수 밖에 없는 나에게 정다움과 더불어 푸근함을 가지게 해 주던 부분. 네팔 트레킹을 귀하고 멋지게 만드는 참으로 소중한 요소중의 하나였다.
(1(19) 오늘도 싱그러운 날씨. 이제 겨우 하루를 걸어 왔지만 온전히 만끽한 어제 하루의 길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풍광과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어느새 제법 친숙해진 마르상디 강변을 따라 오늘도 기대속의 발걸음을 내딛다.
(2(20) 곧 만나게 되는 참체 (Chyamche) 로 가는 오르막 계단길. 그러나 무거운 큰 배낭은 우리의 포터들이 짊어지고 우리는 daypack 정도만 메고 간다. 백패킹할 때마다 낑낑대며 고생해온 길동무는 이런 편안함에 넘 신이 났다. 게다가 식사도 모두 롯지들이 해결해 주니 네팔 트레킹은 그야말로 호사스럽다.
(2(22) 또 하나의 멋진 폭포. 역시 무명의 폭포이지만 그 규모는 대단.
(2(23) 높은 암벽 협곡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참체(Chyamche) 마을을 지난다.
(2(24) 마르상디강 협곡에는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조그만 틈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벽형 지형이 허다하다. 네팔의 수많은 현수교는 이런 지형을 극복하여 사람과 동물들이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수단이다. 대부분 현수교들은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하다. 나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팔다리가 후덜거리지만 길동무나 두루님처럼 고소희열증이 있는 사람들은 즐거움 그 자체다. 안 그래도 출렁거리는 다리를 더 흔들면서 다닌다.
(25) 한참의 외딴 오르막길. 좀 쉬고 싶고 인가가 그리워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주는 찻집들. 이 또한 네팔 트레킹의 묘미. 우리의 단골 차 메뉴는 단연 생강차였다. 생강차가 고소증 예방에 좋다는 그 이유 때문에..
(2(26) 안나푸르나 서킷은 지금은 자동차길이 아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 그러나 자동차길이라고는 해도 대부분 구간이 지프가 겨우 다닐 수 있는 1차선 비포장 도로이고, 도저히 길을 낼 수 없을 것 같은 수십수백길 낭떠러지위로 길이 나 있다. 지프를 타려면 목숨을 걸어 놓고 타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자동차길 때문에 본래의 트레킹 루트가 많이 변형된 것은 아주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트레커들을 위한 대체된 도보 구간들이 이를 보완해 주고 있다.
(2(27) 참체에서 시작한 오르막의 정점에 이르면 강변 마을 딸 (Tal) 의 그림 같은 정경이 지금까지의 노고를 싸악 잊게해 준다. 딸마을부터는 행정구역도 바뀌지만 주민 문화도 확연히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힌두 중심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티벳 불교 문화가 그 주류를 이룬다.
(2(28) 이제부터는 티벳 불교의 상징인 마니차와 경전 문구가 새겨진 돌조각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불심은 깊지만 글을 배우지 못해 불경을 읽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안 되었다는 마니차. 마니차를 돌리면 그로 인해 생기는 氣가 불경을 다 읽어주어 (본래는 마니차 속에 두루말이 불경을 넣어 두었다고 한다) 누구나 그 뜻을 알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도 마니차를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정성들여 하나 하나 돌렸다.
(2(29) 감자 요리가 참 맛있던 딸마을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마어마한 짐을 지고 또 손에까지 한 묶음을 든 방물장수가 나타나 식당 앞에 짐을 내려 놓고 쉬었다. 길동무가 경탄을 하며 짐지는 흉내를 내 보려하지만 물론 꿈쩍할 리가 없고.. 이분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 산길을 몇 달씩 누비고 다닌다니…
(3(30) 포근한 기분을 많이 주는 딸마을에도 아름다운 폭포가 떨어지며 그 운치를 더한다.
(3(31) 뒤돌아 본 딸마을의 여유로운 정경. 협곡의 암벽 벼랑 틈바구니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많은 마을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딸’은 네팔말로 ‘호수’라는 뜻이다. 오래전에는 여기가 호수였단다.
(3(32) 다시 언덕길을 오르며 내려다 본 강가에 문양이 가득하다. 신앙심 깊은 이곳 사람들이 강변의 돌을 모아 여러가지 문양을 만들어 놓았다.
(3(33) 딸마을에서 완만하게 흐르던 마르상디강은 다시 급류의 계곡이 되고 우리는 협곡벽에 붙은 언덕길을 따라 오른다.
(3(34) 거대한 암벽 아래를 깨어 겨우 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 여기저기에 있다. 네팔의 트레킹 루트들은 John Muir
Trail 같은 전적으로 산행자들을 위한 트레일이 아니다. 네팔인들이 유구한 세월동안 만들어 놓은 그들의 생활로를 트레커들이 빌려서 걷는 것이다. 삶을 위해 험난한 자연 환경을 넘어 마을과 마을을 이어 놓은 네팔사람들의 노고에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길들이 참 많이 있다.
(3(36)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내려와 강으로 떨어지는 한 줄기 폭포.
(3(37) 오늘의 목적지 다라파니 (Dharapani)가 가까와 온다. 다라파니는 안나푸르나 서킷과 근간에 점차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마나슬루 서킷이 갈라지는 곳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히말라야 설산들을 만나게 된다. 마음 가득한 설레임으로 다라파니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3(38) 이튿날 다라파니를 벗어나자 수량 풍부한 개울물이 길 위를 뒤덮으며 흐르고 있다. 네팔의 11월은 건기라 비가 자주 내리지는 않지만 산록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폭포와 개울들의 수량은 대단하다. 우기때의 잦은 비를 고산들이 눈으로 품었다가 이렇게 시종 흘려 보내는 것이다. 히말라야 고산 만년설의 규모가 엄청남을 말해준다.
(3(39) 부지런히 길을 오르자 숨을 탁 멎게하는 장관이 오른쪽 뒷편 하늘에 나타났다. 드디어 마나슬루 산군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는 고함을 질러댔다. 단지 탄성만으로는 이 감동, 놀라움, 그리고 기쁨을 표현하기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 이것이 히말라야로구나. 우리가 이것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구나…
(4(40) 마나슬루를 구경하느라 아예 뒷걸음질로 오르막을 올라 왔다. 탄쵹이라는 조그마한 마을 어귀에 네팔식 오두막 찻집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이 정도의 view 가 있고 길손들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길목 위치라면 벌써 잘 꾸미고 잘 차려진 찻집이 돈벌이에 나서지 않았을까.. 이 오두막 찻집이 더없이 순박하고 귀해 보였다.
(4(41) 이 오두막 찻집 주인 아주머니는 “셀로띠”라는 특별한 간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즉석에서 반죽을 해서 도너스처럼 기름에 튀겨내는데 바싹바싹한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앞으로 셀로띠는 만날 때마다 사 먹자고 포터들에게 특별 부탁을 해 두었건만 트레킹을 마치고 네팔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네팔 축제 음식이라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듯. 길동무는 아직 몹시 아쉬워 한다. “셀로띠 먹으러 네팔에 꼭 다시 갈거야!”
(4(42)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나슬루 산군. 촌사람들이 히말라야의 모습에 본격적으로 뿅가기 시작한 날. 주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만면의 미소로 나온다.
(4(43) 오늘의 목적지는 마낭 District의 행정 중심지인 차메(Chame). 저멀리 아스라이 차메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마을 뒤로 우뚝 치솟은 일련이 설산들이 또 우리를 압도한다. 안나푸르나 2 (7937m) 와 람중 히말 (6983m) 등의 안나푸르나 산군이다. 드디어 안나푸르나도 오늘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4(44) 어스럼할 무렵 차메의 한 롯지에 들었다. 짐을 풀고 창밖을 보니 눈부신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저무는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마나슬루. 오늘 트레킹의 큰 감흥과 감동이 이제 황홀함으로 물들여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