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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 #4

by 산동무 posted Jan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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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1 20 트레킹 14일차. 묵티나트에서는 다울라기리가 보이는 롯지를 찾아 하루를 묵었는데 시설과 음식까지 아주 훌륭했다. 닷새가 넘도록 하지 못했던 샤워를 꼽빼기로 하고, 푹신한 침대에 맛있는 식사, 그리고 세탁 서비스까지 있어 밀린 빨래를 모두 맡겼다. 그동안 열씨미 도를 닦으며 걸었건만 여건만 주어지면 즉각 속물로 돌아오는 근성... 그래도 틸리쵸 호수와 쏘롱라를 넘으며 누적되어   피로가 많이 풀려 신선한 기분과 에너지로 다시 남은 일정을 시작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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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묵티나트를 떠나기전 네팔의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라는 묵티나트 사원을 둘러보러 올라 갔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사원은 하얀 담장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네팔 곳곳에서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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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108 성수”. 동물 입모양의 108 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에 손을 씻으면 죄와 업이 소멸된단다. 우리의 가이드 Kul  한바퀴 휘이 돌며 얼음 같이 물을 손에 맞았다. 길동무와 나는 아래쪽에 붙어 있는 고드름을 보고는… “우리는 마… 물을 맞는 대신… 기냥 마시자.. 마셔도 효과는 있겠나…” 성수는 마셔서는 되는 모양이다. 우리의 죄와 업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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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곳이 성지가 하나의 요소는 사원 안의 조람키 곰파에 있는 “불멸의 불꽃”이다.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불이지만 오래전 사람들에게는 “창조의 신이 나타난 것”으로 여길 만큼 경외스러운 것이었나 보다. 네팔 사람들은 불꽃이 속세의 죄업을 태워준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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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사원 안에는 다울라기리가 보이는 트인 언덕이 있다. 석탑을 위시해서 수많은 작은 돌탑들이 쌓여져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다울라기리를 향해 경배를 드리는 곳일게다. 묵티나트 성지는 울타리안에 불교, 힌두교…민간 신앙까지의 다양한 믿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종족이 함께 살아 가는 네팔. 배타적이지 않은 네팔 사람들의 어우러진 삶을 여기서도 인상 깊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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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사원을 바퀴 돌아나와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 마니차가 있었다. 나의 깊숙한 마음이 뭔가를 염원하며 마니차 하나 하나를 정성 들여 돌리게 한다. 그것은 아마 물로 씻고 불로 태워도 없어지지 않는 질긴 업보가 언젠가는 깨끗하게 소멸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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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사원 널찍한 공터에 군인들이 나와 헬기장을 만들고 있었다. 지난 폭설 사고에 따른 후속 조치이다. 사고 네팔의 미흡한 안전 시스템과 사고 수습 대책은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사고가 크게 나야 정신을 차리는 풍토. 네팔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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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미국이나 한국 같으면 이런 헬기장 정도는 하루만에라도 뚝딱 만들 있을텐데 네팔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워낙 재원이 부족한데다가 그나마 조달되는 공사 자재를 모두 이렇게 당나귀나 노새들이 날라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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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오늘 우리는 카끄베니 (Kagbeni) 까지는 도보로 그리고 카끄베니에서 좀솜 (Jomsom) 까지는 짚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길을 걸어 내려가면서도 많은 성지 순례자들을 만났다. 오래된 요새 마을인 자르곳 (Jharkot) 내려다 보이는 쉼터에서 만난 젊은 순례자들. 머나먼 길을 야영하면서 걸어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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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홀로 노숙을 하며 성지를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 추운 언덕 땅바닥에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고생을 하며 성지로 가고 있을까… 나름 힘들고 불편한 트레킹도 종국에는 언제나 나에게 자유스러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어쩌면 사람은 내가 비교조차 없는 희열과 안락함을 그의 성지 순례에서 얻어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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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르곳 마을을 지나 급해지는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한참 동안 뒤를 돌아 봤다이제 헤어져야 하는 Yakwakang Thorong Peak, 그리고 사이에 있을 쏘롱라 패스... 바로 어제 거기를 넘어 왔건만 오랜 시간이 지난 같다. 거기와 여기의 환경이 그만큼 다른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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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오늘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네팔의 무스탕 지역이다. 메마른 토질과 황량한 주변 분위기가 마치 네바다나 아리조나의 사막지대를 연상시킨다. 드디어 칼리 간다키 (Kali Gandaki Nadi) 강가에 자리잡은 아담한 마을 카끄베니가 내려다 보인다. 카끄베니는 “은둔의 왕국” 이라 불리우는 Upper 무스탕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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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카끄베니 마을에서 보는 Upper 무스탕 입구. 지금은 네팔의 영토가 Upper 무스탕은 티벳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무스탕 왕국의 땅이다. 유구한 세월 동안 히말라야의 깊은 오지에 숨겨져 은둔의 . 오랜간 외국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해 오다가 1992년부터 트레커들에게 개방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특별 허가가 필요하고 사람에 최소 미화 700 (네팔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나 되는 트레킹 퍼밋을 받아야 한다. 언제 가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발치에서  초입이나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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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Upper 무스탕이 아니더라도 무스탕 지역은 전통적인 티벳 문화를 많이 보존하고 있다. 카끄베니에도 티벳 불교의 승려 학교가 있어 둘러 보았다. 50-60명쯤 되는 어린 학승들이 티벳에서처럼 승려가 되기 위해 여기서 숙식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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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카끄베니에서 좀솜까지의 길은 강폭이 무쟈게 넓은 칼리 간다키 강을 따라 간다. 오후부터 불기 시작하는 이곳 강변 바람은 엄청나다. 게다가 트레킹 루트가 짚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와 거의 중복되어 있어 트레커들이 걸으면 강풍에 뒤범벅이 흙먼지를 뒤집어 쓰기 일쑤. 때문에 요즘은 대다수 트레커들이 구간을 자동차로 이동한다. 우리도 카끄베니에서 짚차 대를 전세내어 좀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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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안나 서킷에서 자동차 타는 것을 보통 비포장 도로에서 자동차 타는 것처럼 여기면 오산이다. 길바닥이 장난이 아니다 보니 말이 자동차지 실제로는 로데오 경기장에서 풀쩍 풀쩍 뛰는 말이나 소를 탄다고 하는 것이 가깝다. 마을에 들어와서야 도로가 그나마 찻길 같아 진다. ~ 어쨋든 우리는 머리를 수도 없이 짚차 천정에 쥐어 박히며 가까스로 좀솜에 도착해 로데오 같은 짚차에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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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무스탕 지역의 중심인 좀솜은 비행장까지 갖추고 있는 안나 서킷에서 가장 마을이다. 많은 안나 서킷 트레커들은 쏘롱라를 넘은 여기에서 트레킹을 종료하고 비행기편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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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리는 좀솜 비행장에서 멀지 않은 롯지에 들었다. 우리를 일본사람으로 착각한 롯지 주인장이 일본이라면 300불은 받을 거라는 깨끗하고 전망 좋은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창문으로 준수하게 생긴 닐기리 북봉 (Nilgiri North, 7061m) 그리고 우리가 틸리쵸 호수에 갔을 만났던 Tilicho Peak (7134m, 사진의 왼쪽 봉우리) 빤히 쳐다 보인다. 다시 만나는 기쁨과 함께 틸리쵸 호수에서의 감회가 마음속에서 진하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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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다음날 아침 방문을 여니 아홉살 먹은 앳된 꼬마가 귀여운 아침 인사를 건넨다. 네팔에는 이처럼 어릴 때부터 학교도 가고 남의 집에 와서 잡일을 하며 더부살이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아이의 나이 이었을 무렵 한국에서도 흔히 있었던 풍경이다. 아이가 나이쯤 되었을 네팔은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런지… 척박한 자연 환경속에서 물질적으로 풍부하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 어려울 같다. 다만 이웃 나라 부탄처럼 비록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삶이 행복한 그런 나라로 되어 있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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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오늘은 좀솜 (2720m)에서 온천 마을인 따또파니 (Tatopani, 1190m)까지의 일정. 우선 버스를 타고 깔로파니 (Kalopani) 까지 내려 가기로 했다. 깔로파니는 안나 서킷에서 안나푸르나 1 (8091m) 있는 유일한 마을이다. 근데 대부분 네팔의 버스들은 출발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 손님들이 버스를 꽉꽉 채울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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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경찰과 공무원들로 구성된 무리의 행렬을 구경했다. 두어 사람이면 충분히 처리가 같은 길바닥 쓰레기 청소 행사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조그만 행사 플랭카드를 따라 하릴없이 걷기만 하고 카메라를 너댓명의 경찰관들은 행렬의 사진 찍기에만 바쁘다. 네팔 정부 관원들이 보여주는 내용 없는 실적주의… 이런 관원들을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과연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 네팔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이 발짝 멀어 보여 마음을 많이 씁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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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찻길을 빼곡히 메운 양떼로 인해 버스가 섰다. 양지기가 양들을 한쪽을 몰아 길을 틔우는 동안 아무도 한마디의 불평없이 묵묵히 기다려 준다. 늘상 있는 일이라 습관이 되기도 했겠지만 천천히 그리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의 순박한 여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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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칼리 간다키 강의 넓은 강폭이 다시 좁아져 세찬 계곡류가 되어 흐를 즈음 깔로파니에 도착했다. 마을은 안나 서킷에서 안나푸르나 1봉을 있는 유일한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설산으로 아담하게 둘러 싸여 있어 “네팔의 스위스”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2-3 시간쯤 걸리는 가사 (Ghasa) 까지 걷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가사까지의 안나 서킷 정규 트레일은 찻길과 중복되지만 우리는 찻길을 떠나 어느 책에서 읽은 샛길을 찾아 들어섰다. 우선 북쪽의 Tukuche Peak (6920m) 배경으로 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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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우리가 걷는 샛길은 우리만이 독차지한 완전 대박이었다. 찻길의 먼지를 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호젓한 송림길, 제주 올레길 같은 감미로운 돌담길… 그리고 마침내 장관… “풍요의 여신”이라는 안나푸르나 1 (8091m, 사진 오른쪽의 3 봉중 가장 왼쪽 봉우리) 만난 것이다. 왼쪽의 닐기리봉 (6839m) 조화를 이루며 보여 주는 안나 자태는 참으로 대단했고 아름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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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우리가 안나 1 멋진 모습을 온전히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신은 구름뒤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안나 서킷 (특히 쏘롱라 이후) 고산들은 맑은 날씨에도 정오 무렵부터는 구름으로 얼굴을 가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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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꿈같은 트레일이 베풀어 준 한아름의 즐거움과 함께 무스탕 지역의 마지막 마을인 가사에 당도했다. 가사를 벗어나면 먀그디 (Myagdi) 지역이 되는데 지금까지의 티벳 문화권에서 다시 힌두 문화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근데, 가사 버스 정류장에 버스는 많이 주차되어 있었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인 따또파니 가는 버스는 이상 없단다. 이유는 하나… 승객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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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대략 난감하고 있던 우리 앞에 따또파니에서 올라온 짚차 대가 멈춰 섰다. ~ 6-7인승쯤 되는 짚차에서 네팔 승객들이 한 20명쯤 내린다. 그것도 대부분 하나 둘씩을 들고.. 완전 요술 상자 였다. 우리는 요술 상자를 바로 전세 내어 따또파니로 향했다. 따또파니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로데오 말을 타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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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로데오 짚차를 타고 좁고 험하고 아찔한 길을 오는 동안 우리는 하느님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신과 성인들을 동원했다. 그렇게 따또파니에 도착하니 젊은 운전기사가 그냥 생명의 은인으로 여겨지더라는… 포옹을 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그리고 그에게 Big Tip 날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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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따또파니 (1190m) 안나 서킷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지점이다. 아침에 떠난 좀솜은 아직 추운 겨울이었지만 여기는 따뜻한 봄날씨다. 고소에서는 무적이어도 추위에는 한없이 약한 아지매들한테도 봄날이 도래했다. 널찍한 정원에 온갖 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롯지에서 우아하게 맨발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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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따또파니는 네팔 말로 ‘뜨거운’ (따또) ‘물' (파) 이라는 말이다. 마을에는 온천수가 나오기에 마을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 저녁식사후 우리는 모두 강가에 있는 노천 온천탕으로 내려가 몸을 ~ 담구었다. 얼마나 그립던 뜨뜻한 물이냐… 산중에서는 그렇게 귀하던 뜨거운 물이 이렇게 지천으로 있을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따또파니의 온천은 그야말로 우리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를 말끔하게 재충전 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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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따또파니에서 하루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았지만 빠듯해진 일정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떠나는 아침 아쉬움을 달래며 롯지의 정원을 여기저기 거닐다가 하나의 선경을 보았다. 계곡속의 첩첩 봉우리와 구름 위로 솟아 있는 닐기리봉… 나는 한참 멍해져 있었다. 멀리에 있어야 , 또한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산들에 분명 가려져 있어야 봉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저렇게 보일 있단 말인가... 이는 틀림없이 신선이 만든 작품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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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따또파니를 떠나 강을 따라 내려오면 따또파니, 고레파니, 베니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대다수의 안나 서킷 트레커들은 따또파니에서 트레킹을 마치고 버스나 짚차편으로 베니를 경유해 당일로 포카라 (Pokhara, 네팔 2 도시) 나간다. 그러나 나는 안나 서킷을 계획하면서 시간은 4-5일이 걸리지만 이른바 “안나 전망대” 들을 경유하는 길로 코스를 잡았다. 첫번째가 고레파니 마을 옆에 있는 유명한 푼힐 (Poon Hill) 전망대이다. 따또파니 (1190m)에서 푼힐 (3193m) 까지는 다시 2000m (6500 ft) 이상 고도를 올려야 한다.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고레파니 마을 (2860m) 향해 계단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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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오늘 하루 동안 이런 계단길로 5500 ft 올라가야 한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난 밤의 온천탕이 사무친다. ~ 사지가 나긋나긋해지는 얼마나 편안하던고... 근데 이건 고역…  전망대란게 경치 밖에 있나… 며칠 온천이나 하고 돌아가는 낫지 않나… 그래 봤자 안나푸르나의 매력과 마력은 발걸음을 하나 하나 계단위로 올려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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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한참을 올라왔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때는 오로지 밖에 보이지 않아서 산만 오를 알았다. 아담하고 예쁜 산간 마을들이 이어지고 앞산에 가렸던 고봉들도 모습들을 드러낸다. 다만 오늘 구간에서 멋떨어지게 있다는 다울라기리 1 (8167m) 구름 뒤에 숨어서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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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가라 (Ghara), 시카 (Shikha), 치트레 (Chitre) 연도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 힌두 문화권에 속한다. 티벳 문화권 마을에서 흔하게 보던 룽다나 타르쵸, 그리고 마니차는 거의 없었다대신 이곳 마을에는 집집마다 꽃나무를 키우면서 마른 꽃들을 줄에 매달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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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그즈음이 네팔 산간 사람들의 곡물인 밀렛 (millet) 수확기인 같았다. 많은 집마당에서 마을 아낙네들이 지난날 우리나라 여인들이 다듬이질 하듯 마주 앉아 장단을 맞추어 밀렛을 타작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풍속도에서나 있는 정경이 되었지만 도리깨질과 다듬이질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정겨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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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들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는 돌계단 길에도 이곳 마을 사람들의 삶의 정취가 베어 있는 그런 정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계단길이 끝이 없다보니 저멀리 미국의 아스팔트 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한마디로 “죽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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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죽음은 계속되고 계속되었다.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네팔에는 끝없는 만리 돌계단이 있다. 가파른 네팔 산길들은 돌계단이 아니면 우기때는 유실되거나 미끄러워 사람이나 말을 비롯한 가축들의 통행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만리장성은 때의 힘과 권력의 방패막이로 만들어졌지만 네팔의 돌계단들은 유구한 세월 동안 생활과 생계를 위해 만들어졌다. 만리장성은 관광용 문화재가 되고 말았어도 네팔의 돌계단들은 오늘도 예전처럼 마을 사람들이 걷고 있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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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마침내 고레파니 마을의 환영문에 도착했다. 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제 알고… 웬걸… 여기서 마을까지는 이제는 이제는 하면서 시간도 넘게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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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고레파니 마을에서 단잠을 다음날 뜨기전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푼힐로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헤드랜턴이 오르막 돌계단을 메우고 있었다. 모두 일출속의 장관을 보기 위함이다. 푼힐에 올라 가쁜 숨을 고르고 있으니 해가 오른다. Fishtail 이라는 뜻의 영봉 마차푸차레 (Machhapuchhre, 6957m)  비롯한 고봉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푼힐 전망대의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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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푼힐 전망대에만 오려고 네팔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많은 사진 작가들이나 사진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도 부류일 것이다. 이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대자연 최고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끈기 있게 순간들을 기다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새벽 추위 정도는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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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떠오르는 햇살이 안나푸르나 산군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감탄의 환호성을 지른다. 오른쪽으로부터 마차푸차레 (6997m), 히운출리 (6441m), 안나푸르나 남봉 (7219m), 그리고 바라출리 (7647m). 이들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주류를 이루는 산들이다. (안나푸르나 1봉은 바로 뒤쪽에 있으나 바라출리와 안나 남봉에 가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산들은 저기에 그냥 말없이 솟아만 있건만 가슴에 밀려 오는 벅찬 감동과 기쁨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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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어제 우리가 따또파니에서 고레파니로 올라오는 내내 14 좌중의 하나인 다울라기리 (8167m) 구름에 가려져 있어 아쉬움이 컸었다. 푼힐에 해가 뜨자 주변 연봉들을 거느린 다울라기리의 장중한 전모도 훤하게 나타난다. ‘흰 산’ 이라는 뜻의 산은 인도의 평원에서도 우뚝 솟은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때문에 14좌중 가장 먼저 유럽인들에게 알려졌고 오랫 동안 세계 최고봉으로 간주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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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훤한 아침이 되어도 사람들은 푼힐에서 내려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고설산 경치 뿐일진대 사람들은 환한 얼굴들을 하고 경치를 보고 본다. 질리기는 커녕 오직 내려가기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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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푼힐에서 내려와 짐을 꾸려서 두번째 전망 마을인 따라파니 (Tadapani, 2630m) 향했다. 숲길 오르막을 부지런히 올라 트인 산능선에 이르자 반대편 산꼭대기로 반가운 푼힐 전망대가 보인다. 오늘 새벽녁의 즐거움이 다시 마음을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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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우리가 어제 하루 종일 돌계단을 밟으며 올라온   길고 길었던 과정도 눈에 훤히 내려다 보인다. 우리도 대단하다. 여기를 어떻게 하루만에 올라왔단 말인가… 오늘은 선명하게 보이는 뒷편의 다울라기리 산군들과 함께 풍광 또한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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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다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의 숲길이 계속되었다. 숲길 구간은 봄철이면 온갖 꽃들이 만발한다고 한다. 언젠가 봄에 다시 와서 따또파니 온천으로부터 모든 것을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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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따라파니 마을 롯지에 도착하여 친근감 있는 한국 젊은이 둘을 만났다. 친구는 안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와 푼힐로 가는 중이었고 다른 친구는 안나 베이스캠프로 들어간다는 나의 대학 후배였다. 길동무와 나보다 네팔 일정에 4-5 여유가 있는 두루님께 다른 계획보다는 내친 김에  후배와 더불어 안나 베이스캠프를 다녀오시도록 권유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 났다. 이제 내일부터는 팀이 되어 각각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별주를 잔씩 나누고 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