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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 #5 (끝)

by 산동무 posted Feb 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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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1 24. 트레킹 18일차. 따라파니도 멋있는 전망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해뜰 무렵에 일찍 일어나 혼자서 마을을 산책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근처 공터까지 올라가니 멀리 펼쳐진 봉우리들 사이로 새벽 운무가 자욱하다. 지난 어느 새벽녁에 노고단에서 바라보던 멋있던 지리산 운무의 정경이 기억으로부터 나와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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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오우~ 예… 해가 오르며 아침 햇살의 색조를 하니 운무 깔린 사방이 없이 아름다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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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건너편의 안나푸르나 산군들도 햇살을 받기 시작했다. 어제 푼힐에서 보았던  봉우리들이지만 보는 각도가 바뀌니 새롭다. 어제보다 형체가 훨씬 드러난 마차푸차레, 그리고 왼쪽 옆으로 어제는 보이지 않던 강가푸르나 (7454m) 모습도 선명하다. 강가푸르나는 우리가 틸리쵸 호수로 가기전 마낭 마을에서 만난 거대한 빙하를 품고 있던  봉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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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윽고 작별의 시간이 왔다. 두루님이 먼저 Kul 앞세우고 후배와 함께 안나 베이스 캠프로 출발했다. 서로 남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미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어 우리도 부번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부번은 영어나 한국말을 몰랐지만 이미 마음과 마음이 통해 소통에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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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나무가 빽빽한 고즈넉한 숲길로 들어섰다. 나무들이 초봄에는 모두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 꽃을 열매처럼 만발 시킨단다. 네팔하면 흔히들 만년설 덮힌 고산과 칼바람 부는 척박한 산지를 연상한다하지만 실상은 꽃구경만 하러 와도 괜찮은 곳이다꽃구경을 겸한 네팔 트레킹은 랑탕지역이 유명하다. 봄철의 랑탕 계곡에는 색색의 랄리구라스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핀다고 한다. ~ 인생은 요로콤 짧은데 네팔만 해도 데가 어찌 이리 많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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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어째 한동안 길이 편안하다 했다. 계단길이다. 그래도 아침 시간 맑고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발걸음은 그다지 힘들지 않고 자못 경쾌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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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길이 숲을 벗어나면서 다시 안나 설산들의 모습이 성큼 다가 왔다. 이른 아침 낮은 고도에  깔려 있던 운무가 차츰 윗쪽으로 이동하며 재미있는 구름 놀이들을 한다.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설산의 모습들은 하나 하나가 선경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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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한동안 구름을 거두고 훤히 나타나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의 마차푸차레는 위치며 위상이 요세미티의 Half Dome 같은 존재라 여겨졌다. Half Dome 없는 요세미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마차푸차레가 없는 안나푸르나도 아마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또한 마차푸차레는 알프스의 마테호른처럼 독보적인 멋도 겸비하고 있다. 길동무는 이미 산에 옴팍 꽂혀 있었다. 어찌 길동무 뿐이겠는가… 산을 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연스레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 네팔 사람들이 마차푸차레를 신성한 산으로 받들면서 정상 등정을 금지하고 있는가를 절로 수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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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마차푸차레를 마음껏 쳐다보면서 걷는 길은 참으로 행복했다. 길동무는 어느새 부번한테서 배운 네팔 민요 “레삼 삘리리” 그와 둘이서 흥얼거리면서 걷는다. 흥겨운 가락에 맞춘 이들의 발걸음이 가끔은 덩실덩실 춤으로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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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물론 노래와 춤은 평평한 길에서만… 어휴~ 계단길, 계단길… 그러나 이렇게 반듯한 돌계단을 쌓은 하나 하나의 손길들이 너무 고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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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렇게 우리는 세번째의 전망 마을인 간드룩 (Ghandruk, 1940m) 이르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전망 끝내주는 롯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직 점심 식사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주저 없이 그곳으로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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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확트인 널찍한 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앞에 펼쳐져 있는 안나푸르나의 생생한 숨결을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들이켰다. 짧지 않은 트레킹 기간 동안 때로는 지루함이 있을 법도 한데 안나 서킷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다른 뭔가로 가슴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다. 안나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길과 계곡이 우리 앞쪽으로 뻗어 있다. 두루님은 지금 어느메쯤 가고 있는지… 그러나 지금 어디에 있든 두루님의 가슴도 우리처럼 꽉꽉 채워지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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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지역에는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티벳 계통의 구릉족이 많이 산다. 인자하게 생긴 롯지 주인의 어머니가 외모는 완벽하게 구릉족이 되어 있는 길동무와 나에게 동족애를 느끼는지 이것 저것 물어 보며 고맙게 대해 주었다. 볶아낸 콩을 정리하면서도 먹어 보라며 줌을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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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콩을 씹어 먹어 보니 너무 구수하고 맛있었다. 입만 먹고 싶어 50 루피 (미화 50 센트) 건넸더니 봉지에 반은 차도록 담아 준다. 이상 돈도 사양하면서.. 콩은 나중 우리의 태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고맙고 훌륭한 주전부리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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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차가 들어오지 않는 산꼭지 마을 간드룩에도 무거운 짐의 운반은 녀석들의 몫이다. 트레킹이 유행하지 않던 시절에는 네팔의 산간 마을에 프로판 개스 같은 것이 그리 필요치 않았지만 지금은 트레커들의 음식과 샤워를 위한 필수품이 되었다. 녀석들의 노역이 가중된 같아 트레커로서 많이 미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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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간드룩을 떠나 계단길을 내려 가니 오늘밤 우리가 묵을 란드룩 (Landruk, 2565m) 마을이 건너편 산중턱으로 보였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여기가 바로 롯지 주인들이 팔을 커다랗게 휘저으며 V 자를 그리던 바로 그곳이란 것을 대번에 있었다. 여기서 란드룩까지는 직선 거리로는 손에 잡힐 지척이지만 우리는 까마득 아래에 있는 모디 콜라 (Modi Khola) 강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저만큼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 돌계단으로… 으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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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여기의 돌계단길은 엊그제 고레파니로 올라오던 계단길보다 훨씬 경사가 급한데다가 그야말로 끊임이 없었다. 가파른 산사면인데도 계단길 연변에는 가옥들과 다랑이 논밭들이 이어져 있다. 주거와 경작이 가능하면 줌의 땅에라도 의지해 살아가는 네팔의 산간 사람들. 척박함 속에서도 모질게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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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간 이상 내리막 돌계단을 내려와 모디 콜라 (Modi Khola) 강에 이르렀다. 강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지역에서 발원되어 깊은 계곡을 굽이 굽이 흘러서 왔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 계단길은 오르막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같다. 강가의 길옆으로 누군가가 심어 놓은 꽃들이 지쳐 가는 몸에 적지 않은 원기를 보태 준다.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배려와 정성이라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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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제는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는 오르막 계단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겠지 하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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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래 강가에서 휴식을 많이 하고 오르기 시작했지만 여전 힘들었다. 그래도 트레킹하는 우리야 고생해서 오르고 나면 그뿐 아니던가.. 여기 네팔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길일텐데… 간간히 쉬면서 바라보는 안나푸르나의 구름 놀이 역시 우리에게는 여전 숨막히는 장관이건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또한 하나의 일상에 불과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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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손에 닿을 보이던 란드룩까지 오는데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야말로 죽음의 V 계단길이다. 쏘롱라 패스만 넘으면 쉽고 순조로울 같은 트레킹이 막판 돌계단길에서 본때를  보여 준다. 우리 네팔 사람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길을 걸어 보란 듯이… 그렇게 당도한 란드룩 마을은 확실히 정다왔고 애착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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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날 아침 란드룩 마을을 벗어날 즈음 네팔 아녀자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우리에게 손가락을 불쑥 내밀었다. 상처난 손가락을 치료할 약을 얻기 위함이다. 상처를 살피고 있는 길동무의 표정이 말해 주듯 다친지 오래된 상처가 상당히 좋지 않아 보였다. 가지고 있던 비상약이나마 건네 주었지만 열악한 네팔의 의료 환경 또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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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얼마간 걸어 가니 이번에는 쬐끄만 꼬마들이 길을 막아 바리게이트를 치고는 Sweet please! 반복한다. 트레커들 (특히 한국인 트레커들) 사탕등을 가져와 네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생긴 모습이다. 네팔 아이들을 만나면 뭐든 쥐어 주고 싶은 측은한 마음은 생기게 마련이지만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치아 건강 그리고 그들의 자립심과 자부심을 보호하기 위해 네팔 정부에서도 이런 “동냥성의 친절”은 삼가해 주도록 트레커들에게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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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철부지 남동생 꼬맹이는 앞에서 우리한테 Sweet please!”을 하다가 등교하던 작은 누나한테 걸렸다. 누나 역시 꼬맹이지만 남동생한테 그런 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배운대로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다교육이라는 것이 이처럼 무섭다. 그리고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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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주변 다랭이 밭에 Millet 영글고 있었다. Millet 이라도 자주 자주 풍성하게 자라서 네팔 사람들의 어려운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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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등교 시간이라 아이들이 삼삼오오 학교로 향한다. 뒷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안나 남봉에게도 아이들에게 정기와 총기를 듬뿍 나누어 주도록 속으로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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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산꼭지 마을인 데우랄리로 오르기 모디 콜라강 valley 뒤돌아 봤다. 여기 자연의 아름다움은 전혀 알프스에 뒤지지 않건만 이곳 사람들의 삶은 풍요로운 그곳과 이처럼 차이가 나는 건지… 세상 살이가 불공평하다지만 네팔의 아름다움을 느낄수록 그런 것이 안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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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데우랄리로 오르는 돌계단길. 이번 트레킹의 거의 마지막 오르막이다. 오르기에 여전 힘은 들지만 이제 만리 돌계단과도 작별해야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속으로 아쉬움이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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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배낭 3개를 한꺼번에 지고 가는 포터. 한국에서 차려 입은 중년 여성 그룹의 포터였다. 일당만 지불하면 어떻게 취급해도 되는 것이 네팔 포터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들처럼 무거움과 힘든 것을 느끼고 비인간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진다. 누구에게나 너무 뻔할 같은 이런 상식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힘들게 되면 쉽게 망각되는 . 포터도 인간이고 또한 엄연한 직업이다. 그들을 항시 professionalism 의해 대해 주는 것은 트레커의 마땅한 도리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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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안나 서킷 트레킹의 마지막 밤을 보낼 Australian Camp 왔다. 지난날 호주 등반대가 등반후 머물렀던 이곳 또한 전망 좋은 곳으로 근간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얼마전에는 한국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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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Australian Camp 밤하늘의 별과 일출 때의 모습이 특히 유명하다. 자다가 깨어나 밤하늘을 살폈지만 날씨가 맑지 못해 기대했던 별잔치는 만나지 못했다. 그나마 새벽의 일출은 지켜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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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여기도 많은 사람들이 새벽에 일어나 일출과 안나푸르나에 햇살드는 정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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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다른 각도에서 새벽녁에 바라 보는 안나푸르나의 산군..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풍광에 감동을 받고 압도되고 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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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얼마전까지 롯지 밖에 없던Australian Camp 이제는 많은 수의 롯지가 들어서서 제법 마을 같은 규모를 이루고 있다. 마을의 가장 높은 (사진 왼편 상단) 에는 이곳의 풍수에 매혹된 어느 한국 스님이 아예 (토굴) 짓고 수행하고 있다. 스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 같아 만나 보려 했지만 어디론가 출타하고 부재중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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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드디어 안나 서킷의 마지막 날이다. Australian Camp 떠나 아랫 마을 담푸스로 이어지는 숲길을 내려 갔다. 여정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아직 실감되지는 않는다. 아니면 실감하기 싫은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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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숲속길을 올라오는 여자 아이 셋을 만났다학교에 다닐 나이인데도 형편이 되는지 아침부터 운반을 하고 있었다. 사진 찍어도 되겠냐는 요청에 스스럼없이 응해 주기는 했지만 표정이 어둡고 뭔가 화난 얼굴들 같았다. 팔자 좋은 관광객이 사진이나 찍으려고 바쁘고 고달픈 아이들을 불러 세운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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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여자 아이들의 표정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서 서구적이고 고급스런 차림을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났다.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카트만두의 사립중학교 학생들이었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참동안 우리에게 여러가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아이들이 네팔 상류층의 아이들을 보고는 반감과 마음의 상처가 생겨났던 것이다. 네팔은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존재한다. 이미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런 신분상의 속박까지 주어진다는 현실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철없고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에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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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담푸스 (Dhampus) 마을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트레커 퍼밋 검사를 받았다. 안나 서킷 동안 거의 번쯤 검사를 받은 같다. 미국의 wilderness에서는 주로 ranger들이 다니며 퍼밋을 검사하지만 네팔에서는 트레킹 루트 여러 곳에 있는 Check Post 가서 하나 하나 빠짐 없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연 보호라는 취지는 미국과 다를 없지만 네팔의 퍼밋 검사는 사실상 퍼밋 수수료의 납부 여부가 중요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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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마지막 Check Post 통과하고 나니 바햐흐로 트레킹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고 때로는 험했던 일정을 무사히 끝낸 것이 감사했고 우리 자신들에게 뿌듯했다. 물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었던 안나푸르나의 산군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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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담푸스에서 포카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역시 손님들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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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버스 출발을 기다리면서 안나푸르나 산군의 봉우리 하나 하나에 고별 인사를 건넸다. 마차푸차레 옆으로 트레킹 초반 무렵에 우리를 들뜨게 했던 람중 히말, 안나푸르나 2 4 모습들도 선명했다. 일순 수많은 순간과 정경들이 주마등처럼 휘익 뇌리를 스쳐 가며 돌연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제 버스가 떠나면 정말로 모두 헤어져야 하는구나… 마치 정든 사람과 이별할 때의  바로 그런 기분이 들며 눈물이 왈칵 흐를 같았다. 산행중에 자연의 모습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려 적은 있지만 산행 말미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랬구나…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그저 단순한 산이 아니라 감정까지 주고 받은 그런 곳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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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터의 임무를 마친 부번하고도 이제 이별을 해야 했다. 부번이 떠나기전 한국 식당으로 가서 한국 음식으로 모두 함께 포식을 했다정작 헤어지려니 녀석과도 어느새 정이 들어 몹시 섭섭했다.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팁이라도 두둑하게 줘서 보낼 밖에… 부번은 우리의 가슴뼈가 으스러지도록 허그를 하고는 여자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카트만두로 총총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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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안나푸르나와 헤어지고 부번도 훌쩍 떠나고 나니 홀연 허전함과 동시에 생소함이 밀려 왔다. 포카라의 날씨마저 흐릿하여 본래 계획했던 패러글라이딩을 취소하고 길동무와 둘이서 페와 (Phewa) 호변을 거닐어 봤다. 그윽하고 아름다운 호수… 그러나 우리 마음은 아직 다른 곳에 머물고 있는지 우리는 그냥 무심하게 호숫가를 걷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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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카트만두 상공으로 오르자 구름위로 연이어져 있는 히말라야의 설산 고봉들의 모습이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있어 히말라야. 너무 즐거웠고 너무 고마왔어. 5분쯤 후에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금 왼쪽으로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입니다. 그래…에베레스트...다음번엔 너를 만나러 오마… 네팔을 다녀간 사람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지...


*그동안 못난 글 읽어 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