润润路上三十人,(질척질척 길위에 30 인)
飘飘轻过四十里, (사뿐사뿐 가벼웁게 40 리를 걸었네)
翩翩飞上万尺峰, (만척짜리 고봉조차 날듯이 올라 넘고)
幸幸全友零事回。(다행히도 모두모두 무사히 돌아왔네.)
실제 산행과는 많이 달랐지요 ?
사뿐사뿐은 무신 얼어죽을.
엉덩이 도장찍은 산우님들도 계시고,,,,, 행여 미끄러질쎄라 긴장에다가 신발에 찐득하게 붙은 진흙으로 발걸음이 그리도 무거울수가 없었습니다.
고봉이 만척이면, 한 척이 30센티니깐 3000미터가 되나요 ? 그런 산이 이 동네에 있을리가 만무하니 이것 또한 뻥입니다.
날듯이 올라 넘다뉘.... 워디 얘기여...
델 아미고 트레일 넘느라 심장터지는 줄 알았다는 여산우님 얘기가 어디 남얘긴가요.
이와 같이 사실을 조작해서 보기좋게 꾸며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정치 활동을 프로파겐다, 즉 선전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우리도 많이 당했지요.
그럼 나폴레옹이 등극한 1800 년대 초반에 프랑스에서는 어떤 프로파겐다 미술이 있었는지 한번 보십시다.
루블 박물관에 가시면 엄청나게 큰 화면으로 보실 수가 있습니다. 204 명이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데 저 가운데 2 층에 작가 자신이 스케치하는 모습도 그려놨습니다.
이 작가는 다비드. 나폴레옹에 의해 발탁되어 궁정화가로 이름 날리던 인물입니다. 물론 살롱 출신이죠. 스케치에 충실하는 고전주의를 표방하여 신고전주의를 주창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문화권력의 중심인물로서 앵그르가 들라크로와와 벌였던 색이냐 소묘냐 논쟁의 준거를 제공한 인물입니다. 나폴레옹 등장 이전에는 로베르피에르 정권에서 엄청 고생했던 정치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 그림은 죠세핀의 머리에 나폴레옹이 자기 왕관을 씌워주는 광경인데, 죠세핀은 저 자리에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의 왕관은 교황이 씌워주지도 않았고, 그는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에 스스로 왕관을 씌웠다고 합니다. 조작 미화된 그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멋진 백마를 탄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고 있습니다. 멋있습니다. 이 그림은 다비드가 5 번인가 그렸다고 합니다. 루블 박물관에 가도 볼 수 있고, 베르사이유에도 걸려있고, 비엔나에 클림트 그림이 걸려있는 벨베데레에도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 역시 구라입니다.
그럼 나폴레옹이 두가티 모터싸이클을 타고 넘었느냐....
들라로슈라는 역사 미술가가 그린 그림인데 이것이 사실에 가장 부합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알프스와 같은 고산에서는 나귀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들라로슈는 또다른 프로파겐다 화가 쟝 그로의 제자인데, 나폴레옹의 알프스를 넘어간 진실이 뭔지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양심에 의거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멋진 백마보다는 폼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이 그림은 들라로슈의 스승 쟝 그로가 그린 페스트 마을을 방문한 나폴레옹입니다. 이 그림도 루블에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전염될까 무서워서 페스트 마을에는 얼씬한 적이 없습니다.
이 그림은 선전용 그림은 아니지만 워낙에 유명한 그림이라 지나칠 수 없어서 올렸습니다. 제목은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쟈크 루이 다비드의 출세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서치하시면 주르르 나옵니다.
이건 앵그르가 그린 나폴레옹의 초상입니다. 자신보다도 훨씬 큰 창을 들고 있는 모습니다.
왕정을 거부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통령으로 추대된 후 왕보다 한단계를 넘어서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거기에 부화뇌동해서 미술계도 움직여였으니 권력과 문화는 그 시절에나 지금에나 같이 가는 모양입니다.
베에토벤이 작곡해서 나폴레옹에게 헌정했다가 취소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5 번 "황제"를 감상하시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hDXWK3W477w
FAB.
이 담에 기회되면 모택동이 지은 한시도 한번 다뤄볼까 합니다. 엄청난 뻥이라서 바그너 음악을 듣는 맛이 납니다. 단 관심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