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날 (10월 12일, 화): Lower Vidette Meadow to Sphinx Creek, 8.2 마일, 9500ft to 6300ft
캠프장에도 캠프장 북쪽 맞은편으로 보이는 Mt Bago에도 새아침이 밝아온다. 이 캠프장도 시즌중에는 사람들이 꽤 붐비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나 혼자뿐이다. 10월이라 하더라도 John Muir Trail에는 사람들 왕래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LA팀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 지난주의 storm 때문인 모양이다. 암튼 Backpacking 다니면서 이처럼 인적이 드문 경우도 처음이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니 아무도 없는 편이 여러모로 훨씬 더 낫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도 한층 더 풀린 것 같고 산행일정 또한 Sphinx Creek 까지의 내리막길 8마일 정도. 아침 햇살 드는 평화로운 Vidette Meadow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사슴가족들 처럼 나도 한결 여유만만하게 아침시간을 보냈다.
캠프장에 드러누워 스트레칭을 하며 높이 올려다 보는 하늘이 유난히 예쁘다. 이럴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그 공포의 싯귀절.
하~늘,
하하~~늘,
하하하~~~늘.
아침 늦게 Lower Vidette Meadow 캠프장을 출발했다. Trail을 따라 조금 걸으면 지금까지 조용하던 계곡물 소리가 세차게 들려오기 시작하며 내리막 경사가 급해진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보이는 이 긴 협곡을 따라 Bubbs Creek과 함께 오늘 산행할 trail이 나 있다.
Junction Meadow에 가까와 지면서 협곡의 내리막 경사가 더 급해진다. 지난달 Ansel Adams Wilderness의 Shadow Creek에서 봤던 것처럼 Bubbs Creek도 좁고 가파른 gorge가 되어 수많은 작은 폭포들을 만들며 큰 소리를 내고 있다. 눈 녹는 봄철에는 굉장할 것 같다.
Junction Meadow에서 Lake Reflection으로 가는 왼쪽으로 나 있는 계곡. 그 너머로 Kings Canyon 간판타자중의 하나인 Mt Brewer (13570ft=4136m) 의 고고하고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사진 왼편의 맨 뒷 봉우리)
시간이 있으면 그 근처 자락까지만이라도 가까이 가 보고 싶을 만큼 멋있는 자태를 가졌다.
Trail의 오른쪽 사면위로는 Mt Bago의 탑형 암석 조형들이 아직 연이어지고 있다. 요세미티에서는 규모가 크고 미끈한 화강암 봉우리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Kings Canyon에서는 이처럼 암석조각들을 뭉쳐서 빚은 듯한 봉우리들이 연도에 많다.
Junction Meadow를 지나자 Trail이 본격적인 숲속으로 들어가며 예쁘게 물든 나뭇잎들이 군데군데에서 가을의 정취를 더해 준다.
어제 만났던 Charlotte Lake로 부터 내려오는 Charlotte Creek이 Bubbs Creek과 만나는 근처. 울창한 숲속의 양지바른 냇가에서 또 다른 신선한 한가로움을 느끼며 점심식사를 했다. 곧 LA팀 두 사람이 내려와 합류했다. 이들은 지난밤 Charlotte Lake 호변에서 캠프했단다. 우리는 같이 점심식사를 하며 Rae Lakes Loop의 여러 특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하나는 trail을 따라 맑은 계곡물과 물소리가 참으로 풍부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호수들을 차치하더라도 아마 전구간의 70% 이상은 걸으면서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계곡물과 그 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곳 Loop이 그야말로 heaven이다.
점심후 오후에 내려오는 trail 양쪽 옆으로 계속되는 첨탑형 봉우리들, 한국 산의 멋에 대한 향수도 얼핏얼핏 느끼게 한다.
Rae Lakes 옆에 있던 Fin Dome을 쏙빼닮은 바위 봉우리도 보인다. 모양이나 크기가 Fin Dome과 흡사하건만 이 봉우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잘 끌지 못하고 이름도 없다. 좀 측은하다. Rae Lakes처럼 멋진 setting 속에 있었더라면 얘도 이름 꽤나 날렸을 것 같은데…
얼마후 계곡 왼쪽 위로 며칠전 산행 시작하는 날 보았던 Sphinx의 꼭지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Sphinx Creek이 가까와 오는 것이다.
Sphinx Creek에 당도했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이곳에도 멋진 campsite들이 많이 있었다. 여기에서 Roadend Trailhead까지는 이제 4마일. 이번 산행의 거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떠남의 아쉬움과 더불어 긴장도 많이 풀린다. LA팀들도 마지막 캠프를 여기에서 하고 아침 일찍 LA로 돌아간단다. 나는 내일 아침 늦도록까지 여기 머물며 그간 산행의 여독도 좀 풀고 마무리도 할 양으로 LA친구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해 두고는 콸콸 흐르는 계곡물 옆에 캠프를 차리고 campfire도 따뜻하게 피웠다.
여섯째날 (10월 13일, 수): Sphinx Creek to Roadend Trailhead, 4 마일, 6300ft to 5000ft
Sphinx Creek 숲속의 아침 산새들이 유별나게 많이 지저귄다. 날씨도 많이 풀렸고 여기는 고도도 낮아 아침 나절의 쌀쌀함마저도 가신 듯하다. 계곡 물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마지막날의 아침 햇살이 Sphinx를 비추어 오는 모습을 한가롭게 지켜봤다. 며칠동안 산행에서 만났던 수많은 정경들도 마치 환각속처럼 몽롱하게 스쳐들 지나간다. 이제 곧 다시 내가 사는 세상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나…
캠프장을 떠나자 Sphinx Creek 과 합쳐진 Bubbs Creek은 Rae Lakes Loop의 大尾를 알리는 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가파른 계곡을 흘러 내려간다. 숲속의 trail 또한 경사가 급한 산사면을 타고 내려가는 기나긴 내리막 switchback이다. Loop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 초반에 한동안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Switchback 숲사이로 얼핏얼핏 서쪽 방향의 Kings Canyon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 이제 거의 다 내려 왔다. Canyon이 좁아지는 저 어디쯤 Roadend Trailhead가 있다.
곧 이어 trail이 한굽이를 돌자 첫날 오르기 시작했던 Paradise Valley로 가는 Kings River계곡이 북쪽으로 나타난다.
첫날 그 계곡에서 처음으로 관망했던 Sphinx. 이제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윽고 Kings Canyon 콰이강의 다리 Bubbs Creek 철교가 나왔다. 이 다리를 건너면 Loop의 시작점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리 아래 맑은 계곡물에서 땀도 씻으며 며칠동안 정겨운 동무가 되어 준 계곡물에도 마음속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여기에서 Roadend Trailhead 까지는 평탄한 2마일.
Roadend Trailhead에 도착했다. 제법 길었던 자연속 5박 6일 여정의 끝점이면서 동시에 내가 사는 세상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시작점이다.
이번은 자연의 참 많은 부분들이 나에게 더 深度있게 다가와 주었던 산행이었다 싶다. 산행하면서도 왜 그럴까를 가끔 생각해 보았다. 물론 형용하기 어려운 산간 정경의 깊은 아름다움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을 이번처럼 인적 없는 환경에서 대할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왜 인간이 드문 자연은 더 자연스러워 보일까… 인간도 분명 자연의 한 부분일진데… 그리고, 왜 더 자연스러울수록 인간에게 더 큰 공감과 감동을 줄까… 그것이 또한 인간 本然의 모습에도 더 가까와서일까…
Roadend Trailhead 주차장 바로 옆 Kings River 강가에 평평하고 큰 “Muir Rock”이 있다. 오래전 John Muir이 field trip 나오는 Sierra Club 멤버들을 모아 놓고 가끔 이야기를 하던 그야말로 自然 auditorium이다. 나는 차에다 짐을 내려놓고 강가까지의 오솔길을 따라서 천천히 그리로 가 보았다.
(오른쪽에 있는 Muir Rock 을 휘감으며 흘러 내려 가고 있는 맑은 Kings River)
“Let our law-givers then make haste before it is too late to set apart this surpassingly glorious region for the recreation and well-being of humanity, and all the world will rise up and call them blessed.” (1891, John Muir)
그는 “humanity”의 “recreation and well-being”을 위해 손상되지 않은 이 아름다운 자연이 꼭 필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나는 이번 산행중 그의 말을 더 절감하지 않았나 싶다.
“Such purity, such color, such delicate beauty! I was tempted to stay there and feast my soul, and softly freeze, until I would become part of the glacier.”
나는 John Muir 의 그런 경지까지 느끼고 깨닫지는 못했지만, Rae Lakes의 옆에서처럼 이와 비슷한 느낌과 소망은 가지고 있은 듯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연과 나만이 있는 곳. 여기서는 자연 그대로가 가르쳐 주는대로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은 또한 가장 필요하고 의미있는 대화를 실컷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에게 진정한 안정과 휴식도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런 것이 “feast my soul”이 아닐런지…
나는 요세미티와 Kings Canyon같은 High Sierra에 가까이 살며 거기에 자주 갈 수 있다는 것이 John Muir의 표현처럼 “blessed”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려고 많은 그의 인생을 바쳤던 John Muir이 참 감사하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한마디를 되네이며 Muir Rock에서 일어섰다.
Thank you, Mr. Mu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