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9일 월 맑음
오늘은 신트라에 가본다. 지진연구로 리스본에 온 한국인 박사의 강추로 가장 먼저 이곳을 밟아보았다. 지명 신트라(Sintra)는 중세 순트리아(Suntria)에서 유래되었으며 급진적인 인도-유럽 문화와의 연관성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밝은 별' 또는 '태양'으로 번역되며 해당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간주된다.
리스본에서 24Km 전철로 40분거리. 이베이라 반도를 정복했던 무어인들이 지은 무어인의 성과 포르투갈의 왕궁으로 쓰였던 신트라 왕궁이 있는 신트라는 포르투갈의 역사가 집약된 곳이다. 신트라의 여러 왕궁과 궁전을 통틀어 ‘신트라 문화경관 Cultural Landscape of Sintra’이라고 한다. 신트라 문화경관은 1995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전철에서 내리자 마자 눈을 황홀하게 만드는 이슬람, 기독교문화가 합해진 신트라 왕궁.
Sintra is one of those places with a magical atmosphere located high in the hills on a strategic location. It was conquered by both Moors and Christians. Lord Byron called Sintra Glorious Sintra. 신트라는 전략적인 위치의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마법 같은 분위기를 지닌 장소 중 하나다. 무어인과 기독교인 모두에 의해 정복되었다.
2.1마일의 Out and Back. 거의 두시간동안 산행을 해본다.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무어성
The Moors Castle was built in the 8th century in a strategic position atop the hills. Along the years the castle fell into ruin. It was severely damaged in the 1755 earthquake. 무어인의 성은 8세기에 언덕 위 전략적인 위치에 지어졌다. 수년에 걸쳐 성은 폐허가되었다. 1755년 지진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무어성 (Castle of the Moors)은 12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던 이슬람교도 무어인들이 세운 유적이다. 8-9세기에 지어진 탑과 성벽인데 1800년대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20세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해발고도 450m 산 중턱에 방어시설로 세워졌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이중으로 쌓아 올린 성벽에 올라서면 눈부신 신트라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트라를 극찬한 인물이 있다. 바이런 경(Lord Byron)이다. 그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풍자가로 그의 시와 성격은 유럽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자서전적인 시 Childe Harold's Pilgrimage(1812~18)와 그의 수많은 연애로 유명해졌지만 오늘날에는 풍자적인 사실주의 Don Juan(1819~24)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이런 경은 신트라를 영광스러운 신트라(Sintra Glorious Sintra)라고 불렀다.
Byron was extravagantly impressed and described it as no less than ‘the most beautiful village in the world’. Byron was enthusiastically responsive to the general scenery. He expresses it in a letter written a few weeks later to his mother: 신트라에 여행온 바이런은 엄청난 감동을 받았고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묘사했다. 21살 나이에 그는 몇 주 후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the village of Cintra about fifteen miles from the capital is perhaps in every respect the most delightful in Europe, it contains beauties of every description natural & artificial, Palaces and gardens rising in the midst of rocks, cataracts, and precipices, {convents} on stupendous heights a distant view of the sea and the Tagus.. It unites in itself all the wildness of the Western Highlands with the verdure of the South of France’. I must just observe that the village of Cintra is the most beautiful, perhaps, in the world.”
'수도에서 약 15마일 떨어진 신트라(Cintra) 마을은 아마도 모든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유쾌한 곳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연과 인공의 모든 설명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바위, 폭포, 절벽 가운데 우뚝 솟은 궁전과 정원이 있습니다. 엄청난 높이에 바다와 타구스(Tagus)강의 먼 전망이 보입니다. 그것은 서부 고원의 모든 야생과 프랑스 남부의 신록을 그 자체로 결합하고 있습니다.저는 신트라(Cintra) 마을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Of all the words spoken and sung about Sintra, poet George Gordon Noel Byron’s had the most lasting effect. When he put this flowering mountain town in “Childe Harold” he put Sintra on the map. “Glorious Eden,” he called the city. Wherever he stayed Byron was taken with Sintra. He wrote his mother: “Sintra . . . contains beauties of every description, natural and artificial. Palaces and gardens rising in the midst of rocks, cataracts and precipices; convents on stupendous heights, a distant view of the sea and the Tagus.”
신트라에 관해 말하고 노래한 모든 말 중에서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Noel Byron)의 말이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 꽃이 만발한 산간 마을을 “영광스러운 에덴”이라고 불렀다. 바이런은 1809년 어머니에게 이렇게 썼다. “신트라. . .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모든 묘사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바위, 폭포, 절벽 사이에 우뚝 솟은 궁전과 정원. 엄청난 높이에 있는 수도원, 바다와 타구스 강의 먼 전망.”
나는 바이런경이 아마 밟았을 Trail을 그대로 답습해보기로 했다.
What is the significance of Sintra? In the 19th century Sintra became the first centre of European Romantic architecture. Ferdinand II turned a ruined monastery into a castle where this new sensitivity was displayed in the use of Gothic, Egyptian, Moorish and Renaissance elements and in the creation of a park blending local and exotic species of trees.
신트라의 의미는? 19세기에 신트라는 유럽 낭만주의 건축의 첫 번째 중심지가 되었다. 페르디난드 2세는 폐허가 된 수도원을 성으로 바꾸었고 고딕, 이집트, 무어 및 르네상스 요소를 사용하고 지역 및 이국적인 나무 종을 혼합한 공원을 조성하여 이러한 새로운 감성을 보여주었다.
신트라 기차역에서 내리면 가장 가까이 위치한 신트라 국립 궁전 Palace of Sintra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대가 높은 무어성에서 내려다 보면 더 아름답게 보이는 신트라 궁전은 흰색 기둥 탑 2개가 하늘로 높이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포르투갈 왕실에서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역대 왕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신트라 시내에 들어서면 거대한 원뿔 모양의 흰색 굴뚝 두개가 눈에 띈다. 이것이 바로 신트라 왕궁이다. 8세기 무어인들이 지은 성을 토대로 15세기 초 호아오 1세와 16세기 마누엘 1세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증축되었다.
고딕, 마누엘,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외관의 화려함보다는 내부의 디테일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이국적인 정원과 내부의 다양한 아줄레헤주 타일 장식이 인상적이다.
나는 저 산위에 보이는 무어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많은 단체 관광객들도 Trail에 어울리지않는 신을 신고 무작정 오른다.
Trail Head는 여러곳에 있다. 이중 하나인 이곳을 택하는데 TH 이름을 알수없을 정도로 낙서로 훼손되어있다.
오르면서 느낀다. 어떻게 여기 자연에까지 낙서로 더럽힐 수 있을까? 나쁜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나라는 유적지를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볼수있다. 정말 많은 다양한 식물들을 심었다. 완전히 대형 Botanical Garden 수준이다.
울창한 숲은 여러종류의 열대식물과 지중해성 식물들로 빼곡하게 심어져있다.
쉬고 싶을때 바로 쉼터를 만들어 놓아 피곤함을 못느낀다. 아기자기하게 곳곳에 예술감을 부각시켰다. 일본인들처럼 부조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손의 예술을 가미했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Trail.
곳곳에 이런 Petite Castle이 있고..
화장실조차도 예술이다.
어느정도 올라가다가 Dirt trail이 나온다. 이길을 많은 사람들이 올라갔다. 저 앞에서 젊은 여성들이 내려 오고있다. 나도 저 길이 지름길이지 않을까 안심하고 오른다.
이상하다. 너무나 경사가 심한것이다. 험한 바위도 앞을 가로막고.. 그래도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오른다.
한참 의문을 갖고 오르는데 마침내 성채가 보이기 시작한다. OMG! 잘못들어왔다. 할수없다. 앞으로 전진. 저 성을 적군들(?)처럼 기어 오르면 될것같다.
위에서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고 있다. 나를 발견한 한 중년 여성이 놀랜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알고보니 내가 돈을 내지않고 몰래 들어오는 도둑(?)의 길을 밟았던 것이다.
나를 신고하지않고 도와준 고마운 아줌마들
역시 이성은 무적의 요새다. 이렇게 경사가 심힌 산 위에 성을 쌓았으니 얼마나 유용한가. 저 성을 내가 기어올라왔으니 나도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