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Walk along the Danube in Budapest 08/16-20/2024
2024년 8월 16 일 금요일. 맑음
노벨 문학상으로 한국은 문화적으로 대단한 나라의 반열에 들어갔다. 두달전, 헝가리행 비행기를 탈 때 이런 의문을 갖고 여행을 시작했다. "어떻게 인구가 1,000만명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노벨상이 15개나 나올수있을까?" 일찌감치 노벨 문학상도 2002년에 받았고… 헝가리인들은 아주 특이한 민족이라 생각하고 8월 16일 Budapest 공항에 도착했다.
헝가리도 Uber Taxi가 있다. 이것을 타고 시내로 들어온다. 부다페스트는 대중교통이 서울처럼 잘 되어있다. 헝가리는 EU국가에 속하지만 유로통화(EURO)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자국폐단위인 헝가리 포린트(HUF)를 사용하는데 나는 주로 카드를 사용을 하였다. 비록 환율은 안좋아도 아주 편리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올때는 80년대 한국의 모습처럼 소박한 풍경들이다. 유심히 쳐다보니 뉴스에 자주 나오던 우크라이나 시골마을같은 분위기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쟁분위기를 여기에서도 느낄수있는 광고가 눈에 여러번 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험을 느낀 헝가리는 군에 입대해서 애국을 하자라는 광고가 나붙었다. 모병제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하기를 종용하는 포스터이다. 헝가리도 서서히 전운이 감도는 기운이다. 곳곳에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호소하는 광고. "군에 자원입대하자!" 특이한 것은 헝가리 국기 옆에 NATO기도 휘날리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러시아가 헝가리를 침공하면 과연 NATO가 자동개입할까? 헝가리는 아직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있는데…
나를 내려준 곳은 부다페스트의 중심지에 위치한 중국간판이 많이 보이는 곳, Avenue Hostel 이다. 하룻밤에 15불. 아주 저렴하면서도 아침까지 주는 괜찮은 Dormitory 다.
이 Hostel의 큰 장점은 아침이 아주 푸짐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세계지도가 있다. 각나라 돈을 붙여서 만든 지도. 한국 배낭족들이 남긴 흔적이 살짝보인다.
대부분 젊은 배낭족들이지만 간간히 나같이 60대들도 보인다. 내가 배정된 방은 젊은 남녀들과 함께하는 Dormitory다. 비좁은 공간에서 잠을 자야해서 처음에는 좀 망설여졌지만 8명이 그래도 피곤해서인지 모두다 금방 잠에 빠진다.
홀로 배낭족들에겐 이런 Capsule Room이 편리하다. 저렴하고 도심지에 위치해있고 전혀 모르던 사람끼리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수있게 해준다. 사실 매일매일 "오늘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잘까?" 살짝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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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는 아시아에서 유래한 민족(Magyar족)으로 처음엔 유목민이었으나 점차 헝가리 분지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고, 주변국들과는 상이한 언어를 구사하며 살아 왔다. 또한 구체적으로 국가를 건립한 정확한 시기(1000.1.1.)가 있어 헝가리 국민은 이것을 나름 자랑스러워 한다. 외세의 지배(약 400년: 투르크 지배 150년, 오스트리아 지배 200년, 소련 지배 50년)를 많이 받은 헝가리가 200여 년간 지속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 1867년, 당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의 대타협(1867.6.7)을 통해 이중제국(외교와 국방, 재무만 공동)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20세기 초 낙후된 농업 국가에서 역동적으로 수출하는 농업·산업국가로 변모해 갔으나 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하고 헝가리의 영토는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토의 약 70%, 인구의 약 60%를 주변국에 양도하게 된다.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로 총리에 빅토르 오르반(Victor Orbán)이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장기집권을 하고있다. 2022.04. 총선에서 큰차이로 야당을 따돌렸다.
청년민주동맹(FIDESZ) + 기독민주국민당(KDNP) : 135석 야당연합 : 57석게다가 오르반 총리는 EU,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에 우호적이어서 서방의 단일대오에 종종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NATO의 골치거리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가 향후 추진하려는 '우크라이나 장기 지원' 계획에서 회원국인 헝가리를 배제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줄곧 반대해온 친러시아 성향인 헝가리의 고집을 사실상 수용한 셈으로 헝가리는 대신 나토 차원의 관련 의사결정을 막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오르반 총리가 러시아와 중국 정상을 잇달아 찾아 상호 협력을 논의함으로써 헝가리는 '마이웨이'식 외교 노선을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활기찬 부다페스트 젊은이들. 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을까? 이들이 느끼는 생활만족도는? 이들은 친러정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중년의 이 아줌마들은 젊은세대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정치지도자들은 중동 난민들을 받지 않고 나름대로 헝가리를 더이상 이민족으로 잠식되는것을 막는 정책에는 반대하지 않는 이들은 전적으로 현 정부내각을 지지하고있다.
전철만 봐도 종교색이 짙음을 알수있다.
종교 : 카톨릭(37.2%), 개신교(13.8%), 그리스정교(1.8%) 등
민족 : 마자르인(85.6%), 루마니아(3.2%), 독일(1.9%), 기타(2.6%)수도 : 부다페스트(177만명)
인구 : 958만명
면적 : 9만 3030㎢ (한반도의 2/5)1인당GDP : 2만 2150$ (2023)
헝가리에 대한 난민 신청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지난 수년간 리비아 인신매매단에 의해 주도되어온 지중해를 통한 밀입국이 선박 침몰, 연안국 해안 단속 강화 등으로 그 위험성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및 세르비아 등 West Balkan 국가들을 통한 밀입국(소위 발칸 루트)이 선호되고 있으며, 헝가리는 EU의 쉥겐 지역 국경으로, 밀입국자가 헝가리 국경 경찰에 체포되면 즉시 난민 지위를 신청하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한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프랑스 등 서부 유럽국가로 가기를 희망하는 불법이민자들의 경유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헝가리 정부는 무분별한 난민이 유입되는것을 막기위해 국경을 봉쇄해버렸는데 국민들로 부터 지지를 받고있다. 대다수의 헝가리인들이 불법이민 근절을 위해 EU와 헝가리가 더욱 엄격한 이민 규정을 시행하여야 하며, 응답자의 89%가 EU의 느슨한 이민규정 때문에 유럽내 테러가 증가했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부다페스트 식당 음식가격은 절대로 싸지않다. 위 햄버거와 칩, 물한병을 시켰는데 거의 20불을 지불했다. 미국 햄버거 가격정도다,
헝가리인들은 정말 담배를 엄청 피워댄다. 부다페스트 어느 식당에서.. 엄마는 담배, 아들과 딸은 전자담배를 피워댄다. 이렇게 식당에서 아무리 손님이라도 그렇지 담배연기를 뿜어대서야… 골목길은 완전히 담배꽁초로 가득하다. 시에서도 청소할 엄두를 못내는 듯하다.
헝가리인들은 담배와 맥주는 항상 입에 달고 다닌다.
여행을 하다보면 갑자기 집생각이 문뜩든다. 바로 저 이층 자기집에서 비내리는 거리를 내다 보는 남자가 부러워 보인다. 부다페스트 시내에는 Yellow cab도 많이 눈에 띈다.
유럽 어느나라에 가도 낙서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한것 같다. 공원 안내문에 이렇게까지 낙서할 필요가 있을까? 도대체 저들에게도 Artist라고 불러줘야할까?
이정도 낙서라면 Artist라고 불러줘도 되겠지만 …
밤 야경을 보러 나갔다. 8월 20일 건국기념일 준비때문에 많은 야경들이 전기를 아끼느라 (?) 전원을 껐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가스공급을 줄여서 헝가리 국내 전기료가 4배나 올랐다고하니… 그래도 볼만한 야경을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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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Stephen’s Basilica
세체니 다리 (Széchenyi Chain Bridge)
한인 민박집인 라온 부다페스트까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간다. 완전히 상가에 위치한 주택이다. 수백년된 건물이라서 바닥과 벽이 깨지고 빨간 벽돌이 드러나있는 곳이다. 그래도 사람사는곳이라 정이들기 시작한다. 짐을 맡긴다. 2시에 다시 오기로하고. 90유로프랑을 낸다. 이틀간. 젊은 남자주인이 사업가처럼 보인다. 한 아가씨가 시설 설명을 해준다. 아내인지, 아르바이트생인지 구별이 안간다. 한인민박집과 Netizen Hostel 이있는 제 7구역은 거의 모든 주요 관광지를 걸어서 갈수있어 여러면에서 편리하다.
Hungarian State Opera - 헝가리에 오면 오페라를 보라고 하는데.. 오늘밤은 완전 만석이라 내일로 미루어 본다.
유명 식당거리에 놀랍게도 Nude Bar가 있다. 어정쩡하게 지나가다가 저 호객하는 아가씨들한테 그대로 낚여버린다. 바가지 조심!
어느 사회에 가도 노숙자들은 있다. San Francisco 처럼 거리엔 거지들이 심심치않게 눈에 띈다. 부다페스트 여자, 남자 거지들을 찍어보았다. 이 남자 거지는 핸드폰까지 있으면서 돈을 달라고 종이컵을 앞에 놓고… 왼쪽 할머니 거지는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데 아예 거적을 깔고 누워있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이런 거지가 존재하나? 자본주의 국가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부다페스트의 영광과 그늘.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음식과 술, 다른 한쪽에선 32도의 폭염 아래 쓰레기통에서 썩은 음식을 찾아 먹고있는 노숙자.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병이나 캔을 모으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손으로 찍어 먹는 거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가슴아프다.
물론 부다페스트의 부유층이 사는 2, 5구역에는 현대식 Mall이 있는데 산호세 Westfield 를 빰칠정도로 깨끗하고 세련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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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izen Hostel 강추. 하룻밤 20불정도. 아침은 포함안되지만 시설이 깨끗하다. 오늘 새벽에 옆에서 자던 아랍친구가 갑자기 기도를 해도 괜찮겠냐고 예의를 지키키면서 물어본다. 준비한 보자기를 깔고 메카로 향해 기도를 하고있다. 멋져보인다. 얼마나 가정에서 신앙심을 교육받았으면 이렇게 Backpacker’s Dormitory에서도 신을 섬기는 예식을 지키는지.. 이와 반대로 바로 위에서 자는 인도배낭객은 코만 열심히 골고.. 아침일찍 소리를 최소로 하면서 나온다.
외국에 나가면 역시 한국사람들과 한국 음식, 문화가 그립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인교회에 가보는 것이다. 11시 예배에 갔는데, 목사님은 한국인인데.. 오마이갓. 헝가리어로 유창하게 설교를 하시는것이 아닌가! 한참동안 이 목사님의 설교를 동시통역앱으로 들어본다. 대단한 목사님이시다.
가까이에 헝가리 교회가 보인다. 많은 백인들이 일어서서 손을 들고 찬송하고 있다. 목사가 완전히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와 설교를 한다. 영어로 통역하는 백인 아줌마의 동시통역 실력은 대단하다. 어떻게 저렇게 순차 통역이 가능할까? 내가 헝가리-한국어 동시통역앱을 대고 보고있으니 옆자리에 앉은 잘생긴 젊은 남자가 이것을 보더니 엄지척한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목사가 얘기하는 설교의 70% 정도를 이 앱이 커버했다고 한다. 이친구도 아주 재미있어해한다.
부다페스트의 거리는 중세대, 현대의 건축물들이 즐비해있다. 골목에 들어서면 낡은 벽에 중세대 빨간 벽돌들이 들어나고. 곳곳은 담배꽁초로 찌들어 있지만 현대 건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잘 버텨내고 있다. 익숙해질수록 사람사는 곳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오늘은 11.6마일을 걷는다. 부다페스트 도심을 거의 도는 trail이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 지역으로 나뉜다. 예로부터 부다 지역에는 왕궁과 귀족 등 지배층이 살았고 페스트 지역에는 서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다뉴브강 (The River Danube) 은 헝가리어로 두너강으로 독일어로 도나우강으로 불린다. 유럽에서 두번째로 긴 강이고, 제일 긴강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지역에 흐르는 볼가강이다. 다뉴브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길이는 2,860 km로,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와 몰도바, 우크라이나를 지난다.
갤레르트 언덕 (Gellert Hill)
요새는 합스부르크 지배시절 헝가리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로, 이후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 군이 방공포대를 설치했고 일부는 전범수용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1944년 소련군의 승리로 요새 꼭대기에는 모스크바를 바라보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 현재는 부다페스트 시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야경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속하는 곳으로 겔레르트 언덕에 시타델라(Citadella)가 있다. 시타델라는 원래 요새를 뜻하는 단어로, 요새 꼭대기에서 부다페스트와 도나우 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만큼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헝가리인에게 아픈 근대사의 기억이 모인 장소이다.
합스부르크 제국 식민지 당시 헝가리인들을 강제 동원하여 완공한 이후 오스트리아 군대가 독립운동 감시용으로 요새에 정착했다. 이후 1899년 말이 되어서야 헝가리인들이 요새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군에게 다시 빼앗겼고, 이곳에 방공포대가 설치되고 일부는 전범수용소로 이용되었다. 그러던 1944년, 소련군이 침공하여 독일은 이 요새에서 최후의 방어전을 펼쳤으나 끝내 패배하며 이제는 소련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소련은 그 기념으로 1947년에 높이 40m의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이 소녀는 두 팔을 지켜든 채 승리를 뜻하는 종려나무 잎사귀를 펼쳐 들고 있는데 이는 '소련군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징표라고 한다. 이후 공산진영이 무너지면서 이 소녀상에 대한 철거가 논란이 되었지만 아픈 과거에 대한 기억과 잘못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페스트 지역에서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다보면 겔레르트 언덕의 중간쯤에 거대한 석상이 도나우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가 이 언덕 이름의 주인공이자 수호신인 성 겔레르트이다. 4m 높이의 이 동상은 헝가리 건축가 지그몬드 쉬트로블(Zsigmond KisfaludyStrobl)의 종전 기념 작품이다. 성 겔레르트는 본래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회 수사로 베네치아에 있던 성 조르지오(St.Giorgio) 수도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당시 로마 가톨릭의 거물이었던 그는 헝가리의 이슈트반왕을 도와 헝가리인들을 기독교로 개종 시키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다 1045년 기독교화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이교도들에게 붙잡혀서 못이 촘촘히 박힌 둥근 와인통 속에 갇힌 채 언덕에서 도나우 강으로 굴려졌다. 이렇게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가 탄생하였고 성 겔레르트 동상은 그가 통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언덕에 세워진 것이다.
세체니 다리 (Széchenyi Chain Bridge)
다뉴브강의 서쪽인 부다지역과 동쪽인 페스트를 잇는 부다페스트 최초의 다리. 세체니 다리라는 이름은 부다와 페스트의 합병을 주도한 세체니 백작의 이름에서 따왔다.세체니 이슈트반 백작(Széchenyi István1791 ~ 1860)은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헝가리의 자유주의 귀족, 정치인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체니 페렌츠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1815년부터 1821년까지 유럽을 여행했다. 1825년에는 자신이 1년 동안 모은 수입을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 설립 기금으로 기부했으며 1830년에는 도나우강에 증기선을 운항하도록 지시했다. 그 외에 《신용》(Hitel, 1830년), 《빛》(Világ, 1831년), 《경기장》(Stádium, 1833년)과 같은 저서를 출간하면서 봉건적인 특혜 철폐를 포함한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1859년에는 헝가리에 대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의 절대주의 통치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팸플릿을 출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반역죄로 기소하겠다는 위협을 받았고 1860년 4월 8일 빈에서 자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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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 (Szabadság Szobor)
겔레르트 언덕 맨꼭대기에 있는 치타델라 요새에 청동 여인상이 있는데, 이 여인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를 두손으로 치켜들고 동쪽으로 멀리 모스크바를 바라보고 있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수도 부다페스트를 해방하는 과정에서 쓰러져간 소련 병사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하여” 설립한다고 기록했다. 겔레르트 언덕이 부다와 페스트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임을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헝가리 독립운동을 저지하고 부다페스트 시민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웠던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물러나자 이번엔 나치가 이 요새를 차지했고 결국은 소련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 장소이기도 했다.
그 후 이 탑의 철거가 계속 논의됐지만, 1993년에 “헝가리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번영을 위하여 희생한 모든 이들을 기념하기 위하여”라고 비문을 고치고 보호하기로 결정한다. 헝가리인들의 승리가 아닌 소련의 승리를 상징하는 기념탑으로 세워졌지만 지금은 헝가리인의 승리와 자유의 상징으로 떳떳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치욕의 역사도 지워버리지 않고 보존하면 교훈과 영광의 역사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의 뿌리를 없앤다고 허물어버린 중앙청 건물이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다리 (Elisabeth Bridge)
자유의 다리에서 보이는 바로 옆 하얀 다리는 자유의 다리의 주인공인 프란츠 요셉(재위 1848~1916)의 왕비, 엘리자베스(1837~1898)의 이름을 딴 '엘리자베스 다리'다. 프란츠 요셉 다리와 함께 한 쌍의 커플 다리가 되는 셈. 엘리자베스는 합스부르크가의 왕비였지만 누구보다 헝가리를 사랑한, 마자르인들의 연인이었다.16세 때 프란츠 요셉을 만나 결혼하지만 시어머니와의 불화에 첫아이의 죽음, 거기다 황태자 루돌프마저 자살하고 마는 가정적 비극에 유럽을 방랑하다 1898년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불행한 삶을 마쳤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엄숙주의에 눌려 살았던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시달린 헝가리인들과 동병상련하며 헝가리를 사랑했다.1867년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자격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된 것도 엘리자베스의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유의 다리 (Liberty Bridge)
겔레르트 언덕에 가려면 이 초록색 다리를 건너야 한다. 원래 이름이 '프란츠 요세프 다리'였던 이 다리는 68년 동안 합스부르크를 통치하였던 '프란츠 요세프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다리인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이 커지자 '자유의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와 엘리자베스 왕비. 조선왕조의 고종과 민비와 같이 비극적인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관광상품(?)으로 크게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에서 붐을 이루고 있다.
엘리자베트 황후는 시종과 시녀를 전부 헝가리인으로 둘 정도로 헝가리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헝가리에서의 인기가 매우 좋았다. 부다페스트에는 다뉴브강을 가로지르는 에르제베트 다리가 존재하고 부다페스트 제7구는 아예 명칭이 에르제베트구이다. 부다페스트 외에도 헝가리 곳곳의 광장, 공원, 거리 등등 온갖 지명에 엘리자베트 황후를 기념하여 그녀의 헝가리식 인명인 에르제베트(Erzsébet)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쇠락해가는 제국을 떠받들다가 결국 1914년 1차대전을 일으켰다. 황태자가 자살을 하여 서열 승계에 따라 죽은 동생의 아들, 즉 조카가 황태자가 되었는데 그마저 사라예보에서 괴한의 피습으로 숨진다. 이것이 1차대전의 발발 원인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 1916년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숨을 거두었고,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은 패전국으로 제국이 해체되고만다. 헝가리도 이때 독립국이 되었지만 1920년 Treaty of Trianon 조약에 의해 헝가리는 인구 60% 와 영토 70%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겔레르트 공원에서 내려오다 본 쓰레기더미와 안내판을 Vandalizing한 낙서. 헝가리 시민정신이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지.. 안타깝다.
다뉴브강가를 걷기시작한다. 이 좋은 Trail을 걷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다. 그만큼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여유가 없는것인지,아니면 이 부다쪽 Trail이 별로 인기가 없는 것인지.
나의 시선은 여지없이 국회의사당 건물로 향한다. 바로 앞으로 유람선이 지나간다. 갑자기 2019년 5월 29일 사고가 생각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머르기트(Margit) 다리 부근에서, 한국인들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스위스 크루즈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이다. 당시 탑승자 35명 중 33명이 한국인이었다. 피해자들은 패키지여행으로 헝가리에 가 다뉴브강 야경을 관람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한국인 25명을 포함해 총 27명이 사망했던 사고.
그러나 내눈은 아주 새로운 Miniature 조형물에 꼿힌다. 아니 이것은 Tank가 아닌가? 왜 조그맣게 만들어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강둑에 붙여져 있을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조형물이다. 구글해보니,
This tank symbolizes Hungary's 1956 revolution, as indicated by the bold white letting “Ruszkik Haza!” (“Russian's go home!”) etched on the side of the tank. While the tank is facing Parliament its gun is facing downward to signify the end of the revolution.
이 탱크는 굵은 흰색 글자 "Ruszkik Haza!"로 표시된 것처럼 헝가리의 1956년 혁명을 상징합니다. (“Russian's go home!”)이 탱크 측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탱크가 의회를 향하고 있는 동안 총은 아래를 향하고 있어 혁명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How many Hungaryians died in the conflict with the Soviets?
More than 2,500 Hungarians and 700 Soviet troops were killed in the conflict, and 200,000 Hungarians fled as refugees. Mass arrests and denunciations continued for months thereafter. By January 1957, the new Soviet-installed government had suppressed all public opposition.
소련과의 충돌로 얼마나 많은 헝가리인들이 사망했나?
이 분쟁으로 2,500명 이상의 헝가리인과 700명의 소련군이 사망했으며, 200,000명의 헝가리인이 난민으로 탈출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대규모 체포와 억압이 계속되었다. 1957년 1월까지 소련이 세운 새 정부는 모든 대중의 반대를 진압했다.
저렇게 Miniature 만든 의도는? 현정부의 친러성향과 러시아를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듯하다. 한나라의 생존은 국제정치학에서 이야기 하듯이 정의보다 힘이 앞선다는 것을 빅토르 오르반 수상이 잘 알고있는 것같다. 반소 시민군이 탈취한 소련군의 T-34-85 전차. 1956년 10월 부다페스트의 모리츠 지그몬드 광장(Móricz Zsigmond körtér)
그나저나 저 국회의사당은 뒤에서 봐도 걸작,
앞에서 봐도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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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Hungarian Parliament (Országház)
헝가리의 국회의사당은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로 1896년 건국 1,000년 기념으로 계획되어 1904년에 완공된 국회의사당은 외벽에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으며, 1956년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 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곳으로, 헝가리 민주의회정치의 현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건축 자재, 기술, 인력 등을 모두 헝가리의 것으로 충당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대칭성과 거대한 돔을 특징으로 하는 고딕 복고양식으로 지어졌다. 돔은 네오르네상스 양식. 내부도 거의 완벽한 대칭으로 지어져있는데, 한때 양원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양 편에 거대한 의사당이 2개가 있다.
Gyula Andrássy 동상
(1823~1890)은 헝가리의 정치가로 헝가리 총리(1867~1871)와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외무장관(1871~1879)을 역임했다. Andrássy는 보수주의자였다. 그의 외교 정책은 터키를 소외시키지 않고 영국과 독일의 지원을 받아 동남부 유럽으로 제국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는 슬라브족과 정교회 지역에 대한 팽창주의 정책 때문에 러시아를 주요 적으로 여겼다. 그는 슬라브 민족주의 운동이 자신의 다민족 제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불신했다.Gyula Andrássy
(1823 – 1890) was a Hungarian statesman, who served as Prime Minister of Hungary (1867–1871) and subsequently as Foreign Minister of Austria-Hungary (1871–1879). Andrássy was a conservative; his foreign policies looked to expanding the Empire into Southeast Europe, preferably with British and German support, and without alienating Turkey. He saw Russia as the main adversary, because of its own expansionist policies toward Slavic and Orthodox areas. He distrusted Slavic nationalist movements as a threat to his multi-ethnic empire.8월 20일 국경일 어린이 축제가 시작되었다. 이것도 헝가리 젊은 부모들의 큰 행사인 것같다. 2024년 출생률은 1.54 명이다. The current fertility rate for Hungary in 2024 is 1.548 births per woman,
Farmers' Market 에도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 아이들 세대가 나중에 또 헝가리 노벨상 수상 반열에 오를 것이다.
나는 일부러 젊은 남녀가 파는 빵과 치즈를 샀다. 모두 자기집에서 만든것이라 더 가치가 있어 보인다.
빵과 치즈를 들고 다시 다뉴브강가로 나온다.
세체니 다리가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점심을 여기서 먹는다. 다리옆에서 다리를 보면서 식사하기는 처음이다.
오마이갓! 이건 뭐지?
처음엔 사람을 벗겨놓고 굽는 줄 알았다. 인육을 먹다니... 다행히 식인종은 아니었고.. 그래도 이것은 너무 잔혹한 돼지통구이 시연이다. 채식주의자들에겐 얼마나 혐오스럽게 느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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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체니 온천 (Széchenyi Hotspring)
다음은 세체니 온천까지 걸어간다. 먼거리는 아니다. 엄청 사람들이 많다. 젊은이들도 많고.. 특이한것은 완전 백인들, 흑인은 딱 2명뿐, 아시안은 20명내외다. 세체니 이름이 또 나온다. 세체니다리, 온천... 얼마나 위대한 정치가 였는지 항가리 화폐에도 실려있을 정도다.
Jacuzzi 온도정도로 뜨거운곳도 있고 수영장처럼 미지근한 곳도 있다. 가격은 13000 Huf. 37불이다. 온천의 성분으로는 황산염, 칼슘, 마그네슘, 중탄산염, 불소가 있다. 효능으로는 척추 등에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네오바르크 스타일로 고풍스러움을 물씬 풍긴다. 파란 하늘과 노란 건물이 어우러져서 마치 로마시대의 온천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완전 로마시대 공중목욕탕에 들어온 느낌이다. 1865년부터 1875년까지 Vilmos Zsigmondi는 공원 아래에 깊이 975.36미터(3,200피트)의 구멍을 뚫었다. 이것은 나중에 스파에 공급되는 열수의 원천이 된다. Gyòzó Czigler의 디자인에 따라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건축은 건축가 Eugene Schmitterer의 설계로 1909년 5월 7일에 시작되었다. 두 번째 온천은 1938년에 수심 1,256m(4,121ft), 온도 77°C(171°F)에서 발견되었다.
수영모를 쓰고 들어와야 한다고 엄하게 단속을 해서 Swimming laps 하는 사람들이 다섯명 밖에 없었다. 세체니 온천에 올때는 반드시 수영모를 지참해야 저렇게 깨끗하고 깊은 곳에서 수영할수있다.
불어를 쓰는 관광객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같다. 그다음으로 독어. 특이한 것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아주 적었다.
수백년된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걸어오니 캔터키 프라이치킨점이 나온다. 너무나 목이 말라 콜라를 연거푸게 마시고, 그냥물을 마신다. 이 데리야키 프라이치킨이 어찌나 짜고 단지.. 물만 더 들이키게 만든다. 시킬때 반드시 설탕, 소금을 평소보다 반정도로 줄여달라고 특별주문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 안에 들어있는 쌀밥이 완전히 설어있었다.
부다페스트에는 바르셀로나와 마찬가지로 배달원들이 자주 눈에 띈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간간히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아르바이트로 괜찮은 모양이다. The estimated salary for a Delivery Driver is HUF 291,659 ( 770 USD) per month in the Budapest Hungary area.
오이를 사러 식품점에 간다. 사람들이 엄청많다. 줄이 100미터는 선것같다. 내일이 국경일이라서 그런가. 토마토, 야채봉지, 오이를 사서 간신히 계산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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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0일 화요일. 맑음
부다페스트 한인민박 라온 아침식사. 오늘이 바로 D-day라서 모두들 들떠있다. 오늘 밤에 함께 Fireworks를 보러가자고 자연스럽게 의견을 모은다. 민박집 주인사장이 직접 요리한 한식. 맛있다. 이분의 부인은 헝가리인. 일찍 주재원으로 왔다가 부다페스트에서 정착하신 이민1세. 대단한 개척정신이다.
8월 20일은 헝가리 건국 기념일이다. 헝가리 민족인 머져르족이 헝가리에 처음 정착한 것은 896년이고, 1000년에 성 이슈트반왕이 세례를 받고 헝가리 왕국의 건국을 정식적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헝가리의 건국 기념일은, 3월 15일(오스트리아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1848년 혁명), 10월 23일(소련에 대항해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던 1956년 혁명)과 더불어 큰 기념일 중 하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62GxfHrLY
Budapest Fireworks 2024 - St. Stephen's Day 2024
Budapest, Hungary hosted this grand fireworks & drone show on St. Stephen's Day 20th of August 2024. The event celebrates Hungary's first king and celebrates the foundation of Hungary. St. Stephen's Day fireworks happens on the Danube River with the projection of lights and sound at Parliament, Iconic landmark of Budapest, Hungary.Balaton Lake 에 가는 부다페스트 기차역
24시간 Free ticket을 샀기 때문에 50분동안 다뉴브강가 전철을 타보기로 한다. 그러나 전철이 너무 많이 서쪽으로 가는 바람에 당황하게 된다. 빨리 반대방향 전철을 갈아 탔는데 오마이갓!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너 가는것이 아닌가. 할수없이 내 발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시간이 25분 밖에 안남았다. 뛰어본다. 무단횡단도 해본다. 도저히 열차시간에 댈수없어서 지나가던 Taxi를 세운다. 용케도 이 운전자는 서준다. 내가 Balaton Lake 열차시간에 댈수있냐고 물어보니 시도해보겠다고한다. 엄청 과속을 한다. 뒤에 운전자 아내와 아들이 탔는데도.. 간신히 도착해서 10분 남겨놓고 여유있게 화장실에 간다. 공공 화장실은 모두 유료다. coin이 좀 부족했는데 내가 딱해보였는지 화장실 사용을 허락해준다.
여행의 묘미는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것이다. 기차 승무원이 표 검사를 하고있다. 머리는 빨강머리. 제복을 입은 승무원을 기대했는데..
1시간 45분간의 열차여행이 시작된다. 헝가리 시골은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냥 밀밭, 옥수수밭만 노랗게 익어간다. 일본과 한국 농촌이 훨씬 낫다.
내 나이쯤 되어보이는 60대 은퇴자들. 역동의 헝가리 역사를 그대로 경험한 베비붐세대. 이제 인생의 황혼길로 줄달음질 치듯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드디어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Balaton 호수에 도착했다.
부유층들이 별장(?)으로 사용하는 듯한 가옥들이 Balaton Lake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유럽 최대의 담수호로써 헝가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름 휴양지. 호수가 너무나도 커 헝가리 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호수물이 진흙으로 섞여있어 깨끗하지 않다. 어떻게 이런 탁한 호수에서 수영을 할수있을까? 은퇴지로 Balaton Lake 근처에서 주거하는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엄청 실망한다. 내 눈이 깨끗한 Lake Tahoe로 spoil 된것이라서 그런가...
해변에 나가는 길을 모두 상가로 막았다. 즉 돈을내고 들어 오라는 것이다. 발로 밟혀지는 바닥이 진흙탕이다. 실망이다. 아무리 멀리 들어가도 깊어지지 않는 특이한 호수다. 역시 Lake Tahoe가 최고다. 20분정도 수영하고 샤워하니 몸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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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32도의 더위에 몸을 호수가 공용 찬물로 식히고 점심을 핫도그로 대신한다. 한 젊은이가 국경일날 어머니 포장마차 장사를 돕기위해 나온듯하다. 깊은 시름에 잠긴 듯한 이 젊은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하찮은 일을 하는 것보다 군에 지원해서 애국하고 “ 말뚝” 박을까? 군에 자원입대하자! 라는 문구를 이 젊은이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부다페스트 여러곳에 이런 광고가 나붙었으니…
Budapest 로 돌아올 때는 에어콘이 작동되는 열차를 탄다. 살 것같다. 헝가리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름에는 정말 무덥다. 이 열차에 많은 헝가리 젊은이들이 불꽃축제를 보러 Budapest 로 가고있다. 차창밖에 펼쳐지는 동부유럽의 전형적인 농촌풍경. 이런 환경에서 살고있는 이 젊은이들. 모처럼 수도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나들이 나가는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생각해본다. 저 젊은이들의 몸속에 조상들이 노벨상을 15개나 탈수있게 만든 똑똑한 민족의 피를 이어 받았으리라 생각하니 더 자세히 관찰하게 만든다.
저 앞에 앉아 있는 모녀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부다페스트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모양이다. 저 젊은 아가씨는 열심히 책을 읽고있다. 어머니는 삶의 질곡에 시달렸는지 멍하니 밖만 쳐다보고있다.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파여있다. 대부분 헝가리 아줌마들은 저렇게 몸이 뚱뚱하다. 옆에 딸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비대해질까? 그래도 저 공부하는 아가씨를 보니 헝가리 미래가 밝아보인다.
헝가리는 국토의 5%만이 산악지대이며 나머지는 해발고도가 낮은 평야지대이다. 가운데 파란 호수가 Balaton Lake이다.
실제로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농장을 보면 헝가리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바로 해바라기 밭이 아닐까한다.
헝가리 분지는 농업에 최적의 환경으로 주요 농산물은 밀, 해바라기오일, 옥수수, 사탕무, 비트등이 있다.
5시에 민박집에 도착해서 4명이 함께 Fireworks 를 보러간다. 그중 한 남자는 Cisco에서 근무한다는 젊은이. 모두가 세계여행을 많이해본 똑똑한 한국 젊은이들이다. 나를 이렇게 젊은이들 사이에 끼워줬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주 유명한 피자집에 간다. 그러나 이미 만석. 다른곳으로 가본다. 괜찮다. 메뉴상으로는 화려하지만 헝가리 전통음식이 너무 짜다. 반드시 주문할때 소금 아주 적게 넣으라고 꼭 말해야한다.
굴라쉬 (가운데 작은 그릇) 를 먹어본다. 우리나라의 육개장 맛으로 공기밥이 생각나게 하는 헝가리 정통 음식이다. 음식값이 산호세 음식값과 비슷하다. 결코 헝가리 관광지 가격은 싸지않다. 내가 한국 젊은이들의 세금을 그대로 연금으로 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돈을 내가 낸다. 아버지 뻘인 구세대를 초청해서 Fireworks를 함께 보기로 한것만으로도 고맙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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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24년 8월 20일 성 이슈트반의 날, 대규모 불꽃놀이 및 드론 쇼가 시작되었다. 지하철이 완전 콩나물 시루이다. 모든 관광객들이 도나우강가로 몰려들고있다. 특히 국회의사당 건너편은 완전히 교통이 마비되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행사는 헝가리의 첫 번째 왕을 기념하고 헝가리 건국을 축하하는 행사. 성 이슈트반의 날 불꽃놀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상징적인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 앞에서 빛과 소리의 웅장함으로 다뉴브강가에 모인 군중들에게 헝가리의 위대함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헝가리 이슈트반 왕의 왕관은 헝가리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이자 헝가리의 성인. 여러 부족 국가가 난립하던 헝가리를 통합하고 진정한 가톨릭 국가로 이끌어낸 인물이다.
헝가리의 1만포린트 지폐의 도안이며 그의 왕관은 헝가리의 국장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매년 8월 20일 그의 시성일은 헝가리 건국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성 이슈트반 대성당 역시 이 인물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 이 대성당에는 이슈트반 1세의 오른손으로 알려진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Hősök tere) 14인의 동상 위인 중 1명이며, 그의 동상은 헝가리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베토벤의 모음곡 '슈테판 왕'이 이슈트반 1세를 모티프로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란스라이타니아(Transleithania)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중 헝가리가 지배하던 지역을 의미한다.
공식 명칭은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관령(A Magyar Szent Korona Országai)이다.1867년 ~ 1918년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오스트리아가 삼제 회전 등에서 계속 패배했다. 나폴레옹이 퍼뜨린 혁명으로 헝가리인들은 격렬한 분리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1848년 오스트리아에서 '빈 체제'에 항거한 3월 혁명이 일어나고 새 황제가 즉위하자 헝가리인들의 저항은 더욱 고조되어 코슈트 러요시의 주도 아래 부다페스트와 데브레첸에서 반오스트리아 혁명을 일으켰다. 이 때 헝가리 혁명군은 오스트리아군을 연달아 격파하며 분리에 거의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역시 소수 민족의 공격을 받던 러시아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거대한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많지 않은 오스트리아인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억누를 수 없었다. 헝가리인들도 오스트리아인만큼 많았고 다른 민족도 여기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결국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전한 뒤 오스트리아 정부는 방침을 전환해 헝가리인들에게 공동의 제국을 제안했다. 대타협의 결과 헝가리인들은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고 독립적인 정부와 의회 등을 구성하는 대가로 오래 전에 헝가리 공주와 결혼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머나먼 후손인 현재의 황제(당시의 황제는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왕으로 인정하여 이중 제국이 출현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등장했고 이렇게 헝가리인들은 비록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왕으로 모셨지만 분리된 왕국을 만들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통제되었다. 우리는 간신히 자리를 펴고 있는데 맥주를 한켄씩 더 마시고 싶어들해서 내가 수고를 한다. 구멍가게에 줄이 20미터나 길게 났다. 모두들 축제로 상기된 표정들이다. 30분이나 기다려 간신히 그렇게 차갑지도 않은 맥주를 4캔 사온다. 그동안 엄청난 인파가 몰려 우리는 다뉴브강가로 자리를 옮긴다. 9시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방송에서는 지금 천둥번개가 시작되어 10시까지 연기하겠다고..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한시간 더 기다린다.
10시 정각 멋진 쇼가 시작된다. 웅장함, 거대함, 장엄함, 모든 묘사가 다 동원되어도 힘들다. 이렇게 헝가리는 위대한 나라가 된것이다. 저 앞 키큰 흑인녀석이 경치를 막는다.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젊은 여자가 이 사람한테 가서 따진다. 고개를 숙이던지 내려오라고... 내려올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Drone 으로 사슴, 왕관, 십자가를 그리며 등장한 후 “기적의 나라 헝가리” 를 틀어주며 볼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거의 30분 가까이 불꽃놀이가 진행되었고 마지막엔 헝가리 국가인 Himnusz를 부르면서 끝을 낸다.
왜 헝가리인들은 왕관 (가운데 사진)을 신성시 할까? 아마 헝가리인들은 유럽제왕들과 같이 동등한 왕권의 제국이었다는 것을 국민들한테 심어주려는 것같다. 잠시나마 Austro-Hungarian Empire 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돌아올때는 군중들의 위험을 피하기위해 경사진 계단은 통제했다. 한국의 이태원 압사사고를 잘 아는듯 안전사고에 철저히 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62GxfHrLY
Budapest Fireworks 2024 - St. Stephen's Day 2024 - 4K
Budapest, Hungary hosted this grand fireworks & drone show on St. Stephen's Day 20th of August 2024. The event celebrates Hungary's first king and celebrates the foundation of Hungary. St. Stephen's Day fireworks happens on the Danube River with the projection of lights and sound at Parliament, Iconic landmark of Budapest, Hungary.https://namu.wiki/w/바이에른의%20엘리자베트%20여공작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https://www.youtube.com/watch?v=04r5XVEgn0Q&t=1s
Franz Joseph I - The Father of Austria-Hungary I WHO DID WHAT IN WW1?https://www.youtube.com/watch?v=jL2idDuRpFw
Why is Hungary called Asia in Europe? (Summary of Hungarian History)https://www.youtube.com/watch?v=4gYN7ndXJZU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찬가 (Kaiser Hymne)https://www.youtube.com/watch?v=xKiRmesHWIA
The Rise and Fall of the Austro-Hungarian Empirehttps://www.youtube.com/watch?v=PTkgFak2gi4
How Did the Austro-Hungarian Empire Actually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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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7 일 토요일. 맑음
Discover this 11.6-mile loop trail near Budapest, Budapest. Generally considered a moderately challenging route, it takes an average of 3 h 37 min to complete. An interesting and popular city walk in Budapest. On this great tour along the Danube in Budapest, we pass by the capital's most famous and significant attractions. The starting and ending point of this tour is the National Theater next to the Rákóczy bridge. From here, we walk over the Danube and continue along the coast, visiting many famous sights until we reach Margit Island. Arriving at Margitsziget, we can get to know a very special place in the heart of Budapest. This is an ideal place to relax.
부다페스트 11.6 마일 순환 트레일 - 일반적으로 다소 도전적인 경로로 간주되며 완료하는 데 평균 3시간 37분이 소요된다. 이 트레일은 부다페스트의 흥미롭고 인기 있는 도시 산책로다.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을 따라 펼쳐지는 이 Trail Highlights:
- Margaret island
- University Quay
- Freedom Bridge
- Gellért hill
- View of Buda Castle
- Parliament
- National Theatre
첫날부터 그 유명한 다뉴브 강가 Trail을 걸어보면서 헝가리를 경험해본다. 우선, 헝가리는 왜 노벨상을 이렇게 많이 수상하고도 그렇게 자랑하지 않는지? 겸손한 국민들인지? 아니면 노벨상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알아 보기로했다.
헝가리인은 1905년 이후 15개의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헝가리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 수는 더 많다.
헝가리계 노벨상 수상자: 18명
헝가리 출생의 노벨상 수상자: 12명
헝가리 시민이었던 노벨상 수상자: 4명
헝가리에 뿌리를 둔 많은 노벨상 수상자 중 다수가 다른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상을 받았다. 이는 헝가리 "두뇌 유출"
The American Hungarian Federation - Founded 1906. Did you know… Hungarians have won an astounding 18 Nobel Prizes! The Nobel Prizes are the most prestigious awards given for intellectual achievement in the world.
미국 헝가리 연맹(1906년 설립) 발표.- 헝가리인들은 놀랍게도 18개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은 지적 성취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수여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이중 물리학상 4명, 화학상 5명, 의학상 4명, 문학상 1명, 경제학상 1명... 대단하다. 인구 1000만명 헝가리가 이렇게 똑똑한 나라일 줄이야!
2002년 헝가리에선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운명, Sorstalanság」
임레 케르티스(Imre Kertész),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인 그는 1944년 15세 소년으로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고, 그 후, 1975년 나치의 강제 수용소 체험을 다른 소설 '운명'을 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헝가리 내에서도 노벨상 수상 전에 그의 이름조차 모르던 이들도 많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국민들의 어안이 벙벙했다는 얘기도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려면 이런 전쟁과 같은 극적인 주제가 유리한 것 아닌가 한다. 또한, 현대 컴퓨터 기초원리를 만든 존 폰 노이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 실라르드와 에드워드 텔러 등이 모두 헝가리 출신이다. 헬리콥터 프로펠러와 볼펜, 성냥 등이 개발된 헝가리는 '발명의 나라'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학계에서는 정부 예산의 10% (한국 5.1%) 를 교육에 투자하고 정답보다는 풀이 과정의 창의성을 중시한 헝가리의 교육 정책이 이 같은 성과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가 구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이면서 유능한 인재들이 해외로 대거 유출되고, 창의적인 교육 전통이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노벨상 수상자 출신 국가별 순위도 14위로 올랐다. 한국은 어떤가? 31개를 받은 일본을 언제 따라 잡을지.. 문학상도 3개나 받은 일본..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일본이다.
내 머리속엔 노벨상이었는데 정작 Trail을 돌면서 또 하나 놀라운 것이 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건축물들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몇백년된 건축물들이 장엄하고, 아름답고, 세련되어있을까?
헝가리 하면, 국회의사당 건물을 먼저 언급한다. 정말 놀라울정도로 멋진 건물이다. 건축가 임레 슈타인들 (Imre Ferenc Károly Steindl) 이 설계하였고 고딕복고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02년에 정식으로 개장하였다.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부더, 오부더, 페슈트, 이 3개의 도시가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이다. 행정구역을 통합한 지 약 7년 후, 의회는 국가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하여 새로운 국회의사당 건물을 짓기로 결의하였고, 다뉴브강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국회의사당을 짓기로 합의하였다. 새 국회의사당을 짓기 위한 국제 공모전이 열렸고, 이 공모전에서 임레 슈타인들의 안이 뽑혔다. 이 공모전에서 최종 검토 단계까지 갔던 나머지 2개의 설계안들도 헝가리 농업부와 민족학 박물관의 설계안으로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885년에 임레 슈타인들의 건축설계도에 기반하여 공사가 시작되었고, 1896년에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완공되어 개방될 예정이었으나 1904년에 이르러서야 공사가 끝났다. 한편 임레 슈타인들은 국회의사당이 완공되기 전에 눈이 멀었고, 결국은 공사의 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대략 10만 명의 인부가 국회의사당 건설에 동원되었고, 4천만개의 벽돌, 50만 개의 보석들, 40킬로그램의 순금이 이 국회의사당을 짓는 데에 들어갔다.
도대체 설계를 한 슈타인들은 어떤 인물일까? 무척 궁금했다. 솔직히 노벨 건축학상을 준다면 당연히 Steindl이 차지했을 것이다.
임레 페렌츠 카롤리 슈타인들(Imre Ferenc Károly Steindl, 1839 – 1902)
Steindl은 헝가리 의회 건물의 설계자이자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의 부교수였다. 19세기 말경, Miklós Ybl 및 Frigyes Schulek과 함께 Steindl은 성 스테판 왕가의 땅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부다페스트의 헝가리 국회의사당(Orszáz)은 수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Steindl은 부다페스트 공과대학과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그의 건축학적 관심은 처음에는 낭만주의 역사주의, 그 다음에는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이었다. 그는 다뉴브 강의 Pest 강둑에 세워진 고딕 복고 양식 건축물의 예인 헝가리 국회의사당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의 다른 뛰어난 작품으로는 부다페스트의 성 엘리자베스 교회, 코시체의 성 엘리자베스 대성당 재건축 등이 있다. Steindl은 1904년 헝가리 의회가 완공되기 전에 시력을 잃었고 1902년 부다페스트에서 생을 마쳤다.
Imre Ferenc Károly Steindl (29 October 1839 – 31 August 1902) was a Hungarian architect.
Steindl was the designer of the 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an associate professor and correspondent of the Hungarian Academy of Sciences. Around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long with Miklós Ybl and Frigyes Schulek, Steindl was the most significant architect within the lands of the Crown of Saint Stephen. His most famous work, the 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Országház) in Budapest, is regarded as a symbol of the capital city. Steindl graduated from the Technical University of Budapest and the Academy of Fine Arts Vienna. He was a teacher at the Budapest Technical University from 1869. He was elected honorary and corresponding member of the 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 in 1891 and was admitted to the Hungarian Academy of Sciences in 1898. His architectural interest was initially romantic historicism, then Renaissance and Gothic style. He is most famous for the Hungarian Parliament Building, an example of Gothic Revival architecture erected on the Pest bank of the Danube, but his other outstanding works include the St Elisabeth Church in Budapest as well as the reconstruction of the St Elisabeth Cathedral in Košice and the Hunyadi Castle. Steindl went blind before the completion of the Hungarian Parliament in 1904 and died in 1902 in Budapest.
어떻게 헝가리는 이렇게 역사적인 건축물과 함께 15개의 노벨상을 받을수있었을까? 분명히 거기에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같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타이틀 중 으뜸 되는 것이 ‘노벨상의 나라', '발명품이 많은 나라'이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전 세계 랭킹 13위를 차지한다. 헝가리 출신 중 망명자, 이민자 등을 포함하면 20명이 넘는다고도 한다. 한국의 1/5, 전체 인구 약 천만 명이 안 되는 헝가리에서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를 앞서가는 수치이다. 1880년~1920년대 헝가리에서 노벨상 수상자 7명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인재들이 태어나면서다. 당대 '헝가리 현상'을 대표하는 인물이 현대 컴퓨터 기초 원리를 만든 존 폰 노이만,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 실라르드와 에드워드 텔러 등이다. 학계에서는 전체 예산의 10%를 교육에 투자하고 정답보다는 풀이 과정의 창의성을 중시한 헝가리의 교육 정책이 이 같은 성과의 토대가 됐다고 풀이했다. 지금도 헝가리는 의학과 수학,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이 발달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1920년대 말 헝가리의 생화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orgyi)가 괴혈병의 치료제로 비타민씨를 발견하였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외에 최초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디자인 및 개발 (Oszkár Asbóth 1928년 시험 비행), 볼펜(Lásszó József Biró 1943년, 그의 생일인 ‘9.29일’이 발명가의 날), 성냥(Jábos Irinyi 1895년), Rubik Cube (Ernő Rubik 1975년), 컴퓨터 기초 원리(John von Neumann 1945년) 등이 헝가리인들에 의해 개발된 것들이다. - 주헝가리 대사관.
'헝가리 광시곡'을 만든 피아노의 거장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 코다이 음악 교수법으로 유명한 졸탄 코다이, 벨러 버르톡, 리게티 죄르지 등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유명 작곡가들이 모두 헝가리 출신이다. 시카고 디자인 스쿨을 창설한 모호리 나기, 세계적인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즈,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 등도 마찬가지다. 기초과학과 문화의 발전은 현대 문명의 결실로 이어졌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소련의 20만 병력에 진압되면서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유출되기도 했다. 당시 약 20만 명의 지식인과 유력 인사들이 해외로 망명했고,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과학기술자들도 조국을 등져야 했다. 1920년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헝가리는 아주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문화부 장관의 획기적인 교육정책 (정부 예산의 10%를 교육에 투자하여 교육 기회와 시설 확대)의 효과가 이렇게 크게 작용했다. 수상자 대부분이 유대인인 것도 한 특징이다.
한국 부모들도 이를 모를일이 없다. 의학, 기초과학 분야의 발달로 자녀들을 헝가리로 유학 보내기 시작했다.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헝가리 의대, 치대, 약대에서 수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이 8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민박집 주인말에 따르면, 의대 1년에서 2년으로 올라갈때 벌써 50% 가 낙제한다고 한다. 그만큼 졸업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기때문에 영어 소통이 완벽해야 하고, 졸업이 매우 힘든데 이는 헝가리에서 자란 Native에게도 매우 어려워 헝가리에서도 의대는 최상위 엘리트만 간다고 한다. 물론 졸업하고 면허취득하면 EU국가 안에서 자유로이 의사로써 활동이 가능하다.그래도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헝가리에 투자이민으로 들어오고있다. 교민현황 : 4,544명(2021)
헝가리 2024 년 3 월 1 일 부터 적용 되는 유럽 거주증, 새로운 이민 정책 달라진 점은,
1. 최소 25 만 유로 투자시 10 년 거주 가능한 친화정책
2. 해외인력 전문직 환영 , 비 전문직 어렵게 만드는 정책
3. 동반자 및 가족 이주 비자 힘들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