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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항공의 추억-- 읽으면서 하하 웃었네요.

by 미셀 posted Oct 13, 2015 Views 5114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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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J와 나는 하와이 여행길에 올랐다. 하와이안 항공은 처음이었다. 교포로 보이는, 한국말이 서툰 스튜어디스가 한 명 있었고 나머지는 다 미국인 승무원들이었다. 비행기에 올랐는데도 도무지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꽤 지체되었을 것이다. 밤 비행기였고 J와 나는 일찌감치 잘 준비를 하고 담요를 뒤집어썼다. 그래도 영 소식이 없더니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체에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는 또 한참이 지나 안내방송이 나왔다.

“고치고 있습니다.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려면 전원을 껐다 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일단 내려주셔야 합니다. 가방과 소지품을 모두 챙겨서 일단 내려주세요.”

우리는 막 짜증을 부리며 내렸다. 이놈의 비행기는 도무지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그마치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길지도 않은 휴가 일정에 하루가 다 날아갈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폭발했다.

하지만 이건 하와이안 항공.
대한항공이 아니었던 거다.

대한항공 하와이안 항공

게이트에는 하와이안 항공의 한국인 직원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도대체 비행기가 가긴 해요? 이게 지금 몇 시간째예요? 언제 출발해요? 그럼 그들은 유유자적 대답했다.

“모릅니다~!”

사람들이 더 흥분했던 건 대한항공처럼 나긋나긋,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직원들의 태도 때문이었을 거다. 떼로 몰려가 직원들에게 화를 냈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언제 다 고칠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지. 거기 있는 직원들이 어떻게 알겠어. J와 나도 신경질이 나서 십 분에 한 번씩 직원들에게 쫓아갔다.

“저기요. 비행기 가기는 하는 거예요?”
“그러겠죠.”

“아니, 그렇게 대답하시지 말고 뭔가 조치를 해주셔야 하는 거 아녜요?”
“어떻게요?”

“그걸 저희한테 물으시면 어떡해요?”
“그럼 전 누구한테 물어요?”

“하와이안 항공은 매뉴얼 같은 것도 없어요?”
“무슨 매뉴얼이요?”

“비행기가 못 가고 있을 땐 승객들한테 이렇게 이렇게 대처한다, 그런 매뉴얼도 없어요?”
“있습니다! 지금 매뉴얼 대로 하고 있고요~.”

뭐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약이 올라 그 밤에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막 하소연을 했다. 친구가 까르르 웃었다.

“야. 하와이안 항공 짱. 걔네들 멋있다. 우리 같으면 거기서 죄송하다고 무릎 꿇었을 거야.”

사람들의 항의에 하와이안 항공 한국 지사장이 나왔지만, 그는 더 시크했다. 사람들은 ‘이러다 비행기 타겠느냐’고, 배상을 요구했다. ‘당장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네에~ 가실 분들은 가세요~ 비행기 표는 환불해드립니다~ 가세요~!”

미국인 기장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물론 영어였다.)

“어디가 고장 났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더 기다려 주세요.”

직원들은 주스와 빵을 가지고 나왔는데 J와 나는 한참 직원에게 짜증을 낸 터라 배가 고팠지만, 빵을 가지러 갈 수가 없었다. 민망했으니까.

“아까 괜히 화냈다. 배고픈데.”
“그냥 슬쩍 가져올까? 모른 척하고?”

다시 기장이 나왔다.

“여러분, 굿 뉴스입니다!”

굿 뉴스, 라는 영어를 알아들은 승객들이 미리 환호했다. 짝짝짝 손뼉을 치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국인 기장이 계속 떠드는데 J와 나도 짐을 챙겼다. 지사장이 급하게 마이크를 받았다.

“지금 여러분들이 굿 뉴스란 말에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 다 고쳤다는 말이 아니고요. 어디가 고장 났는지 이제 찾았답니다. 지금부터 고칠 테니 기다리세요.”

정말 공항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벽이었고 졸렸고 이미 여섯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지. 이거 우리 보상받아야 하는 거야. 미적거리다간 아무 보상도 못 받아. 이거 다른 항공사 같았으면 난리 났어. 돈으로 달래야지. 안 그래요? 쟤들 지금 우릴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고.”

J와 나는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만사 귀찮았다. 그때 우리에게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왔다.

“이봐요, 젊은 엄마들. 이럴 땐 젊은 엄마들이 나서줘야 해. 자기들이 그래도 우리보단 똑똑하고 말도 잘할 거 아냐.”

스트레스 지수 급상승. 안 그래도 남들 신혼여행지로 간다는 하와이를 우리 둘이 간다고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데. 젊은 엄마들이라니. 우리는 그냥 아, 네네, 그러고 말았다.

결국, 비행기는 정비가 끝났고 J와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직원들에게 “고맙습니다~”,“수고하셨어요~” 활짝 활짝 웃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짜증을 낸 것도 미안했고 빨리 와이키키 해변으로 날아가 모래밭을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또 출발하지 못했다.
뜻밖의 사달이었다.

바로 우리 자리 통로 건너편 젊은 아줌마 때문이었는데,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탄 아줌마였다.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지쳐 보였다.

아줌마: 이거 보세요. 지금 우리 애가 거의 탈진이에요. 어쩌실 거예요?
교포승무원: 뭘요?

아줌마: 애가 아프다고요.
교포승무원: 그래서요?

아줌마: 당신들이 우리 기다리는데 담요도 안 줬잖아요. 그러니 애가 열이 나요, 안 나요?
교포승무원: 달라고 하시지?

아줌마: 그런 건 그쪽에서 챙겨야 하는 거 아녜요?
교포승무원: 추운 줄 몰랐는데요?

아줌마: 얘 어쩔 거예요?
교포승무원: 뭘요?

아줌마: 그러니까, 당신들 때문에 애가 이 지경이 됐으니까 애를 좀 케어해 달라고요.
교포승무원: 어떻게요?

아줌마: 애가 아프다니까요!
교포승무원: 그런데요?

진짜 이 대화를 삼십 분 넘게 하고 있는 거였다. 우리는 진정 옆에서 통역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는요, 지금 비즈니스석으로 옮겨달라고 하는 거예요, 승무원님.”

하지만 통역을 해드릴 수야 없었으므로, 의도가 빤한 아줌마와 눈치 없는 승무원님은 계속 저런 대화만 하고 있었다. 사무장 미국 승무원도 왔다.

미국승무원: 왜? 무슨 일?
교포승무원: 애가 아프대.

미국승무원: 그런데?
교포승무원: 케어해달래.

미국승무원: 어떻게?
교포승무원: 몰라.

듣는 우리는 진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정말 하와이 좀 가보고 싶었다.

미국승무원: 아줌마. 어떻게 케어해달란 거예요?
아줌마: 애가 아프잖아요!

미국승무원: 그런데요?
교포승무원: 여기 서서 애를 쳐다봐 달라고요?

아줌마: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아이에게 더 편한 장소를 제공해달라고요!
교포승무원: 어딜요?

아줌마: 그러니까요! 좀 찾아보라고요!
미국승무원: 이 여자 뭐라는 거야?
교포승무원: 몰라.

급기야 기장님 출동.

기장: 왜 그래요?
교포승무원: 애가 아프대요.

기장: 그런데요?
교포승무원: 그러게요.

아줌마: (자기도 지침)

미국승무원: 여기 서서 우리가 애를 봐 줘요?
아줌마: 그게 아니고요…

교포승무원: 그럼요?
아줌마: 애를 좀 케어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이쯤 되니 주변의 승객들도 짜증이 폭발했다. 거 참, 그냥 비즈니스석 달라고 대놓고 말을 하던가. 그러면 그 옆의 아줌마들이 또 투덜댔다.

“어머, 지들만 힘들었나. 저 여자만 비즈니스 주면 안 되지. 그럼 우린? 그러게 말이야, 웃겨. 아, 고만하고 출발 좀 합시다!”

정말 웃겨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우린 지쳐서 이제 비행기가 가든 말든 더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냥 여행 취소하고 단골 소줏집에나 가고 싶었다.

기장: 아기가 많이 아파요?
교포승무원: 아기가 아프네요.
아줌마: 네.

교포승무원: 그렇대요.
기장: 그럼 내리세요.
교포승무원: 아줌마 내리래요.
아줌마: 네?

기장: 우린 아픈 사람 못 태워요. 의사 없어요.
교포승무원: 여기 의사 없어요. 내리래요.
아줌마: 무슨 소리예요?

기장: 빨리 내려요. 우리 출발해야 해요.
교포승무원: 우리 출발해야 한대요. 빨리 내리래요.
아줌마: 아니… 지금 보니 좀 나아진 거 같아요.

교포승무원: (기장에게) 안 아프대요.
기장: 그래도 걱정돼요. 내려요.
교포승무원: 그래도 내리래요.
아줌마: 아뇨, 그냥 갈게요. 일 보세요.

기장: 그럼 각서 써요. 애한테 문제 생겨도 딴말 없기.
교포승무원: 각서 쓸래요?
아줌마: 네.

그래서 우리는 출발했다.

HAWAIIAN AIRLINES AIRBUS A330

HAWAIIAN AIRLINES AIRBUS A330

하와이는 날씨도 좋았고 우리는 보상 차원으로 하와이안 항공을 다시 탈 때 180달러를 깎아준다는 바우처를 받았지만, 그냥 버렸다. 자그마치 여섯 시간을 손해봤지만, 뭐 괜찮았다. ‘램프리턴’(항공기가 활주로로 가던 중 탑승구로 돌아가는 것)은 그럴 때 하는 거다. 비행기가 고장 났을 때. 애가 아플 때. 비행기에 의사도 없을 때. 단 각서 쓰면 안 내려도 된다.


http://slownews.kr/34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