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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0> 한강의 작품과 기억에 대한 소고(小考)

 
 
최근에 있었던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여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임에도 폭력에 대해서 온 몸으로 아파하면서 거부하고 저항했던 그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광주 5.18과 제주 4.3의 아픔을, 무섭고 떨리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린 감성으로 치열하게 그려내야 했던 그녀. 
 
그 폭력이 국가가 행한 것이든 개인이 행한 것이든, 그것을 감내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또 아팠으면, 그녀는 <채식주의자>에서 폭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주인공 영혜가 차라리 나무가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는 것으로 소설을 그려냈을까? 
 
그리 멀리 보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폭력에 무감각함을 보이다가 그 폭력을 오히려 옹호해 버리는 사람들, 그런 처지를 위해 기억까지도 기꺼이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진실을 마주하지도, 수용하지도 않고, 더 나아가 기억까지 왜곡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최근에 뇌과학의 권위자인 박문호 박사의 기억에 대한 강연을 통해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았다. 
 
사람들이 기억의 왜곡을 쉽게 감행하는 것은 사건의 “사실성”보다는 개인의 “일관성 (혹은 정체성)”을 지키려는 무의식적인 성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태도나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자신이 동일시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실제 경험한 사건조차도 기꺼이 자신의 입장에 맞춰서 변경을 한다는 것. 이처럼, 보통 사람들한테는 이 “일관성"의 원칙이 “사실성"을 더 압도하는 경향이 있는 관계로, 특정 사건에 대한 기억을 채색하거나 왜곡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가끔, 양심이 강하거나 진실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억을 자신의 입맛에 맞춰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과거 사건을 기억하려 한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알면, 이렇게 일관성의 원칙에 따라 기억을 각색하는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지는 못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해 나가야 하는 오래된, 우리 인류의 습성에서 비롯됐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다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나가려면 이런 낡은 생존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도 길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딴은, 한 사람의 위대함은 진실과 마주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떳떳하게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으니까.
 
마침, 폭력으로 얼룩진 우리 인간사의 아픈 과거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희생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 아픔을 시적 산문으로 “진실되게" 표현하고 공유하려고 했던 한 강 작가의 작품들이 최근 노벨상 수상과 함께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감수성이 여린 사람이 오히려 인류사적 비극에서 빚어지는 크나큰 고통을 짊어지고 "진실"을 표현해낸 그 강직한 힘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노벨상 위원회는 바로 이점을 수상의 이유로 직시한 것 같다. 
 
이 연약하면서도 강직한 여성 작가가 한국의 문화 위상을 한 단계 높였듯이, 우리 인류도 생존에 매달리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용기와 강직함으로 진실을 향해 나아 갈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존재로 부상하기를 꿈꿔 본다. 
 
그 부상을 위해 오늘 그녀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한강 작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