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1월 16일 트레킹 10일차. 드디어 틸리쵸 호수 (4919m, 16138 ft) 로 가는 날이다. 우리는 새벽 동틀 무렵 베이스 캠프 (4150m) 를 떠나 호수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베이스 캠프에서 호수까지는 4 시간쯤 걸리는데 되도록이면 호수에는 이른 오전 시간에 당도하는 것이 좋다. 정오가 가까와지면 거센 골바람과 심한 계곡 안개 때문에 호수까지 가서도 호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얼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햇살 받기 시작하는 Kangshar Kang (7485m) 과 거대한 빙하곡을 배경으로 한 컷. 오늘 아침 또한 축복 받은 날씨.
(02) 길이가 10 Km에 이르는 건너편 대장벽 (Grand Barrier) 에 수십 미터 두께로 붙어 있는 새하얀 눈들이 마치 먹음직스러운 아이스크림 같다. 이 대장벽을 쳐다보며 오르고 또 오르건만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길동무와 나는 엊그제 Ice Lake (4600m) 산행으로 고소적응이 되어 있어 오늘 오르막은 한결 수월하다. 두루님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포터인 부번이 고소증으로 인한 두통이 생겨 중도에서 오던 길을 도로 내려 갔다. 네팔 사람이라고 고소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산행 당시의 몸 상태 그리고 적응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고소증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03) 틸리쵸 호수는 이번 안나 서킷 트레킹을 계획하면서 내가 가장 눈독을 들였던 곳이다. 이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라는 것도 매혹적이지만 이 호수까지 오르내리면서 볼 수 있는 경치는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극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 극찬들은 틀리지 않았다. 저 멀리 마나슬루까지 이어지는 마르샹디 계곡의 장관도 그 많은 숨막힘 중의 하나였다.
(04) 틸리쵸 호수까지 이제 “35분” 밖에 안 남았다는 우리에게 무척 위안이 되는 팻말. 근데 “30분” 이면 “30분” 이지 “35분”은 또 뭔가? 누구의 척도로 이렇게 정확한 시간을 재어서 표시해 놓았을까? 하긴 네팔의 표준시간 (time zone) 도 시차를 한 시간 단위로 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시차가 “45분”이다. 암튼 우리는 여기서 호수까지 한 시간도 더 걸렸다…ㅌㅌ
(05) “35분” 이 벌써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눈밭을 오르고 있었다. Ice Lake 산행에서도 그랬지만 “네팔 시간”은 두어 배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여기서도 단단히 얻었다. 근데 이 뷰 좀 보소…네팔 사람들은 이런 경치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걷기만 하는 것인지... 우리야 자주 이런 풍경에 멍해져서 한참을 서 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 밖에…
(06) 길게 드리워진 오색의 타르쵸 뒤로 새파란 틸리쵸 호수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와우~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4920m, 16141 ft) 에 있다는 그 천상의 호수에 마침내 이른 것이다. 또한 태어나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도까지 올라온 것이다.
(07) 틸리쵸 호수를 만나며 우리는 혼자서 그리고 어깨동무로 한동안 여기저기에서 괴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어려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성취감과는 별도의 기쁨과 감격이 우리 가슴에 꽉 차 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대단히 흥분된 얼굴과 마음. 틸리쵸 호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곳이었다.
(08) 틸리쵸는 길이가 4 Km, 폭이 1 Km가 더 되는 상당히 큰 호수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하얀 눈산들을 배경으로 하는 더없이 곱고 파란 물빛은 깊숙한 고산의 고요함과 더불어 걍 우리의 혼을 빼앗고 마는 듯 했다. 우리는 호수 전망터에 나란히 앉아 마치 이 세상 최고 분위기의 커피숍에서인양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 신묘한 호수를 만끽하고 또 만끽했다.
(09) 호수가에서 꽤 오래 머물렀지만 여전 선뜻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하산길에 올랐다. 푸르른 틸리쵸 호수 그리고 이어지는 백설의 천지.. 산을 내려가는 우리들의 마음도 호수처럼 푸르고 흰눈처럼 순백했다.
(10) 아~ 이 황홀경을 두고 어떻게 내려 가노.. 동심이 된 이 두 아지매들. 걍 설원에 벌렁 드러 눕는다.
(11) 설원의 끝자락부터는 또 “Landslide Area”. 길 오른쪽은 수십길 낭떠러지다. 하지만 이런 길도 이제는 아름다운 경치에 더해지는 양념 같은 스릴. 황홀경에 취하니 간뎅이도 붓는다…
(12) 설원 끝자락에 간신히 나 있는 맨땅 내리막길을 조심 조심 내려 가는데 무거운 짐을 진 한 무리의 포터들이 힘겹게 길을 올라오고 있다. 어제 만났던 독일팀의 포터들이다. 이 팀은 야영하면서 트레킹을 하는 터라 텐트와 취사장비, 심지어 철제 식탁까지 포터들이 메고 다녔다. 이런 훌륭한 자연을 가진 네팔 사람들이 구경 온 이방인들을 위해 이런 무지막지한 고생까지 감수해야 하는 현실…몇 해전 다녀온 몽블랑 트레킹이 떠올랐다. 거기 사람들은, 특히 스위스의 산간지방 사람들은 그들의 자연을 자산으로 그처럼 편안하고 풍족하게 살고 있지 않던가… 아~ 불공평한 세상…
(13) 얼마 안 되는 돈 (네팔 사람들에게는 큰 돈이지만) 때문에 쌩고생 하는 포터들을 비롯한 네팔 사람들의 빈곤한 생활상은 트레킹 동안 우리의 마음을 자주 무겁게 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다 잠시 쉬고 있는 이 포터들에게 길동무가 간식을 좀 나누어 주려 했다. 근데 그들이 정작 원하는 것은 간식이 아니라 돈도 들지 않는 물이었다. 남의 짐을 위해 자신들이 마셔야 할 물조차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14) 점심 때를 훨씬 넘겨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달게 낮잠을 자던 이 주방장들이 불평없이 일어나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주었다. 고마움에 베이스캠프를 떠나기전 동포들과 함께 한 커트.. (나와 길동무의 외모는 이즈음에는 이미 완벽한 네팔 사람이 되어 있었다.)
(15) 오늘 여정은 다시 그 무시무시한 Land Slide Area를 지나 Siri
Kharka 롯지까지 돌아가는 것이다. 무척 고된 산행 후였지만 모두들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틸리쵸 호수 트레킹이 주었던 기쁨은 쉽사리 식지를 않고 우리에게 더 많은 에너지와 자신감을 주고 있었다.
(16) Land Slide Area를 무사히 지났다. 한 번 경험해 본 길이라 오는 길은 훨씬 부담이 적었다. (물론 간뎅이도 많이 부어 있었고..)
(17) Siri Kharka 롯지가 가까워 온다. 오늘은 이번 트레킹에서 하나의 큰 관문을 통과했다. 우리 모두에게 오래 간직될 값진 추억일 것이다. 내일부터는 안나 서킷 트레킹의 최대 난관이라는 쏘롱라 패스를 향해 갈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헤어져야 할 그 동안 정 들었던 마나슬루 산군과 피상 Peak에게 감사의 작별 인사를 보내 본다.
(18) Siri Kharka 롯지에서 잠을 충분히 자고 다음 날 늦은 아침 출발했다. 잠시후 틸리쵸 호수, 야크 카르카, 캉사르의 세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우리는 쏘롱라 패스 가는 길에 있는 야크 카르카 (Yak Kharka) 쪽으로 가야 한다. 현판 아래 써 놓은 “Seasonal Trail” 이라는 표시가 트레일에 어떤 어려움이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19) 언덕길을 오르자 곧 한무리의 산양을 만났다. 양은 길조를 상징하지… 앞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안전하고 멋진 산행을 할 수 있을 거야…
(20) 한동안의 오르막길 후 꽤 넓은 고산 평원에 자리 잡은 Old 캉사르 마을이 나타났다. 지금 이 곳은 빈 집들만 남아 있고 주민들은 모두 아래쪽 캉사르 마을로 이주해 버렸다. 이런 오지에 떨어져 조용히 가축을 키우며 살던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캉사르 마을에서 트레킹 붐에 의지해 살아 간다. 네팔 트레킹은 이처럼 네팔 사람들의 생활을 많이 바꾸었고 또 바꾸어 가고 있다.
(21) 언덕길 꼭대기에 있는 전망터. 마르상디 계곡의 아름다운 전모는 여기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뒤쪽에서도 충분히 잘 볼 수 있는데도 꼭 절벽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앉아서 감상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고소희열증 환자...
(22) 전망터를 떠나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곧 바로 길안내 현판이 예고하던 복병 구간이 나타났다. 이쪽 산사면은 응달이라 덜 녹은 눈과 얼음으로 트레일이 몹시 미끄럽고 위험했다. Land Slide Area를 벗어나 의기양양 하던 우리를 거의 한 시간 동안 진탕 긴장시키고 또 고생시켰다.
(23) 가까스로 눈내리막길을 벗어나니 다시 말끔해진 길 앞으로 쏘롱라로 향하는 계곡이 펼쳐진다. 쏘롱라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저 아래 쏘롱강 (Thorong Khola) 를 건너 오르막을 올라가면 마낭에서 헤어졌던 길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24) 쏘롱강을 건너서 보는 산세가 멋진 출루 (Chulu,
6584m) 연봉…
(25) 우리가 지난 사나흘 동안 거쳐온 길에 비하면 마낭에서 오는 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길 옆에 있는 외딴 찻집에서 잠시 쉬면서 차와 사과로 재충전을 한 후 오늘의 목적지 레달 (Ledar, 4200m) 로 출발.
(26) 고도가 높아지니 우리 포터들의 휴식도 잦아진다. 무거운 배낭을 우리 대신 메고 묵묵히 동행하고 있는 이 젊은이들이 마냥 고마울 따름… 두 산능선 사이로 멋있는 Chulu West 봉 (6419m) 이 빤히 쳐다 보이는 이곳에도 누군가가 어김 없이 예쁜 돌탑을 쌓아 놓았다. 경이로운 자연 풍광에 대한 감사함은 곧 어떤 신성함에 대한 경배로 전환되는 모양이다.
(27) 롯지들이 보인다. 아~ 다 왔구나… 이 긴 현수교를 건너면 바로 오늘밤 우리가 머물 Ledar 이다.
(28) 예쁘장하게 새로 지은 롯지에 들었다. 롯지 지붕위의 돌무더기들이 말해 주는 이곳의 심한 골바람은 없었지만 무쟈게 춥다. 나무가 귀하다 보니 식당 난로에도 나뭇가지 하나씩만 가져 와서 야금야금 집어 넣는다… 아예 난로에 손발을 대고 있어야 겨우 열기가 전해질까 말까... 샤워는 나흘전 마낭을 떠난 이후로 하지 못했다. 따뜻한 물도 귀하거니와 감기에 걸리면 바로 고산증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꼬….그래도 이게 왜 이렇게 즐겁고 좋은지…
(29) 또 하나의 화창한 아침. 오늘은 쏘롱라를 넘기전의 마지막 롯지인 High Camp (4925m, 16158
ft) 로 간다. High Camp는 엊그제 다녀온 틸리쵸 호수와 거의 같은 고도라 고산증에 시달릴 걱정은 훨씬 덜 되었다. 모두들 좋은 컨디션으로 씩씩하게 Ledar 을 떠났다.
(30) 계곡길이 고도를 올리는 중간에 찻집이 있었다. 장사 수완 좋은 이 집 주인 아지매가 결국은 우리한테 네팔에서 제일 비쌌던 사과를 사서 먹게 했다. 찻집 앞에는 풀을 담아 불을 피운 통에서 멋스러운 연기가 나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안나푸르나 산군에 매일 복을 비는 것이란다. 역시 영험스러운 산들이라 기복의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바로 사과 값을 몇 갑절로 챙길 수 있으니…ㅎㅎ
(31) 쏘롱페디 (Thorong Phedi, 4450m). 하이 캠프가 생기기 전까지는 여기가 쏘롱라 패스의 마지막 전진기지였다. 쏘롱라를 넘기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High
Camp 대신 여기서 머문다. High Camp 보다는 고도가 낮아 조금이라도 고소증과 추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고산증에 대한 경고 문구가 롯지 입간판 바로 옆에 같이 서 있었다. High
Camp 까지 가지말고 걍 여기서 자고 가라는 상업적 암시 같기도 하고…
(32) 쏘롱페디에서 High Camp 까지는 보통 “죽음의 구간” 이라 부른다. 줄기찬 급경사에 산소까지 희박하여 걷기에 아주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까마득 위로 보이는 두 첨탑 봉우리를 이어 놓은 타르쵸는 그런 으시시한 분위기를 더 띄운다. 근데 OMG! 산악 자전거를 끌고 여기에 나타난 이 일본인 청년들… 게다가 일반 자전거는 타 봤어도 산악 자전거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역시 젊다는 것은 좋다. High Camp에서는 이들을 다시 만났지만 쏘롱라를 넘었는지는 알 수 없다.
(33) 힘겹게 “죽음의 구간”을 오르고 있을 때 하늘에서 요란한 헬기 소리가 들렸다. 방향이 High Camp 쪽이다. 십중 팔구는 위급한 고산증 환자 수송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니 트레킹하면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마르상디와 쏘롱라쪽 계곡으로 날아다니는 헬기를 본 것 같다. 안나 서킷의 가장 큰 장벽은 역시 고산증이다.
(34) “죽음의 구간” 마지막 턱을 올라서자 눈밭 너머로 반가운 High Camp가 보였다. 참으로 멀고 어려운 길도 한발짝 한발짝 걷다보면 결국은 이처럼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이 또한 등산이나 트레킹에서 얻을 수 있는 묘미이고 값진 교훈이리라…
(35) High Camp에 도착하니 헬기쪽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얼핏 들으니 어느 그룹중의 한 두 사람이 심한 고산증세로 병원으로 후송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룹 전체가 트레킹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중이라고 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까지 올라 와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High Camp에서는 거의 매일 생기는 일… 은근 걱정이 되어 우리 팀원들을 슬쩍 살펴 봤다. No Problem!
(36) 해는 아직 중천인데 마땅히 할 일도 없어 High Camp 앞쪽에 있는 봉우리의 꼭대기로 올라 갔다. 조금이라도 더 고소 적응이 될 것도 같고, 꼭대기의 위치가 한 눈에 보기에도 경치 좋은 곳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37) 과연 꼭대기에는 멋있는 파노라마 경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깎아지른 절벽 저 아래로 쏘롱페디와 우리가 두어 시간 전에 고생고생 오르기 시작한 트레일이 보인다. 와우~ 내가 저기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단 말인가… 괜시리 은근 뿌듯해 지더라는…
(38) 그리고 아래 쏘롱페디에서 까마득 위로 보였던 두 봉우리를 이어 놓은 그 긴 타르쵸가 이제 바로 눈 앞에서 세찬 산바람에 펄럭인다. 이는 보기 좋은 암벽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이 지역에 심오한 그 무엇을 더 하고 있었다.
(39) 틸리쵸 호수 산행후 우리가 따라 올라온 계곡쪽엔 여전히 안나푸르나의 산군이 위엄 있는 자태를 보여 주고 있고…
(40) 하이 캠프쪽을 내려다 본다. 쏘롱라를 넘는 트레커들이 모두 거쳐 가야 하는 곳이라 하나 밖에 없는 롯지지만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하이 캠프 뒤쪽으로는 우리가 내일 올라가야 하는 트레일이 선명하게 보인다. 내일 우리 모두 잘 할 수 있을 거야….설레이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고....
(41)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산소량이 희박하다 보니 자다가 숨쉬기가 좀 답답해져 몇 번 잠을 깼다. 아직 캄캄한 새벽. 일어나 보니 사람들이 벌써 쏘롱라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하이캠프에서는 거의 모든 트레커들이 새벽 4-5 시에 쏘롱라로 출발한다. 이처럼 일찍 출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침 시간부터 불기 시작하는 쏘롱라의 강풍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해 저물기전에 Pass 저쪽편의 첫 마을인 묵티나트에 도착하기 위해서이다. (하이캠프에서 묵티나트까지
8-10 시간쯤 소요된다.) 우리도 미리 주문해 둔 새벽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떠나기 전 모두 모여서 결기 있게 화이팅을 외치고..
(42) 하이캠프를 벗어나자 곧 가파른 산사면을 가로지르는 눈얼음길. 어둠 속에서 오직 헤드랜턴에 의지해 앞사람 발꿈치만 따라 한발짝 한발짝... 한 시간쯤 걸으니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43) 날이 밝아 오자 어둠속 얼음길 산행의 고초는 덜어졌지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눈밭들은 여전히 우리의 행로를 힘들게 한다. 한 달여 전인 10월 중순에 의외의 폭설이 이 지역에 내려 많은 희생자를 생기게 했다. 그 때 폭설의 잔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44) 춥고 숨가쁜 길을 힘겹게 올라와 만난 너무나 반가왔던 찻집. 바햐흐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면서 숨 좀 고를 수 있겠다 싶었다. 젠장…문을 열지 않았다. 어쩌겠나... 찻집을 뒤로 하고 그저 한걸음 한걸음 계속 천천히 오를 뿐이다. 저어기 까마득 뒤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보다야 이 만큼 더 올라온 우리 형편이 훨 낫다..
(45) 오를수록 산소가 부족함을 몸으로 감지할 수 있다. 숨이 가빠지고 피로가 빠르게 온다. 서서 쉬는 횟수도 갈수록 많아 진다. 아무도 말없이 걷기만 한다. 말하는 것도 힘이 드니까… 걷는 사람들은 많아도 적막함 속에서 오직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46) 굽이를 돌자
Yakwakang (6482m)이 우리 앞에 솟아 있다. 이제 쏘롱라 패스가 많이 가까워졌다고 나를 다독거려 보지만 저멀리 나보다 앞서 가는 사람들이 어찌 이리 부러울꼬…
(47) 보기에는 지척인 곳이 걷노라면 한도 없이 멀다. 그래도 걷다보니 Thorong Peak (6144m) 의 모습도 드디어 시야에 들어온다. 쏘롱라 패스 (5416m)
는 윗 사진의 Yakwakang (6482m) 과 이 Thorong
Peak 사이를 지나는 Pass이다.
(48) 저 멀리 파란 하늘 아래 언덕배기에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가물거린다. 아~ 저기가 틀림없이 쏘롱라 패스로구나… 다 왔다. 마지막 힘을 내어 올라 가자!
(49) 마침내 쏘롱라에 당도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거기에 하나 밖에 없는 찻집으로 들어가 큰 pot 의 차를 주문해 나누어 마셨다. 추위와 피로가 스스르 풀린다. 이 망망한 산중에서 잠시나마 추위를 피하게 해 주고 몸을 녹여 주는 이 찻집과 따뜻한 차 한 잔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아닌게 아니라 이 조그만 찻집이 지난 폭설 때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었다.
(50) 찻집과 따뜻한 차 덕분에 기력이 많이 회복되었다. 이제 Photo Time! 사진으로만 수없이 보아 왔던 이 자리에 지금은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 서 있다. 감개가 그저 무량할 뿐…
(51) 현판의 문구들..
“Thorong-La Pass 5416m, Congratulation for the Success!!!” 이곳에 오기 전까지 모두 다 아무 문제 없이 올라갈 수 있을까를 나 자신에게 몇 번이나 물어 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고 태어난 이래 제일 높은 곳에 지금 와 있다. 축하해요…그리고 정말 수고했어요.. “Hope you enjoyed the Trek in Manang. See You
Again!!!” 이곳으로 트레킹 하면서 우리는 너무 잘 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정말 축복 받은 트레킹... 네팔은 갈 곳이 너무 많다… 쏘롱라를 다시 넘을 지는 모르겠으나 네팔에는 반드시 또 올 것이다…
(52)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은 없다. 하산을 시작했다. 고산증의 고민도 가시고 올라올 때보다는 호흡의 부담이 훨씬 덜 해짐을 즉각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묵티나트 (3760m) 까지는 반나절에 고도를 1650m (=5400 ft) 낮추는 것이다. 때문에 가파른 내리막이 많은데다 길에는 아직 많은 눈이 얼어 있어 걷기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지난 폭설 때 왜 이 구간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53) 가파른 눈얼음길을 내려오노라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맨땅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이렇게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54) 눈길과 맨땅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 와중에 쳐다보는 멋있는 Yakwakang 의 봉우리. 머리에 이고 있는 두꺼운 적설이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55) 맨땅의 휴식도 반복된다. 날씨가 너무 좋아 다행히 그렇게 심하다는 쏘롱라의 골바람은 없었지만 고된 행군 때문에 내려오는 길에도 고산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56) 부지런히 내려오다 보니 드디어 이쪽 사면의 첫 롯지가 있는 차하루 페디 (Chaharu Phedi)가 아득히 내려다 보였다. 아~ 이제 묵티나트까지는 두 시간 남았다.
(57) 전망 좋고 양지 바른 차하루 페디의 찻집에서 차와 간식으로 요기하며 마지막 구간을 위해 재충전..
(58) 찻집을 떠나 묵티나트로 내려오다가 지난 폭설 때의 실종자들을 찾고 있는 네팔 경찰들을 만났다. 벌써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수색 작업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실종자들이 아직 눈속에 묻혀 있는지 이미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란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어 보았다.
(59) 마지막 굽이를 돌자 마침내 묵티나트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묵티나트는 네팔의 불교와 힌두교의 성지. 많은 사람들이 순례 오는 곳이라 드문드문 현대식 건물도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시선을 꽉 사로잡은 것은 마을 뒤쪽으로 장중하게 솟아 있는 14좌 중의 하나인 다울라기리 (8167m). 그 포스가 정말 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