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창칼 20> "발바닥 사랑"과 "별"과 "팔레스타인"
산악인들에게 발은 생명이다. 산을 오를 때 머리가 몸을 인도하고 마음이 또 따라줘야 하겠지만, 결국 오르는 주체는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발과 다리인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는 산행 계획이나 목표가 좋아도, 아무리 내가 오르고 싶은 열정과 마음이 강하다고 하나, 다리가 말을 안 듣고 발이 따라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현실이 머리를 배반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산행을 할 때마다, 내가 그 전날 머리로 상상했던 장면이 직접 발바닥으로 걷는 현장에 와 보면 그것이 거의 다 허황되거나 환영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내일 산행은 재미가 없을거야, 오늘만은 안 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면 그 생각은 현장과 괴리된 바보같은 것이었다는 게 곧 판명이 된다.
오직 내가 단단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발바닥이다. 대지를 굳건히 딛고 나아가는 발바닥만이 그 현장에서 살아있는 역동성과 현실의 주체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영혼과 우리 삶의 역동성을 진단하는 기준은 머리의 생각도, 마음의 흔적도 아닌 우리 발바닥의 족적일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산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삶의 역정의 핵심을 잘 꼬집어주는 박노해 시인의 생생한 시를 하나 읊어본다.
박노해 시인은 말하고 있다. 사람의 중심은 너무 빠르게 식어버리는 가슴도, 날씨보다 더 변덕스러운 생각이나 마음도 아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늘 행동하는 발바닥이야 말로 사람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발바닥이야 말로 우리 행동의 원동력이고 가슴과 마음까지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의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인 것인 바, 즉 그 행동의 표상이 발바닥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생각도, 마음도 아닌 우리의 발의 자취인 ‘족적’인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갔느냐, 얼마나 세상을 보려고 돌아다녔느냐, 등, 우리 산악인들에게 딱 떨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발바닥이 나에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 본다. 그것을 알려면 또 우리는 발바닥을 쳐다봐야 한다.
발바닥에 의존해서 열심히 산길을 걷다가 우리는 하늘을 쳐다 보고 별을 헤아려 본다. 같은 시인의 “별은 너에게로”라는 시도 덩달아 읇조려 본다.
이 시 행간에 삶의 의지가 가득하다. 그 '가장 빛나는 별'이 무엇이든간에 열심히 꾸준히 살아가다보면 빛은 언젠가 나에게로 온다는 희망.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노력하는 자에게는 값진 결과가 찾아오리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빛의 속도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그 '가장 빛나는 별'을 오늘도 나는 설레며 기다려 본다.
우리네, 산행도 그러하지 않은가. 중도에 길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그 지친 몸을 이끌고 내 발의 힘을 빌어 꾸준히 가노라면, 간절하게 찾고 나아가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삶도 이러하리니. 역경과 난관이 있더라도 간절히 기다리면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난관은 희망으로 바뀐다. 그리고 희망은 가장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나의 가장 빛나는 별을 만나기 위해 간절하게 우리의 길을 걸어간다.
마지막으로 작금의 중동에서 펼쳐지는 전쟁의 참혹함과 아픔을 생각하면서, 16년 전에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아픈 역사의 질곡을 버리지 못해 서로 총칼을 겨느고 있던 그 아픔의 땅의 현장에 서서 박노해 시인이 그 당시 남긴 시로 내 별(?) 볼일 없는 짧은 글을 갈무리 해본다. 어서 빨리 그 부조리한 인류의 총부림을 끝내는 날을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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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은정 검사 같은 분이 "별..." 시를 인용하셨군요!
참 영광이네요. 동시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같은 시를 언급을 해 주시다니...
그렇지않아도, 이 시를 아는 지인이 언급을 해 주셔서 저도 공부하게 됐지요.시대를 아파하는 감수성이 탁월하신 보해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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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님의 냉철한 필체의 글들도 훌륭하시지만 이런 서정적인 사색이 흐르는 글! 너무 좋으네요!
"가장 낮은 자세로 늘 행동하는 발바닥" 을 넘 챙기지 않고 의욕을 자제하지 못했는지 십여년 만에 감기몸살 걸려서 미국행을 또 연기했네요.
한국 올 때마다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의 박노해 사진전을 들르곤 하는데 창공님글에서 박노해님의 아름다운 글 만나니 반가움이...^^
어서 참혹하고 가슴 아픈 어두운 전쟁이 종지부를 찍기를 염원합니다. -
요산님~ 아니, 모네님. 한국을 가시더니 돌아오실 줄을 모르시네요.
'사랑하는 발'을 자주 안 쓰시니 몸을 방어해 주는 방어병, 발이 잠 드는 사이에 10년만에 감기 바이러스가 침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서 베산을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애정을 보여 주시니 저희 기운을 받아 곧 나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어서 돌아오셔서 발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 주세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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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뜻해지는 '홧팅' 덕분에 발바닥까지 기운이 납니다.^^
산행에서 곧 뵐게요. -
지구별의 자장가
밤의 어둠도 무섭지 않았네
비바람이 몰아쳐도 두렵지 않았네
토닥토탁 자장가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아기 곰처럼 평온한 잠이었네
자장자장 우리아가
잘 자거라 우리 아가
지상에서 가장 욕심 없는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우주의 숨결 따라 깊은 잠이 들었으니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자거라 우리 아가
어둠이 오면 지구마을에 작은 불빛 깜박이며
집집마다 울려오는 자장가 소리
눈문도 자장자장
배고픔도자장자장
총성도자장자장
두려움도 자장자장
어두운 지상에 가장 오래된 노래여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물 갑은 노래여
오 우리들 눈물 어린 평화의 노래여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시 109p -
모네님 (요산님)이 박노해 시인의 팬인 줄 꿈에도 몰랐네요.
저는 이 시인을 안 지 얼마 안 되는데 말입니다.
마침 이 지구별에 자장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별에 평화가 만연(?)할 날이 오길 바라며 저도 자장가를 같이 속삭여 봅니다.
또 하나의 좋은 시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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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라기 하기엔 노동 운동가로서 치열하고 숨막히는 시간을 보내신 박노해님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많이 부족하고 현재 반전 평화 운동에 전념하시며 사진 작가이자
평화 활동가로서의 삶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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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도 하나의 커뮤니티인데 시간을 들여 가끔씩 올려주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임은정 검사가 라디오 대담 프로에서 올려주신 박노해 시인의 "별은 너에게로" 를 몇구절 인용하며 대담하는거 듣고 문구들이 참 좋다 싶어 찿아 읽어며 음미했던 시였는데 창공님 글에서 또 보네요.
창공님 글에서의 발이라는건 세상이나 인간을 지배할려는 머리가 아니라 사람의 열정, 행동, 그사람의 발자취에 의해 남겨지는 것들이 더 숭고하고 의미있다로 생각해 봅니다.
흥미롭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