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rofile
조회 수 199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많은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결과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 명성이 높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중국의 찬쉐이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강이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많은 토론과 담론들을 쏟아냈다.

필자도 “왜 하필 한강이었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다양한 평들도 접하고 나름 분석도 해봤지만, 만족할 만한 시원스러운 답을 못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최근에 박구용 철학 교수의 담론(링크)을 듣다가 한 가지 강력한 해답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박구용 교수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대표작에서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한강 작가의 정신은 ‘통치술에 대한 감각적 불복종’이라는 거창하면서도 쌈박한(?) 용어로 규정을 했다. 좀 평이하게 풀어보자면, 한강의 작품은 사회적 불의나 폭력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원초적 감각을 깨워 그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필자가 최근에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에 비추어 크게 공감을 한 포인트이다. 즉, 이전 세대는 거대 악이나 사회적 불의에 대해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저항의식을 갖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역사적 소명이니 하는 생각은 너무나 거창한 것이며, 처한 시대적 상황에 아예 신경을 끄고 무감각으로 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전쟁이나 기후 재앙 같은 불편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무관심이 정상으로 통용된다. 어쩌면, 정보와 자극이 너무 많아지면서 거대 담론에 마음을 쓸 신경과 에너지가 바닥이 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세태에 대해, 한강은 여린 감수성의 언어로 무감각해진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불의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불의에 대한 관용을 넘어 적극적인 가해와 다르지 않다는 어마무시한 은밀한 메시지를 내포해서 말이다.

무감각과 무관심이 만연한 시대에 한강은 머리의 언어가 아닌 가장 원초적인 몸의 언어, 즉 감각적 언어에 불을 붙여 폭력에 대해 어쩌면 가장 적극적인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감성이 여린 사람이 거친 폭력에 느끼는 정서가 강렬하듯이, 이에 대한 저항의 표현도 가장 강렬해질 수 밖에 없는 역설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힘은, 작품을 쓰는 내내 작가가 주관에 빠지지 않고 타자(=폭력의 희생자들)의 감각으로 들어가, 그 타자의 시각에서 고통을 같이 느끼고 신음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렇게 타자로 빙의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각을 절제된 언어로 (즉. 시적 산문으로) 표현해냄으로써 그 강렬함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이처럼 한강의 작품은 (조직적 폭압에 대해) '감각적 불복종'이라는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그 불의에 대한 무감각을 깨우고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이끌며,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실천을 시작하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라고 팔자는 해석을 해 본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랜 작품 활동으로 국제적인 명성과 인기가 엄청나게 높고 다작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문학 평론가가 아닌 필자가 그의 작품성을 한 마다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강과 비교되는 대비점을, 바로 앞에서 언급한 ‘감각적 저항’을 통해 사회문제를 파고들어간 그 깊이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팔자가 검색하고 접한 자료들을 압축해 정리해 보자면, 하루키는 분명한 역사인식과 반체제 의식을 포함한, 높은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갖고 있으나, 그의 작품 세계는 많은 경우에 사람들의 일상과 대중문화, 그리고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를 다루는게 많다. 또한 일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지만,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개인의 성장과 자아 찾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인류가 처한 보편적 문제를 천착하는 깊이에 있어 한강 작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아마 스웨덴 노벨상 위원회가 간파하지 않았나 싶다.

감성이 여린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권위있는 상을 수상함으로써 대단한 명성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한국 문학의 위상도 높였다. 이참에 일상과 바쁨, 그리고 넘치는 자극과 정보의 홍수로 둔감해져가는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되살리기 위해 나 자신과 대면하는 침잠의 시간을 늘리고 한강의 작품 속으로 빠져들어가 보면 어떨까.

 

소년이 온다_3.jpg

(Amazon에서 몇 주전에 구입한 "소년이 온다")

  • ?
    사비나 2024.11.06 17:27

    흥미롭네요. 전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20대초반에 열광했지만 그때의 내 깊이가 고만고만했기때문에 (물론 지금이라고 더 깊은것은 아니지만) 말씀하신 하루키와 한강의 작품 깊이에 동감되네요. 개인적으로 (어겐) 한강은 너무 읽기가 힘들어서 (몸에서 모든 힘이 빠지고 마음은 먹먹) 저는 채식주의자밖에 안 읽어보았습니다.

  • profile
    창공 2024.11.07 17:57

    저도 '소년이 온다 (Human Act)'를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집중해서 읽으면 화자들(희생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그대로 생생하게 느껴져서 헉헉 거려야 했고, 역으로 또 감정이입을 안 하면 흐릿해서 잘 읽혀지지 않고요. 문장들이 아주 간결하고 책 두께도 얇아서 금방 읽을 책이지만 생각외로 만만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채식주의자는 영어로 읽었는데 번역본이 더 다가 오는 듯하기도 해서 신기했어요. 


List of Articles
분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기타 OPUS-I & II 흔한 내 사무실 풍경이다. Whiteboard를 종횡부진 누비며 머리 속에 생각을 끄적이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때가 있다. 이 날은 새로 구한 marker도 시험해 볼 겸 ... newfile YC 28 1 2024.11.22
문화 예술 감상문: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설렘으로 읽었다. 그 소설을 읽을 때 인상적인 것은 연민으로 사람을 대하는 작가의 섬세한 태도와 그것을 담아내려는 문학적 표... 6 update 에코 151 3 2024.11.18
문화 예술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나다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 2 file 창공 98 0 2024.11.17
문화 예술 <칼럼 42> 크루시블 - 마녀 재판과 추론의 사다리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 2 file 창공 147 0 2024.11.11
교육-배움 맹자이야기 6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과인지어국야 진심언이의)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하내흉 즉사민이어하동 사기속어하내) 河東凶亦然. 察... 1 FAB 81 0 2024.11.09
문화 예술 <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 2 file 창공 199 0 2024.11.04
교육-배움 맹자 이야기 5 이제부터는 제목을 맹자 이야기로 변경해서 올립니다. 내용이 어렵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좀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해석하고, 주희의 해석 부분은 필요하지 않으면 ... 3 FAB 175 0 2024.11.01
건강-웰빙 A blessing in disguise in Portland, Oregon 어쩌다 보니 살이 빠졌습니다. 직장과 주변에서 이런 저를 보고 어찌 살을 뺐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다 좀 귀찮아져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 3 file YC 139 0 2024.10.31
교육-배움 뜬금없이 시작하는 맹자이야기 4 3편의 조회수가 줄어든 걸로 보아 맹자이야기의 관심도가 점차 정상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가봐야겠습니다. 5 년 이상 걸릴 겁니다. 이... FAB 68 0 2024.10.17
문화 예술 <칼럼 40> 한강의 작품과 기억에 대한 소고(小考) <칼럼 40> 한강의 작품과 기억에 대한 소고(小考) 최근에 있었던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여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임에도 폭력에 대해서 ... file 창공 180 1 2024.10.16
기타 오늘은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의 내일을 꿈꿔 봅니다 3년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이스트 시에라의 McGee Pass 로 들어가 JMT 를 타고 남행하여 Mono Pass 로 나오는 45마일 정도의 백팩킹 계획이었습니다. 둘째날 McGee... 14 file 보해 419 3 2024.10.13
교육-배움 뜬금없이 시작하는 맹자이야기 3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미유인이유기친자야 미유의이후기군자야) 인하면서도(仁而) 그 부모를 버린 사람은(遺其親者) 아직 있지 않고(未有也),... FAB 86 0 2024.10.12
교육-배움 뜬금없이 시작하는 맹자이야기 2 맹자집주를 보아가면서 진행하려니 본문이 상당히 길어집니다. 주희의 해석이 절대적이라고는 할수 없겠지만, 조선을 디자인한 정도전 선생으로 시작한 조선 성리... FAB 112 0 2024.10.04
문화 예술 설악산 암릉 이야기 3편 설악산 리지의 개척 등반사 (퍼옴) 설악산 리지의 개척 등반사 (울산암, 천화대, 용아장성, 공룡능선을 설악산은 천태만상의 얼굴을 하고 수많은 등산객들을 맞이하는 천혜의 도장이다. 장대한 능선... 1 돌고래. 122 1 2024.10.03
문화 예술 설악산 암릉 이야기 2편 석주길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는 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릉길이고 그곳에는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 등 멋진 암릉길이 많지만 그중에서... 1 돌고래. 95 0 2024.09.2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