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 27> 제 눈에 안경과 정신 승리
<창공칼럼 27> 제 눈에 안경과 정신 승리
하루 전에 국민 가수 이효리가 국민대 졸업식에서 연설을 해서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의 단촐한 연설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던진 한 마디는 “살면서 누구의 말도 듣지도 믿지도 말고, 자신만을 믿고 ‘독고다이’로 살아라”였다 (링크)
이효리다운 멋있는 말이다. 한 때 이런 류의 쿨한 사고를 좋아한 적도 있는 나로서는, 똑같은 말은 아니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붓다의 거창한 말도 떠오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효리가 던진 이 말은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독고다이 정신’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에게는 멋있는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나, ‘아큐’ 같은 어리석은 자에게는 ‘정신 승리’로 인도하여 파멸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뤼신의 '아큐정전' - 아래 단락 참조).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 혹은 “보고 싶은 것만 눈에 보인다"라는 말도 있다. 이런 아전인수식 사고나 ‘제 눈에 안경’적 관점을 비꼬는 이야기도 많다. 예를 들어, 이솝 우화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무 높아서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면서 ‘저 포도는 실 거야’라고 말끔하게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스스로 위안을 찾는 여우. 자기 합리화를 뛰어 넘어 ‘정신 승리'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 자기합리화 정신을 가장 신랄하게 보여준 이야기가 중국 작가 뤼신의 ‘아큐정전(阿Q正傳) (The True Story of Ah Q)이다. 중국 신해혁명 당시 최하층으로 비천하게 살아가는 아큐가 가진 자들에게 수많은 굴욕과 모멸을 당하지만 자기 속임수로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소위 ‘정신승리법’으로 굴욕을 자기합리화로 잘 포장하여 자기 위안의 삶을 잘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아큐는 결국 죽음을 당하기 직전에야 현실 의식이 깨어나지만, 그 때는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미국 영화 “포리스트 검프(Forest Gump)"를 상영할 때, 영화 제목을 아큐정전을 따서 <아'감'정전(阿甘正傳)>이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여기서 “감"은 검프를 지칭하는데 이 영화 속에서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어떤 걸 가질지 아무도 알 수 없어.”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딴은 머리를 쓰지않고 운명에 맡기면 다 이루어질 거라는 얄팍한 사고를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아큐는 중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있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전세계 이곳 저곳에서 아큐의 후손들이 다방면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전에 누군가가 나의 글쓰기 놀이에 이런 저런 평을 개진한 적이 있었다. 직접적인 표현을 못하니 은근히 돌려서 비판을 한 것이다. 비판을 흔쾌히 잘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평을 고맙게 받아들였지만 그 내용은 ‘제 눈에 안경’ 식의 평이라는 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남의 평에 흔들림이 없는 당당한(?) 태도 역시도,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내 자신 스스로가 정신 승리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많은 경우에 왜 이렇게 제 눈의 안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속좁고 비굴한(?) 태도를 견지하는 존재 밖에 안 될까? 예전 ‘꼰대’ 주제의 글(링크)에서도 밝혔듯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자기 합리화 성향은 나름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내일은 태양이 뜰거야’와 같은 희망적인 생각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가 고도로 발달한 작금에 와서는 이 자기 합리화 습성이 인류의 건전한 성장을 방해하는 기제로도 많이 작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습성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습성을 강화하고 사고의 경직화와 확증편향을 더욱 부추키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요즘 발달된 미디어와 기기들 때문에 이런 확증편향적 사고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이를 활용하는 집단세력들이 일으키는 각종 부조리한 프레임 전쟁으로 세상은 더욱 혼탁해져 버렸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저멀리 우리 고국에서는 아큐와 같은 지도자가 나와 각종 분야의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사회를 도탄으로 몰아넣고 있다. 근시안적인 안경을 쓰고 자아도취에 빠져, 자기 이익에 눈이 멀고, 자신은 성공했으니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속좁은 무지함 속에서 주어진 힘을 장기적 안목과 철학도 없이 마구 휘두르는 바람에 사회는 엄청난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시대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무엇을 해도 양심에 구애 받음 없이 항상 '정신 승리'를 하는, 노예 근성의 '독고다이' 지도자 밑에서 탄식하는 국민들에게 무한한 연민을 느낀다. 이 모든 아수라장의 근본적 배경에는 본연의 비판 기능을 상실한 채 침묵과 방조를 넘어 오히려 아큐 양산에 앞장서고 있는 대다수 언론들이 도사리고 있다. 실은, 자기들의 이권을 위해 이 어설픈 아큐를 추켜세워 지도자로 만들어낸 장본인들이야 말로 바로 그 언론들이다. 부당한 힘에 대항해서 정의를 말하기를 거부하고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이 거대한 언론들의 부조리한 담합의 행태들을 보면서 암울함과 참담함을 떨쳐버릴 수 않을 수 없다.
더불어, 내가 사는 이 곳에서도 머지 않아 자기 속임수와 선동에 능한 또 하나의 지도자가 나와 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도 생겨난다.
정신 승리가 횡행한 이 시대, 물질은 덜 풍요로웠을 지언정 날카로운 양심적 성찰의 힘이 작동하고 이성적 사고가 잘 통했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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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고도 너무나 우연적인 사건인지는 모르나 "제 눈에 안경"으로만 보는 성향을, 또 다른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프레임(fram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후에 프레임이라는 말은 나중에 사회, 정치학에서 도입돼서 그 분야의 담론의 핵심 개념이 되기도 했었죠. 하여, 요즘은 프레임 전쟁이라는 말까지 등장을 할 정도이니까요. 이처럼 정치학적 담론을 언어학자가 이끌어간 게 재미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혹은 틀인 프레임을 통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간의 성향의 바닥에는 뇌와 의식의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대의 언어학자로 동부 (MIT)에는 노옴 촘스키가 있었고, 서부(Berkeley)에는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있었는데, 두 학자의 언어를 바라보는 입장이 정반대였기 때문에, 한 때 '언어학 전쟁 (Linguistics War)'라고 불릴 정도로 두 반대 진영은 치열하게 학문적 싸움을 벌였답니다.
그런 첨예하게 다른 언어관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의 현실 참여와 사회 비평가의 역할을 주창한 점은 두 학자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밥을 조금 먹어본 사람의 입장에서 두 언어학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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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기합리화적인 정신 승리'가 막가피식으로 갈 때까지 가다 보니 역사 부정, 현실 부정, 자기 부정까지 이르는 도단의 일들이 요즘 계속 벌어지고 있네요. 오늘 아침에 올라온 이 기사를 보면서(링크) 거대 언론과 아큐 집단들의 현실부정과 자기부정의 광적인 춤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네요. 도둑질도 해 본 사람이 계속한다고, 아무리 도착적이라 할지라도 그 프레임들이 먹히니까 계속 같은 짓을 벌이는 것일 텐데, 그런 토양이 비옥한 그 땅의 현실이 초라함과 측은함을 넘어 좌괴감에 들게 합니다. 인류의 진화는 참 힘들다!! 그게 결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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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이 거장 노옴 촘스키(Noam Chomsky)를 소환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학, 정치학과는 무관했던, MIT대의 전설적인 석학이자 언어학자였던 촘스키는 그의 경력 내내 일관되게, 지식인의 사회 비평가 역할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지식인들이 자기 전문 분야에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부조리, 부당한 권력 등에 맞써 비판 정신을 잃지 않을 것을 주창했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해야 할 의무:
촘스키는 지식인의 주요 의무 중 하나는 "진실을 말하고 정부와 기업 같은 강력한 기관들의 거짓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식인들이야 말로 정보 접근과 비판적 사고 능력 갖고 있는 만큼 특별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권력자들이 행사하는 여러 정책을 포함, 선동, 선전, 오류 정보를 비판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의 추구와 소외된 집단 옹호:
촘스키는 지식인의 역할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정의와 인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는 지식인들이 소외된 집단과 권압적인 시스템에 도전하는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을 주장합니다.
사회 주류 담론으로부터 독립적인 분석과 목소리 내기:
촘스키는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도전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대중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는 일부 학계나 지식인 단체들을 비판해왔습니다. 그는 지식인들은 대중과의 명확한 의사소통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와의 관여를 추구할 것을 주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