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암릉 이야기 2편 석주길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는 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릉길이고 그곳에는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 등 멋진 암릉길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석주길'은 아름다움 보다는 그곳에 얽힌 설화 같은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그 슬픈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60년대 후반에 명성을 날리던 '요델산악회'에서 할동하던 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였고 동시에, 절친이자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송준호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세 사람의 순수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엄홍석과 신현주 곁을 홀연히 떠난다.
송준호가 떠난 얼마 후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설악산 천당폭으로 빙벽등반을 하러 간다. 하지만 빙벽을 오르던 신현주가 그만 추락 하자, 당시 빌레이(확보)를 보던 엄홍석은 연인인 그녀의 추락거리를 줄이기 위해 빙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날린다. 그러나 빙벽에 설치한 확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고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하여 목숨을 잃고 만다.
그 후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는 악우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넋을 기리고자 1968년 7월 지금의 천화대 석주길을 개척하며 엄홍석의 이름 끝 자인 "석"과 신현주의 끝 자인 "주"를 따서 '석주길'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암릉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친다.
송준호 역시 1973년 초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가 실족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 따르게 되고 그의 시신은 그토록 사랑하던 친구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1973년 새해 첫 날밤 등반하루 전 그는 엄홍석과 신현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는데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번지 없는 주소로 엽서를 보냈다고 한다. 받는사람 "석주 귀하" 주소는 "벽에서 노루목" 보내는 사람 "준" 그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한편 서울에서는 토왕성폭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던 송준호의 애인은 1973년 1월5일 오후2시 서울 중앙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영을 앞두고 그를 기다린다. 그가 나타나지 않자 뇌리에 스치는 불안감으로 송준호를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섰고... 송준호는 그녀가 짜준 목도리와 장갑, 모자를 가슴에 품은 채 토왕폭에서 그녀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만다.
송준호는 토왕폭을 등반 후 돌아와 그녀와 함께 스위스 등산학교를 유학 한 후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팩트 체크에 의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자.
사실 영화 한편을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슬프고도 아름다운 설화같은 이야기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 사실 엄홍석과 신현주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냥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다만 송준호와 엄홍석은 서로 절친한 자일파트너였다고 한다.
그리고 세사람 모두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지만 사고의 내용은 알려진 사실과는 좀 다르다. 신현주와 엄홍석은 1969년 하계 설악산 장기등반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소토왕골로 나들이를 갔다가 비룡폭포 아래에서 급류에 실족한 신현주를 구하려다 엄홍석도 함께 사망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자일이나 등산화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슬리퍼 차림으로 가볍게 나섰으며 이들은 선후배 사이로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고 한다. 어쨌든 선후배 사이로 설악산 노루목의 산악인의 묘에 함께 묻히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 처녀, 총각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되어 영혼 결혼식을 해주었다고 한다.
석주길 또한 두 사람이 사망하고 이후 개척한 것이 아니라 이미 1968년에 송준호 등 요델산악회 회원들에 의해 상당부분 개척이 된 상태로 특별한 명명없이 '천화대 칼날능선' 이라고 불렀는데... 요델산악회의 창립멤버인 백인섭 선생은 '마켄나의 황금절벽'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여기를 가보면 붉은 적벽의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마켄나의 황금절벽'이라는 이름이 참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이후 1969년 엄홍석과 신현주를 추모하기 위해 송준호 등 요델산악회 회원들이 추모동판을 설치하면서 '석주길'이라 널리 알려진 것이다.
송준호는 토왕성폭포를 등반하던중 빌레이어(확보자)가 스탠스를 잘못 잡아 넘어지면서 자일을 잡아채는 바람에 덩달아 선등하던 송준호도 추락하였고 송준호 또한 엄홍석, 신현주와 함께 나란히 노루목의 산악인의 묘에 묻히게 된 것이다.
Anyway!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하여 없던 일도 만들고, 있던 일도 사실과 다르게 전하는 것은 마뜩잖다.
-
NEW
OPUS-I & II
흔한 내 사무실 풍경이다. Whiteboard를 종횡부진 누비며 머리 속에 생각을 끄적이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때가 있다. 이 날은 새로 구한 marker도 시험해 볼 겸 총 천연색으로 휘갈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점점 엉키고 있었... -
No Image Update
감상문: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설렘으로 읽었다. 그 소설을 읽을 때 인상적인 것은 연민으로 사람을 대하는 작가의 섬세한 태도와 그것을 담아내려는 문학적 표현방식이다. 작가의 태도는 화자로 등장하는 경하라는 인물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소설을 읽는 ... -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나다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3>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만나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한... -
<칼럼 42> 크루시블 - 마녀 재판과 추론의 사다리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2> The Crucible (도가니) - 마녀 재판과 추론의 사다리 서부... -
No Image
맹자이야기 6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 盡心焉耳矣.(과인지어국야 진심언이의) 河內凶, 則移其民於河東, 移其粟於河內.(하내흉 즉사민이어하동 사기속어하내) 河東凶亦然. 察鄰國之政, 無如寡人之用心者.(하도흉역연 찰인국지정 무여과인지용심자) 양혜왕이 말하길(梁惠王... -
<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주의> 이 칼럼은 산행과 무관한 내용으로써 한 개인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제공하는 글입니다. 이 점을 주지하셔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부담없이 패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칼럼 41> 한강은 되고, 왜 하루키는 안 됐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 -
No Image
맹자 이야기 5
이제부터는 제목을 맹자 이야기로 변경해서 올립니다. 내용이 어렵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좀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해석하고, 주희의 해석 부분은 필요하지 않으면 생략해서 내용을 간단하게 작성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주셔서 감읍할 따름입니다... -
A blessing in disguise in Portland, Oregon
어쩌다 보니 살이 빠졌습니다. 직장과 주변에서 이런 저를 보고 어찌 살을 뺐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다 좀 귀찮아져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작은 몸무게를 잴 이 저울을 구입하면서 입니다. https://a.co/d/0MjSNx0 이... -
No Image
뜬금없이 시작하는 맹자이야기 4
3편의 조회수가 줄어든 걸로 보아 맹자이야기의 관심도가 점차 정상으로 가는 거 같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끝까지 가봐야겠습니다. 5 년 이상 걸릴 겁니다. 이제부터는 제후와 백성이 함께 즐기는 것에 대하여 양혜왕과 맹자간의 연못가에서 대화가 전개됩니... -
<칼럼 40> 한강의 작품과 기억에 대한 소고(小考)
<칼럼 40> 한강의 작품과 기억에 대한 소고(小考) 최근에 있었던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여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임에도 폭력에 대해서 온 몸으로 아파하면서 거부하고 저항했던 그녀.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광주 5.18... -
오늘은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의 내일을 꿈꿔 봅니다
3년전쯤으로 기억합니다. 이스트 시에라의 McGee Pass 로 들어가 JMT 를 타고 남행하여 Mono Pass 로 나오는 45마일 정도의 백팩킹 계획이었습니다. 둘째날 McGee Pass (12, 300ft) 를 넘는데 6월중이라 그런지 패스 부근에 제법 많은양의 눈이 있었고 눈을 헤... -
No Image
뜬금없이 시작하는 맹자이야기 3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미유인이유기친자야 미유의이후기군자야) 인하면서도(仁而) 그 부모를 버린 사람은(遺其親者) 아직 있지 않고(未有也), 의로우면서도(義而) 그 임금을 뒤로한 사람은(後其君者) 아직 있지 않습니다(未有也). 한자 토... -
No Image
뜬금없이 시작하는 맹자이야기 2
맹자집주를 보아가면서 진행하려니 본문이 상당히 길어집니다. 주희의 해석이 절대적이라고는 할수 없겠지만, 조선을 디자인한 정도전 선생으로 시작한 조선 성리학이 주희본을 텍스트로 선택하여 그것이 거의 바이블처럼 되어 있다보니 자연히 주희본을 선정... -
설악산 암릉 이야기 3편 설악산 리지의 개척 등반사 (퍼옴)
설악산 리지의 개척 등반사 (울산암, 천화대, 용아장성, 공룡능선을 설악산은 천태만상의 얼굴을 하고 수많은 등산객들을 맞이하는 천혜의 도장이다. 장대한 능선과 깊은 계곡, 사시사철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기암절벽은 많은 등산객들을 유혹한다. 산을 좋... -
No Image
설악산 암릉 이야기 2편 석주길
하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는 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릉길이고 그곳에는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 등 멋진 암릉길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석주길'은 아름다움 보다는 그곳에 얽힌 설화 같은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그 슬픈 이야기는...
정보가 유익하네요